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후기
백두산 천지에 올라가서 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천지가 아니었습니다. 조선이라고 써진 비석입니다. 이 비석 뒤로 중국이라고 한문으로 쓰여 있습니다. 여기에 학습탐사의 모든 감정이 쏟아 부어졌습니다. 역사를 왜 알아야하고 느껴야 하는지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백두산 천지 앞에 하나의 비석에 앞 뒤로 조선과 中國의 붉은 글씨가 선명히 세겨져 있다.
이번 학습탐사에서는 고조선 시대에 해당하는 석기 및 청동기 문화, 요동과 요서 지방의 패권을 장악했던 거란의 요나라, 북위, 북연, 그리고 누르하치, 홍타이치의 왕궁, 그리고 광개토태왕비와 무덤, 장수왕릉, 고구려 시조인 주몽이 평생 살았다고 하는 졸본성 등을 다녀왔습니다.
가장 감명 깊었던 건 우리 현재(現在) 이해의 역사적 실마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는 화석화되지 않고 우리와 함께 살아 숨쉬는 역사입니다. 현재와 단절된 과거는 역사로서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E. H. Carr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말했고, 베네딕토 크로체(B. Croce)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 역설하였습니다.
그러나 함정은 현재의 관점으로도 과거를 평가할 수 있음입니다. 해석에 반대한다의 수잔 손택의 말처럼 과거의 이해 없이 지금의 역사 이해는 의미적 손실을 가져옵니다. 역사의 맥락적 흐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합니다. 동북아의 역사 다시말해, 중국대륙, 만주, 한반도, 일본등의 역사가 역동적으로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이 2017년 현재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삼국시대 당시에 당나라는 삼국을 좌지우지 하려고 합니다.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이야기인 서동요도 사실은 당나라가 백제와 신라를 엮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고구려나 고려 초기 등 일정한 시기를 제외하면 오랜 세월동안 우리는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사대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사실상 속국에 다름 없었습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소극적이고 조금은 패배적일 수 있는 우리의 관점입니다.
그런데 중국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참 특이한 나라입니다. 분열과 통합을 거듭해온 대륙의 기나긴 역사에서 한반도는 중국 땅이 되어 본 적이 없습니다.
수나라 실패에도 불구하고, 당나라는 645년에 고구려를 침공합니다. 200리에 이르는 갈대밭과 강을 지나면서 당태종은 돌아갈 배와 다리를 불사릅니다. 배수의 진을 친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듯이 고구려는 당나라군을 격퇴 시킵니다.
광개토태왕과 장수왕 때에 비해 국력이 쇠하였지만 여전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요. 고구려 공략을 위해 백제와 신라를 연합하게 하여 고구려 밑을 공략합니다. 위, 아래, 해상까지 공격하며 고구려 군사를 분산시키는 작전입니다.
당나라는 660년에 사이좋게 지내던 백제의 금강에 13만 대군을 보내 사비성을 함락시킵니다. 뒤통수를 친 것이지요. 그때 온 당나라 장수가 소정방입니다. 현재 인천 남동구에 있는 소래포구의 소래(蘇來)가 소정방이 왔다 해서 생긴 지명입니다. 664년 백제부흥운동의 일환이었던 ‘백강전투’는 일본으로 탈출했던 백제 유민과 호족 세력, 군대가 야마토 왜군과 함께 벌인 전투였습니다. 이때 참가 했던 왜군의 규모가 5만에 달했으며 거의 전멸했습니다. 당시 왜의 거의 전군에 해당할 정도의 군사가 전멸함으로써 일본 내에서 정치적 격변이 일어납니다. 율령국가가 출현함으로써 국가형태의 나라가 세워지는 계기가 됩니다.
정리하자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는 국지전이 아니었습니다. 동아시아 패권과 권력 구조를 재편성하는 국제 대전이었습니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모든 전쟁이 국제전이었습니다. 가장 최근의 6.25전쟁까지도 포함됩니다.
이 역사적 사실을 알고 백두산 천지에 올랐을 때 보이는 조선과 중국이 새겨진 비석은 깊은 상념과 통한의 역사를 함께 느끼게 합니다. 밀란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첫 장은 가장 무거운 말로 ‘영원한 재귀’라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역사의 순환입니다. 과거 국제 정서와 지금의 국제 정서는 같은 상황입니다. 남과 북으로 갈려져 있는 한반도는 힘을 쓰지 못하고 북한은 중국의 눈치를 보고, 한국은 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호동왕자와 선화공주를 당나라가 엮었듯이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동맹을 강화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위안부 합의라는 조건까지 내걸면서 한일 동맹을 만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고구려 후예인 북한의 주석궁에 누군가는 젊은 나이에 핵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백두산 천지가 눈에 덮여 있다. 신화와 역사의 시간이 여전히 거기 그대로 놓여 있다.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의 통일의 당위성은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 고구려가 그 당시 북위, 북제, 송의 위진 남북조 시대에 중국을 대등한 관계로 대하고, 통일 신라가 당나라와 매소성, 기별포 전투 등에 승리할 정도로 강한 힘을 가졌던 것은 하나로 뭉친 힘의 결과입니다.
박자세 학습탐사를 통해 내 피에 흐르고 있는 역사의 시간을 느끼고 내가 어느 시간에 놓여 있는지를 알고 왔습니다.
17살에 왕위에 올라 18살에 백제 정벌 26살에 거란 토벌하고 요동 평원을 점령한 광개토태왕과 국민의 촛불에 끌어내려진 어느 대통령의 오버랩은 깊은 상념을 줍니다.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나는 과거부터 한 번도 끊어지지 않은 역사의 증거물입니다. 이미 내가 있음 하나가 현대사입니다.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뽑는 선거는 민주주의에 핵심입니다. 앞으로 우리의 기대 수명은 150살 이상이 됩니다. 내가 살고, 내 자식과 후손에게 물려줄 이 땅의 역사는 투표를 통해 이뤄집니다. 역사의 순간에 모두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조선과 중국 원하든 원하지 않든 끊임없이 역사를 같이 할 수 밖에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