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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3일(목) 학습탐사 7일 


분주한 소리에 꿈에서 깼다. 무슨 소리지? 맞다, 나 비박했지.

어쩐지 가습기를 틀은 것 마냥 상큼한 공기가 피부 숨결에 맞닿았다. 아직도 눈에 아른거리는 밀키웨이와 카시오페아 자리. 오늘도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안심된다.

조금 늦잠을 잔 나지만, 벌써 부지런히 식사를 준비하는 당번들과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바삐 돌아가는 공기에 누워만 있을 수 없어 얼른 무거운 눈거풀을 들어 올리고 뒤엉킨 머리를 정리하며 침낭에서 꾸물꾸물 나왔다.

 

벌써 일어난 하은이와 굿모닝 아침인사를 했다. 전형적인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이다.

침낭을 대충 돌돌 말고, 침낭 패드의 바람을 푸슉 뺀 후 침낭 습기를 막는 겉옷에 뭉쳐 텐트 안으로 휙 던져 놓고 아침 식사하러 갔다.

오늘은 따끈한 스프와 마른 빵이다. 하도 건조한 탓인지, 그리 맛있던 빵들이 푸석푸석해져 딱딱해지고 꼬돌꼬돌 해졌다. 그래서 이 마른 빵을 스프에 반에 반 크기 정도로 찢어 넣어 말아 먹었다. 평소 스프에 빵이나 밥을 말아 먹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무난한 식사였다. 차가운 시리얼 보다 몇 배 푸근한 밥상이다.

 

역시나 오전강의를 끝으로 우리는 아침을 떠났다. 오늘은 샘물을 만날 수 있다는데 과연 믿어도 될지 의심스럽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아프다고, 기대하지 말아야지...

흔들리다 못해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우리는 또 공부했다. 몽골 역사를 줄줄히 암기했다.

토곤테무르 - 아유시리다르 토구스테무르 에수데르 엔케칸 엘베크칸 타이순칸 - 만도룬칸 다얀칸 손자 군비릭, 알탄칸

 

어후, 입에 착착 감긴다. 한 때 아빠가 고생대 암기 시킨다고 밥 먹을 때마다 캄! 하고 외치시면 밥숟가락 들다가도 캄브리아기, 오르도비스, 실루리아, 데본기, 석탄기는 미시시피와 펜실베니아, 페름기 줄줄 외웠어야 했는데, 이젠 자동으로 몽골까지 할 것 같다. 나 어떡해...

 

몽골 역사에 흠뻑 젖어 빠져들 때 쯤 우리는 어딘가에 도착했다. 이곳에 과연 샘물이 있을 것인가!

어느 시골의 산골짜기처럼 산 사이에 작은 비탈길이 있었다. 그곳을 내려가보니 좀더 아늑하게 산이 둘러 쌓여 있었다.

참 신기하다. 어느 날에는 말들이 다닥다닥 달리고 양떼들이 바글바글 모여있는 초원이 펼쳐져있고, 또 어느 때는 푹푹 찌고 내가 증발해버릴 것 같은, 완전 쌩 사막이 나오기도 하고, 지금처럼 공기도 맑고 거대한 돌 산으로 둘러쌓여있는 정겨운 길에 푸르른 풀들도 있고 믿거나 말건 샘물도 있다니, 나는 10일 동안 몽골에 온 것인지,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건지 웃음이 난다.

 

저벅저벅 걸어가다 샘물이 있다는 곳을 발견했다. 바닥에 작은 웅덩이가 있을 법한 얕은 구멍이 있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 샘이 말라 없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없었으면 풀들도 자라있을까. 과연 우리가 찾던 샘물이 이 곳이 맞나 헷갈릴 정도다. 기대했으면 실망했을텐데, 하마터면 큰일날뻔 했다.

 

우리들은 곧 버스로 돌아왔다. 줄줄이 서있는 버스에 자신이 탔던 버스로 되돌아갔다.

