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후기
제 14차 박자세 해외학습탐사 몽골 2진, 2015년 7월 31일
2015년 7월 31일 일지
엊저녁부터 걱정이었다. 내일이 식사당번이기 때문이다. 같은 팀의 윤재선님도 식사 팀이라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서로 깨워주자고 부탁했다. 긴장을 한 탓인지 정확하게 5시에 일어났다. 윤재선님과 같이 다른 사람들이 깰까봐 살그머니 텐트를 밀치고 나왔다.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다. 조금 있으니 강춘모님이 와서 가스 불을 켜고 물을 얹어 놓는다. 뒤이어 박순천님이 나온다. 오늘 식사당번은 강춘모님, 박혜진님, 윤재선님, 나 이렇게 네 사람이다. 아직 박혜진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식사준비 하느라 바쁘게 돌아가는데 윤재선님이 해가 뜬다고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해가 아니고 달이었다. 빨간 달의 모양이 꼭 해가 뜨는 것 같았나보다. 오늘이 보름이라 동그란 모양이 해와 닮았으니 헷갈릴 만도 하다. 같이 보던 박순천님이 서쪽으로 지는 걸 보니 저건 분명히 달이라고 말해 셋 다 웃었다. 아닌 게 아니라 반대편을 보니 동이 트느라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어 곧 해가 올라 올 듯하다. 달이 지는 것과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동시에 본 것이다. 박혜진님도 나오고 뒤이어 박진수님, 정인식님, 박재이님 김현미님이 차례로 도와주러 나왔다. 이렇게 자원봉사 하러 나오는 대원님 덕분에 식사준비가 원활하게 돌아가는가 보다. 도움의 힘을 새삼스레 느끼며 당번도 아닌데 수고하시는 여러분들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박순천님의 지시로 착착 진행이 되었다. 식탁에 내린 이슬을 먼저 닦고, 접시에 비닐을 쒸워 반찬을 골고루 담기, 흰죽의 양을 가늠해서 맞추기, 어떻게 담아야 맛있어 보일까 생각하기, 남은 음식은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기, 먼저 먹을 것과 두고 먹을 것을 가려내기, 낮에 먹을 메뉴에 따라 무엇을 준비해야 되는지 등, 박순천님의 머리가 뱅뱅 돌아 이것저것 지시한다. 우리 셋은 지시내리기 바쁘게 쉬지 않고 움직였다. 당번이 아닐 땐 그저 감사하게 먹기만 했지 식사준비가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지 미처 몰랐다. 직접 해보니 만만치가 않았다. 그러기에 절에서는 밥 짓는 반두飯頭는 복덕을 쌓고 반찬 만드는 채두菜頭는 문수보살의 지혜가 생긴다고 말한다. 점심준비로 오이피클 다지기, 양배추 다지기, 삶은 계란 썰기, 감자껍질 벗겨서 삶기, 닭 가슴살 캔을 따서 기름은 따라내고 그릇에 담기 등을 했다. 점심에 샌드위치를 만들 때 넣을 속 재료들이다. 부엌일이 서툰 나는 다지는 것도 힘이 들었다. 그러나 아침에 미리 해놓아야 점심준비가 쉽기 때문에 열심히 칼질을 했다.
7시에 아침식사가 시작되었다. 흰죽에 김, 새우볶음, 무말랭이무침, 조개 젖, 무장아찌가 식탁에 올랐다. 그 외에 어제 남은 미역국도 끓여놓았다. 식탁에 오른 것은 말끔히 다 먹어서 설거지가 쉬웠다. 뒤처리를 후닥닥 해치우고 텐트로 달려갔다. 침낭을 말고 캐리어를 정리하는 등 떠날 마무리를 했다. 숨 돌릴 여가 없이 바쁘게 돌아간 아침시간이었다. 덕택에 다른 대원들이 식사를 편히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했다.
일지를 써야 되니 시간을 자주 보게 된다. 소련제 구형버스 2 대와 스타렉스 2 대는 오래된 놈이라 힘이 약해 충전을 할 수 없다. 촬영 팀 스타렉스가 그나마 힘이 좋아 정인식님께 충전해달라고 맡겼다. 부탁한 사람이 많아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기다려야지 어쩔 수 없지 않는가.
