박사님께서 예전에 올리셨던 글 다시 꺼내봅니다.

말하기와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 그리고 그 해답을 알려주십니다.

 

 

‘말하기’라는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도 맥도날드나 지하철의 공간이 즐거운 것은 말하는 사람들을 밀착해서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을 자연스럽게 한다. 말하기 보다 더 빈번하고 자연스러운 작용은 또 무엇이 있을까? 바로 생각하기다.

 

생각하기는 혼자 속으로 말하기이다. 생각에 관해서는 “생각나기”와 “생각하기”가 있다. 생각나기는 소음처음 그냥 흘러나온다. 생각나기는 자발적으로 생성되어 가는 방향을 짐작하기 어렵다. 그 긴 행렬은 생각이 생각을 불러와서 기억의 바다를 헤집고 달린다. 다른 감각입력에 의해 주의가 분산될 때까지 기억을 무작위로 연결해서 생각나기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반면 생각하기는 의도적 행위이다. 생각하기는 의도된 기억탐색 과정이다. 학습은 합당한 기억을 찾아가는 생각하기 과정이다. 연상작용은 생각하기에 의해 촉발된 생각나기이다생각의 자발성과 빈범함에 놀랄 때가 많다. 말하기는 생각하기의 부분집합이다.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말을 잘하는 것은 잘 생각하는 능력의 일부이다.

 

인간 의식진화에서 최근에 획득된 ‘글쓰기’라는  능력에 대해 여러번 생각해 보았다. 생각의 집약된 형태가 말이고 말의 집약된 형태가 글이다. 1000번의 생각이 100번의 말하기로 축약되고 아마 한 두 번의 글쓰기로 응축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글쓰기가 거의 모든 사람에게 힘든 이유일 것이다. 말이 소리로 발음 가능한 생각의 의미있는 패턴이라면, 글쓰기는 문자로 표현된 말하기이다.

 

생각은 문자로 옮겨진 후에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서 영원성을 획득한다. 책을 읽는 독서행위는 그 책 저자의 뇌 신경발화패턴에 자신의 뉴런활동을 동조시키는 행위일 것이다. 책을 통해 무엇을 만나위해서 책 내용과 유사한 신경발화 성향이 먼저 형성되어야하며, 그것은 반복학습을 통해 형성된다.

 

글쓰기는 의사소통을 지금 여기라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핸드폰이 사회에 범람하게 된 것은 말하기를 공간적 제약에서 자유롭게 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문자 메시지를 통해 생각을 언제 어디서나 신속하게 문자화한다결국 글쓰기를 통해서 의식활동이 뇌 외부에서 편집과 집적이 가능해졌다. 책이야말로 연결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신경세포 연결, 그 무수한 시냅스 춤의 기록이다문자라는 상징기호의 형태로 영원성을 획득한 시냅스 춤이  타인의 뇌 시스템에 동조될 때 새로운 생각의 흐름이 생기고, 전두엽의 판단 작용을 거쳐 그 일부만이 글로 정확하게 표현된다. 이 글을 쓰면서도 생각하기의 일부만이 글로  표현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렇다. 잘 쓰여진 글은 스스로 생명을 획득하여 영원성을 갖게 된다. 영원성과 편집성을 갖게 된 글은 인간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큰 기여를 하였다. 우리100Books 학습공통체의 최근 발표된 네 가지 행동 지침도 바로 글로 표현된 후에야 말이나 생각이 갖는 모호성을 벗어나서 여러사람을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헌법으로 표현된 문장은 그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것이 바로 글의 힘이다.

 

생각하기, 말하기, 글쓰기의 상호관계를 면밀히 관찰해 보면 그 바탕이 궁금해진다. 이 세가지 능력은 모두가 몸 동작이 정교화 되어서 가능해진 진화된 운동성에서 생겨났다. 몸이 피곤하여 집중력이 저하된 상태에서도 생각은 흐릿한 흐름을 계속한다. 그러나 말은 어렵고 글쓰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 세 가지는 몸 상태의 종속변수이다. 정치한 생각과 일관된 의식흐름이 형성된 후에야 글이 가능해진다. 결국 좋은 문장력은 면밀한 관찰력과 다양한 느낌을 갖는 기억이 필요하다.

 

요약하면 글쓰기는 관찰 훈련과 독서를 통한 기억 확장을 바탕으로 한다습관화된 세밀한 관찰과 광범위한 독서를 위한 단단한 몸 상태가 글 쓰기 훈련의 바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