하루 세끼만 먹으니 배가 고프지, 역시 사람은 간식이 필요하다. 출출한 배를 위해 간단한 간식거리를 꺼냈다. 수 많은 짐들중 간식만 쏙 골라 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먼지 묻어가며 구석에 꼬꾸라져잇는 간식들을 하나 둘씩 꺼냈다. 말린 과일, 웨하스, 비스킷 등을 꺼내 버스대로 나누어 가졌다. , 뒤에서 하나씩 골라 넘기며 먹었다. 원래 좋아하지도 않는 말린 과일이였지만 이때 만큼 만은 마른하늘에 내리는 단비다.

 

달달한 말린 복숭아와, 웨하스를 먹으니 좀 살 것 같다.

갈증이 나 물을 마시려는데, 아차 싶었다. 항상 물은 아껴먹었어야 했지만 오늘만큼은 더더욱 물을 아껴 먹어야 한다. 어제 물이 많이 부족해서 한 사람당 1병씩 하루동안 버텨야 한다며 어제 저녁에 배급받았다. 이 물로 손도 닦고, 양치도 하고 마시기도 하고 커피 타먹을 때 써야해서 정말 금송아지 다루듯이 애지중지했다. 혹시나 물이 섞일까봐, 우리 서로 믿지만 내 물 빼앗길까봐 물 포장지에 잘 적히지도 않는 볼펜으로 여러번 쑤셔가며 이름까지 적었었다. 한 방울도 아까운 내물. 감히 누구에게도 물 좀 달라고 할 수 없는 날이다.

 

최소한의 갈증만 해소 할 정도로 물을 머금고 있다 삼켰다. 조금 과장해서, 심하면 몸이 날아갈 정도로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입 안 대고 물 마시기는 서커스다. 자칫하면 물이 콸콸 쏟아질 수 도 있다. 타이밍 간 보다가 이때다 싶으면 한번 벌컥 마시면 성공이다.

한 참을 달리던 버스가 점점 속력이 줄더니 멈추었다. 우물, 우물이다!

눈으로 보고도 놀랠 노 자이다. 그렇게 만나기 어려운 물 님.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은 빈병을 챙기며 서둘러 우물로 뛰어나갔다.

 

몽골 기사분들과 유로 아저씨가 깊은 우물 속 투명한 물을 양동이로 꺼내주셨다. 다들 빈병에 물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몽골에 자연적인 물에 손이나 발을 닦는 것은 옹골 사람들에게 매우 실례가 될 수 있는 일이라 함부로 몸을 닦진 못했고 대신 물을 채우거나 벌컥벌컥 마셨다. 약간 소금기가 있어 많이 마시면 안 좋다고 하였지만 글쎄, 짜지도 않고 생각보다 일반적인 물 이였다. 물 한 잔 마시고 머리에 물을 부으며 감는 몽골 기사분들을 바라보았다. , 나도 저 시원한 물을 머리에 부으면 날아 갈것만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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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신성한 물이라 내 마음대로 발 닦고 손 닦고 할수 없는 일이였다. 하지만 몽골기사분들과 유로아저씨가 우리에게 해도 된다며 알려주셨다. 이곳이 천국이다!

우물 앞 작은 나무 보트 같은 큰 그릇에 물이 가득 차있었다. 그냥 그곳에 드러누워 몸을 씻고싶었지만, 그 물은 사람들이 우물을 사용하고 동물들도 물을 마실수 있게끔 퍼 담아 두는 곳이라 했다.

 

철흥이 오빠가 선두로 등목과 함께 머리에 물을 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처음엔 주춤주춤 했지만 점점 한 사람씩 줄을 서서 머리를 감았다. 감는 다는 것 보단 그저 머리카락을 적시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만 해도 정말 만족했다.

 

우물 앞에 다리를 벌리고 허리를 숙여 머리카락을 치렁치렁 내놓으면 기사님들이 물을 직접 퍼서 머리에 부워주셨다. 뻗뻗하고 열이 후끈 달아오른 두피에 시원한 물이 촤자작 하며 맞으니 정말 황홀했다. 이게 얼마만의 물인가. 사람들은 젖은 미역을 하나씩 머리에 얹고 있었지만 얼마나 빛이 나던지, 허물 때를 벗으니 샤방샤방한 외모가 드러났다.

때마침 물도 부족했는데 물도 채우고 머리도 상쾌해지고 일석 이조였다.

마지막으로 우물을 떠나면서 물을 내준 몽골에게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으며 동물들도 물을 마실수 있도록 물도 채우고 왔다.