식사가 끝나자 아침강의다.
공부는 첫째 시공의 사유, 둘째 기원의 추적, 셋째 패턴의 발견을 하여야 한다.
공간과 시간
1. 개념의 힘
2. 절차의 힘
3. 반복의 힘( 반복은 행동의 프레임)
공간에는 생활공간(인간)과 생존 공간(동물)이 있다.
인간은 개념 공간이라 먹이가 입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동물은 감각공간이라 즉각적 반응을 하므로 입이 먹이로 향한다.
시간상 전개되는 사건→맥락→스토리
가상공간에서만 의미가 출현한다. 의미, 상징, 가상의 공간이 생긴다.
동물은 감각의 공간이라 시간의 독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감각에 구속되어 있다.
공간이 필요하면 의미의 공간이 생긴다.
오늘은 몽골역사와 세계역사 프린트 가운데서 중국사의 나라순서와 년대, 몽골역사는 토곤테무르부터 알탄칸까지 외우라고 했다. 8시 15분에 박사님은 EBS촬영 팀과 함께 알탄오보로 먼저 떠났다. 인터뷰도하고 촬영도 하려면 2시간 정도 소요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놀지 말고 부지런히 외우라고 숙제를 주고 갔다.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 한사람도 빠짐없이 일일이 다 점검 할 터이니 깡그리 외우라고 당부했다. 조금도 쉴 틈을 주지 않아 좋기는 하다. 열심히 책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우리가 탔던 A버스가 고장이 나서 엊저녁부터 손보았으나 아직 덜 끝났는가보다. 시험 운전하는 부릉부릉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니. 언제 수리가 끝나려는지 은근히 걱정이 된다. 드디어 차수리가 끝나 출발했다. 10시경이었다. 가는 도중에 낙타군단과 양과 염소 떼, 많은 말들이 무리지어 지나갔다. 풀이 많은 곳으로 이동하는 듯하다. 10시 20분, 호수가 있는 곳에 내렸다. 호수 주위는 잔디를 심었고 건너편에는 나무를 많이 심어 놓아 풍경이 아름답다. 몽골사람들이 단체로 오는 걸 보니 관광지인 듯하다. 입구에는 이곳이 철새 도래지인지 54종의 새 사진이 찍힌 간판이 서있다. 주위를 둘러보는 동안 박사님과 촬영 팀이 왔다. 10시 40분이다. 예전에는 다리강가 오익목장의 동물들이 이곳에 와서 목을 축이고 간 곳이라고 박사님이 설명했다.
호수 옆에 물이 퐁퐁 솟아나는 샘이 있다. 먹을 수 있는 물이라 몽골 기사들은 빈 페트병마다 물을 가득 담아서 들고 간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샘에서 노래를 크게 부르면 물이 이전보다 크게 솟아오른다고 한다. 마침 몽골기사 중에 바트레지멛이란 분이 민요가수여서 노래를 불렀다. 생각을 그리해서 그런지 아까보다 크게 솟아오르는 듯하다. 내친 김에 한곡을 더 불러주었다. 솟구쳐 오르는 큰 샘은 둘, 작은 샘은 열 댓 군데나 된다. 쉬지 않고 나오는 걸 보니 수량은 엄청 많은가보다. 박사님은 ‘정형된 모양이 있는 곳은 파장이 쉽게 생기지만, 여기처럼 돌로 쌓아 부정형한 모양에서는 파장이 생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몽골사람들은 이곳을 신성시 하는지 샘물을 이마에도 찍어 바르고 머리에도 바른다. 노란 승복을 입은 라마교승려가 와서 모래가루를 샘 주변에 뿌린다. 손가락 한 마디만한 비닐봉지에 넣어와 조금씩 살살 뿌려준다. 스님을 따라 온 일행들은 큰소리로 다 같이 노래를 부른다. 아까 우리들이 한 것처럼 물이 솟아오르는지 보려는 모양이다.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물을 찬양하는 노래가 아닐까 싶다. 몽골가이드 유리선생이 스님에게 물으니 ‘모래는 깨끗이 씻어 진언을 외워 만든 것으로 물이 잘 나오도록 기원하는 염불을 하며 뿌렸다. 모래는 여러 곳의 모래를 모아 만든 것으로 귀한 것이라 아껴 쓴다.’고 대답했다. 호수이름은 강가노르라고 한다.
11시 30분인데 점심을 먹자고 해서 즉각 준비했다. 아침에 만든 샌드위치 재료를 빵 위에 올려서 먹었다. 음료수는 오렌지주스와 우유다. 이른 점심을 먹고 이내 출발했다.
버스 안에서 박사님의 강의가 있었다.
다리강가 오익목장은 청나라 강희제가 준가르의 갈단과 네 번이나 걸친 전쟁에서 얻어진 산물이다. 근처에 호수와 평원이 있어 전투용 말을 기르는 목장을 만든 것이다. 1691년 다리강가 목장 위에 알탄오보를 만들라고 강희제가 명령해 세웠다. 강희제는 몽골을 분할 통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알탄오보를 세웠다. 오보는 명나라 때 처음 생겼다. 흙으로 망루를 만들어 봉화를 올리는 용도로 썼다. 청나라에 들어와서는 돌로 오보를 만들고 전국에190여개가 있었다. 나중에는 오보의 용도도 다양해져 국경, 기, 막, 박, 씨족, 개인 오보 등이 생겼다. 다리강가는 황제의 전용목장이 있어 하나의 솜(지역 단위)이 되었다. 솜은 우리나라 군에 해당한다. 지금은 철책으로 둘러져 있고 동물은 없다. 1967년에야 다리강가가 몽골 땅으로 인정받았다.
12시 30분, 알탄오보(Altan ovoo)가 보이는 곳에 다시 내렸다. 철책 안으로 돌사람이 셋이나 보인다. 하나는 따로 떨어져 있고 둘은 같이 붙어 있다. 설명을 한 간판이 영어로도 되어있어 번역을 하면 대략 이와 같다.
‘돌사람은 왕, 왕비, 아들, 며느리로 조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아기가 없는 여자라면 아기를 잘 낳게 해달라고 며느리에게 기도하고 남자라면 좋은 인연을 만나게 해달라고 며느리에게 기도한다. 14세기 페르시아 문헌에 의하면 돌사람이 몽골풍의 옷을 입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로 떨어져 혼자 있는 돌사람은 옷도 입었고 신발도 신었으나 모자는 쓰지 않았다. 옷자락이 잘 새겨져 있다. 둘 이 같이 서있는 돌사람 중 하나는 천으로 둘둘 말려 있어 얼굴도 몸통도 보이지 않는다. 남은 하나는 앉아 있는 모습으로 오른손은 잔을 들었고 왼손은 무릎 위에 놓여있다. 둘 중에 하나는 재질이 현무암이고 회색 돌은 석회암 대리석이다. 앞에는 자연석으로 제단을 만들어 놓은 것이 있다. 돌사람은 처음에는 목장의 수호신이었으나 나중에는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13세기 원나라가 제주도에 전용목장을 두었을 때 수호신으로 돌사람을 만들어 세운 것을 효시로 제주도에도 돌하루방이 생겼다. 이곳은 역사적 기록을 적은 간판이 있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볼 수있어 좋았다. 박사님도 이곳의 기록을 보고 제주도 하루방과 몽골의 돌사람과의 관계를 밝힐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말했다.