 

버스에 앉아 앞을 보니, 번지르르 했던 머리들이 방금 빨래한 미역마냥 사람들이 뽀샤시하다. 드라이기도없고 샴푸도 없었지만 최고로 개운했다.

물이 완전히 맑지는 않아 식수보단 허드렛 물로 사용했다. 더운 날씨를 이겨내기위해 저마다 모자를 뒤집어 물을 부어놓고 쿨 타워나 스카프를 적셔 목에다 걸쳤다. 목이 시원하니 온몸이 선선해졌다. 처음 그 물은 맑았지만 점차 이물질들이 가라앉으면서 나중에는 누리끼리한 색이 됬었다. 식수로 마시지 못한 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이제 허드렛 물이 생겨 식수가 여유 있어져 감사했다.

 

우리는 초원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B버스에 문제가 생겨 고치는 김에 해결한 것이다. 역시나 점심은 뻗뻗한 샌드위치였다. 그래도 야채들이 생각보다 신선하고 소시지와 칠리소스가 어우러져 퍼석한 빵을 채워줬다. , 굳이 숫자로 매긴다면 48. 아무래도 건조한 탓에 푸석한 빵의 구멍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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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우리는 비치기틴 암에 갔다. 그곳은 벽화가 그려져 있는 곳인데 정말 말로 설명할수 없는 무서운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벽화. 벽에 그린 그림인데, 그림이라는 것 자체가 자연적인 것이 아닌 사람이 머리로 생각하고 손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내 친구가, 아빠가, 엄마가 한달전, 1년전, 10년전에 그린 그런 그림도 아닌 구석기 시대에 그려진 벽화이다. 그리고 누가 그렸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혹시 아나? 내 할아버지의 증조할아버지의 고조할아버지의 왕할아버지의 킹왕짱할아버지 가 그린 그림일지...

5학년 수학여행 때 박물관에서 벽화를 봤었다. 별 느낌 없었다. ‘, 벽에 그림이 있네.‘

내가 나이가 좀 더 성숙해져서 인지 몰라도 직접 내가 현장에 와서 두 눈 부릅 뜨고 보니 소름이 끼친다.

 

옛날 사람과 이야기 하는 느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않나? 아니, 말 된다.

정말 가능 하다. 꼭 말로만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다.

짐승의 뿔은 과장되어 표현되어있다. 그리고 뾰족하고 예술적인 곡선으로 표현되었다.

아마 이 그림을 그릴 당시엔 뿔이 중요했었던 걸로 생각된다. 그래서 뿔을 집중적으로 표현한 걸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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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을 쏘며 사냥하는 사람과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아마 내가 어렸을 때 그린 자동차도 50만년이 지나서 누군가 보면 지금 내 기분일까?

벽화를 통해 멧돼지부터 양, 염소, 순록의 모습을 구석기인이 말해준다.

아직도 선명히 새겨져있는 벽화로 잠시 구석기인과 대화한 기분이였다.

 

몽골 기사분들이 몽골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몽환적인 구슬픈 노랫말에 벽화를 보는데 온 몸에 전율이 돋았다. 벽화에 알맞은 포장이였다. 너무 소름이 돋아 눈물이 찡 하기도 했다.

잠시 메트를 깔아 휴식을 취하며 강의가 시작되었다.

 

하루종일 걷고 움직이고해선지 엉덩이를 내리자마자 졸음이 밀려왔다. 졸음과 더불어 자글자글 발도 저려왔다. 다리를 피고 싶은데 작은 메트속 사람들이 옹기종기 몰려 앉아 공간이 없었다. 강의는 ‘5분내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요약하자면으로 마무리 될 듯 하면서도 이어졌다. 계속 저려오는 발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한 쪽으로 일어섰다. 땅에 발이 닿는 순간 발바닥 신경이 찌릿하게 곤두서며 지지직거린다. 저린 발이 반 쯤 풀릴 무렵 강의가 끝났다.

 

빨리 버스로 돌아가 쉬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이 좋은 장소를 EBS는 헬리캠으로 촬영한다고 한다. 그래서 지친 몸을 이끌며 다시 여러군데로 퍼져 언덕으로 올라갔다. 힘든 것을 표출하고 싶지만 EBS팀 또한 카메라 들고 쉴틈 없이 촬영하기에 내색 없이 PD말을 따랐다.