알탄오보에서 13시 10분에 출발했다. 비포장도로로 달리다가 사방이 확 트인 초원에 내려서 휴식을 취했다. 오후 3시 30분경이다. 사막이라 풀을 밟으니 말라서 버석거리는 소리가 난다. 포장도로가 나오려면 아직도 두 시간을 더 달려야 한다고 몽골기사가 말했다. 오후 5시 25분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 멈추었다. 바룬우르트(Baruun urt)라는 지명으로 제법 번화한 곳이다. 유리선생님이 버스에 올라와 물이나 식량 등 모자라는 것은 없는지 점검하러 왔다. 가스담당인 박진수님이 가스가 떨어졌다고 보고했다. 대원들 몇 명만 시장을 보러갔다. 몇 사람은 시내 구경하느라 제법 멀리 갔다가 뛰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갑자기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오후 내내 후텁지근하다가 조금 전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 이상타 여겼다. 뚝뚝 빗방울이 돋다가 비가 온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더니 폭우로 변한다. 하수도 시설이 시원찮은지 금시 물이 차올라 길바닥이 한강이다. 이때다 싶은지 폭우 속에서 머리를 감는 대원도 보인다. 하긴 닷새나 물을 만난 적이 없는 터라 샴푸가 없어도 머리에 물이라도 축이고 싶었을 게다. 한사람이 하니까 금방 전염이 되어 너도 나도 머리뿐만 아니라 아예 온몸을 던져 빗속에서 샤워하는 대원도 있어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를 흠뻑 맞아도 개운하다고 웃으며 버스로 올라온다. 몽골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광경이 아닐까.
오후 6시쯤 세차게 내리던 비가 그쳤다. 30분간 쉬지 않고 물벼락을 내렸으니 길이 온통 물바다다. 차가 다니는 데는 별 문제가 없으나 버스천정을 타고 내려오는 빗물이 좌석에 똑똑 떨어져 병을 대놓아도 소용이 없다. 세찬 빗줄기가 미처 갈 곳을 찾지 못해 앉는 자리로 내려온다. 할 수 없어 헌 타월로 막아놓고 무릎에 비닐을 덮고 앉으니 더 이상 빗물이 내려오지는 않는다. 다 올라타자 박사님이 강의를 시작했다. 버스 안에서 강의할 때 박사님은 값을 매긴다. 역사프린트는 백만 원짜리, 몽골탐사책자는 천만 원짜리, 이 내용은 몇 백 만원이라는 등. 어찌 값으로 따질 수 있겠는가. 그만큼 소중하다는 걸 강조하는 말일게다.
숙영지에 도착했다. 다른 날보다 좀 이른 시간이다. 오후 8시40분으로 몬한(Monhhaan)이란 곳이다. 비를 맞아선지 풀도 푸르고 먼지도 없다. 비온 뒤라 바람도 잔잔해 잠자리로는 최적의 조건이다.
저녁은 고추장 감자찌개로 정했다. 식사당번이라 어떻게 헤서라도 맛있게 해드리고 싶어 궁리를 했다. 고기가 많이 든 몽골 햄이 남았기에 썰어서 넣기로 했다. 몽골 것은 한국 것과 달리 굵고 통통해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박진수님과 강춘모 님은 햄을 써는 옆에 서서 먹고 싶어 하기에 드렸더니 맛있다고 엄지를 들며 또 달라고 한다. 또 누가 달라고 할까봐 얼른 썰어 야채 속으로 같이 넣어 섞어버렸다. 모두가 먹어야 할 음식이기에. 찌개에 들어간 재료는, 감자, 양파, 파, 햄, 북어포, 고추장, 된장, 간장 등이고, 재료를 다 넣어 끓으면 수제비를 떼어 넣어 한소끔 끓이면 완성이다. 저녁에 모두들 후루룩거리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보람을 느꼈다.
그런데 저녁시간에 김현미 이사가 보이지 않았다. 박사님은 밥과 찌개를 받아 놓기만 하고 수저도 들지 않았다.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니, 김향수님이 초원 앞에 있는 야트막한 오름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박사님이 김향수님과 함께 찾으러 나섰다. 커다란 랜턴을 들고. 조금 있다가 곧 세사람이 함께 돌아왔다. 오름에서 내려와 거의 다 온 지점에서 서로 만난 것이다. 김현미 이사는 연신 고개를 숙이고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며 머리를 숙였다. 길이야 잃지 않겠을거라 여겼지만 행여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을까봐 대원들이 걱정을 한 걸 알기 때문일 게다. 박사님은 너무 신경을 썼는지 식사도 뜨는 둥 마는 둥하고 끝내는 것 같았다. 아무튼 별일이 없어 다행이었다.박사님은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 남을 걱정하게 만들었다고 김현미 이사에게 좀 꾸짖었다.책임자로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한 일이었다.