이윽고 수백마리의 벌 소리가 울렸다. 헬리캠이 날아 오른 것이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벽화를 보는 척 연기하며 헬리캠에게 가벼운 손인사를 해주고 버스로 돌아왔다. 헬리캠은 비치기틴 암 전체를 휭휭 돌았다.

 

해는 있지만 점점 오후에서 밤이 되가는 시간이 왔는지 약간 어둑어둑 해졌다. 아직은 밝지만.

우리는 주유소를 들렸다. 어느 마을에 들어갔는데 주유소 근처에 슈퍼가 있다한다. 슈퍼에 가서 전체 대원들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아이스크림... 쫀득하고 통통한 이 아이스크림이 혓바닥에 닿는 순간 감격이 확 올라왔다. 경쾌하기 까지 했다.

 

흥이가 콜라를 사줘 더욱 풍미로웠다. 톡톡 터지는 탄산과 콜라 특유의 달톰함. 탄산음료를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이때 만큼은 절실했다. 흥이야, 고맙다.

아이스크림 막대를 쪽쪽 빨며 정자 비슷한 오두막 같은 곳에서 앉아 잠쉬 쉬었다.

역시 마을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보였다. 볼이 발그레 빨간 꼬마숙녀, 정말 매력적인 얼굴이다. 우리가 누군지 궁금하지만 또 부끄러운 표정이였다.

자전거를 타는 남자아이. 마을의 정겨움이 묻어나는 귀여운 회색 티셔츠에 빨간 모자를 거꾸로 썻다. 영락없는 개구쟁이 모습이다. 어찌나 자전거를 잘 타던지 브레이크를 걸 때 옆으로 미끄러지며 밟는다. 그 광경에 감탄사를 연발하니 어깨를 으쓱하며 보란 듯이 우리 앞을 씽씽 타며 달려간다. 사탕 두 개를 쥐어주니, 고마워서인지 계속해서 우리 앞을 지나가며 브레이크 묘기를 보여주었다. 이런, 더 주고픈데 사탕이 더 없네.

 

날이 저묵저묵 저물어 가니 슬슬 버스로 이동했다. 아직 주유가 덜 끝난 버스를 기다리며 한 쪽 공간에서 역시 강의를 시작했다. 아빠와 청중 그리고 시간만 있다면 어디든지, 비가와도 눈이와도 하늘이 두 쪽나도! 강의는 시작된다.

 

아빠는 내게 몽골역사와 중국역사를 발표해 보라고 하셨다. 방금 전까지 달달 외운 역사들이 머릿속에 섞여 지들끼리 지지고 볶으며 논다. 머리가 새하얘지며 더듬더듬 발표를 했다.

몽골 대칸과 중국 역사 순서와 연대등을 하나하나 천천히 읊었다.

아빠가 부연 설명을 해주시며 내 발표가 끝났다. 아빠는 왠지 뿌듯한 표정이다.

, 오늘은 두발 쭉 뻗고 잘 수 있겠구나.

해가 산 밑으로 뚝 떨어지고 나서야 숙영지에 도착했다. 어둠속에서 텐트를 치고 밥을 먹었다.

 

늦게 도착한 만큼 별도 선명했다. 북두칠성과 북극성부터 여름 대삼각형 까지. 아빠는 특수 레이저로 별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설명해 주셨다. 일교차가 있어 어둑할땐 써늘하다못해 오들오들 춥지만 최고의 하늘을 보고 있어 추운지도 몰랐다. 사실 알고있었지만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별을 보느라 신경도 안 쓰인다. 별 하나라도 놓칠세라, 집에 돌아가면 별도 없다 생각하며 후회하지 않게 뚫을 기세로 보았다.

별은 어디서 보든 똑같은 구도일테지만, 직접 보며 공부하면서 보면 조금씩 다르다는 걸 알게되고, 한 층더 멀리 바라볼 수 있고 더 많은 별을 보는 것 같다.

 

두 번째 비박이다. 비박을 할 수 있는 조건이여서 너무나 감사하다. 어둑한 밤하늘을 천장으로 삼으며 꿈속으로 점점 깊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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