저녁강의가 저녁 10시 50분부터 시작되었다. 박사님은 조금 전 일은 잊어버린 듯 강의에 몰두했다.
1890년, 몽골 울란바토르에는 승려의 수가 일만 사천 명이고 일반인은 이천 명이었다. 울란바토르의 원래 이름은 이흐후래이다. 이흐후래란 큰 울타리라는 뜻으로 간단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몰려 살기 시작해서 부쳐진 이름이다. 간단사(Gangdan Monastery)는 17세기 제 1대 복드칸 자나바자르(G. Zanbazar)dp 의해 건립되었고 ‘몽골의 심장’이라 부른다. 잔나바자르를 따르는 승려와 신도들이 모여 살았다. 그 후 몽골이 공산주의화가 되자 러시아가 1937년부터 1938년까지 몽골의 사원을 대부분 파괴시켜버렸다. 간단사도 파괴되었으나 일부는 남겨 두었다.
반야=공(空)≑중관(中觀)
글로 써서 가르치는(책을 사용) 교는 현교(顯敎)라 하고 밀교는 말 그대로 비밀스런 가르침이다.
티베트불교벨트가 생김으로 이슬람교가 티베트를 넘어 더 이상 들어오지 못했다.
밀교는 중국 원나라 때 성했다. 왕오천축국전을 지은 혜초는 밀교공부를 하기 위해 인도로 갔다가, 두 번째는 중국에 와있는 인도 나란다사의 학승인 금강지(金剛智)에게 가서 밀교를 배웠다고 한다.
현교는 공사상과 유식사상이 있다.
마하반야바라밀의 반야는 인연소기(因緣所起)이다.
연기(緣起)=공(空)을 반야라 한다.
삼법인(三法印)
1. 제법무아(諸法無我)
2. 제행무상(諸行無常)
3. 일체개고(一切皆苦)
인과 연이 만나 일어날 뿐인 것을 인연소기라 한다.
나가르주나(용수龍樹)의 중론과 그의 제자 아리아데바(성천聖天)의 백론은 공사상이며 둘은 쫑카파에 속한다.
적광(寂光)의 경지는 그림자도 남기지 않고 인과도 없다.
원효는 공(空)은 능파(能破), 유식(唯識)은 능생(能生-only mind)이라 했다.
원효와 원측의 유식사상은 신유식사상이다.
원효는 대승기신론 해동소에서 삼세육추(三細六麤)를 설하고 공과 유식을 회통시켰다. 일심(一心)은 진여(眞如-空)와 생멸(生滅-唯識)로 나누어진다.
밀교는 소작(小作), 행(行), 요가, 무상요가가 있다.
무상요가는 생기차제(生起次第)와 구경차제(究竟次第)가 있다.
구경차제는 먼저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다스린다.
1. 신(身)-정적신(靜寂身)
2. 구(口)-정적구(靜寂口)
3. 의(意)-정적심(靜寂意)
4. 환신(幻身)-중유(中有-죽음의 몸의 실체)
5. 광명(光明)
6. 상입(相入)-내외투철(內外透徹)
박사님의 강의는 밤11시 52분에야 끝났다.
강의를 다 듣고 하늘을 보니 보름달이 휘영청 밝다. 이번 탐사는 밝은 별을 못 보는 대신 밝은 달은 실컷 본다. 환한 달빛을 받으니 마음까지 훤히 밝아지는 듯하다.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사는 나는 ‘신라의 달밤’이 최고인 줄 알았다. ‘우물 안 개구리’라더니 정말 그렇다. 몽골의 달은 공기가 맑아 그런지 신라의 달밤은 근처에도 얼렁거릴 수 없을 정도로 환하다. 그믐에 뜨는 별빛도 밝지만 보름에 뜨는 달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밝다. 머리위에 북두칠성도 달에게 빛을 양보하고 어슴프레해졌다. 달빛삼매에 들어 잠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늦게 잠들었다.
군더더기 없는 스님의 단문 인상적입니다.
실수덩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