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후기
4월 30일
우리탐사대원은 매일 5678 강행군의 탐사일정을 소화했다.
5시 기상
6시 아침강의
7시 아침식사
8시 출발
우리는 이를 백두열차 5678로 부르곤 했다.
박사님은 목이 많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열강을 하신다.
송신기의 소중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모두 박사님이 목소리 높이지 않기를(박사님 목 보호를 위해) 간절하게 바라며 조용히 송신기에 귀기울인다.
지난 과학리딩수업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탐사도 10개의 프레임 완성을 목표로한다.
아침과 저녁 강의를 통해 프레임이 하나씩 완성되면
버스이동시간을 통해 암기와 발표가 이뤄지는것이 이번탐사 목표다.
프레임 #1 (탐사책자 97쪽)
313 미천왕 낙랑축출
400 광개토대왕 백제 왜 제압 신라구원
427 장수왕 평양천도
475 장수왕 한성백제 멸 개로왕졸 (백제 웅진천도)
553 진흥왕 한강하구 확보 나제동맹파기
598 수-당 전쟁시작 (16년동안)
698 대조영 발해2건국
918 왕건 고려건국
프레임 #2 (탐사책자 99쪽)
고구려왕 28명
주몽(BC 37~BC 19)-유리왕-대무신왕(아들 호동왕자)-민중왕-모본왕-태조왕-차대왕-신대왕-고국천왕-산상왕-동천왕-중천왕-서천왕-봉상왕-미천왕(300~413)-고국원왕(331~371)-소수림왕-고국양왕-광개토대왕(391~)-장수왕(~491)-문자왕-안장왕-안원왕-양원왕-평원왕-영양왕-영류왕-보장왕(642~668)
프레임 #3 (탐사책자 101쪽)
소하서 문화 BC 7,000~
흥륭와 사해문화 BC 6,000~
조보구 문화 BC 5,000~
홍산 문화 BC 4,500~
소하연문화 BC 3,000~
하가점 하층문화 BC 2,000~
하가점 상층문화 BC 1,500~BC 800
3개의 프레임을 학습한후 북탑을 향해 이동
8시 40분 북탑과 북탑 박물관 도착
박물관에는 1988년 보수하며 발견된 사리와 사리탑, 유리주전자 (2012년 세계문화유산등재), 보살상, 기와, 성터등이 전시되어 있다.
고구려와 발해의 기와에 손도장이 찍혀있는데 크라이스 성터에서 발견한 장구총위 전각에도 손도장이 찍혀있는걸로봐서 발해가 고구려의 후예임을 알수 있다.
북탑은 탑 안으로 올라갈수 있는게 특징이다. 우리나라의 황룡사 9층목탑과 유사하다.
건평으로 이동하는 2호차 버스에서는 프레임 1, 2, 3 암기 학습이 진행된다.
점심식사후 바로 우하량 유적지에서 여신묘와 적석총으로 향했다.
2시 30분 여신묘 도착
여신상은 흙으로 빚어졌으며 안구는 옥으로 이루어진것이 특징이다.
1981년 발굴을 미루고 돌아가려던차에 소변을 보다 오줌에 흙이 씻겨 도자기를 발견하여 여신묘를 찾게 되었다니 유물은 어쩌다 발견되나보다.
대원들은 하나같이 유적지 주변풍경이 낯설지 않고 편안하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낮은 구릉과 키낮은 60년 이상된 소나무 맑은공기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낮설지 않음이 우리의 조상의 혼이 이곳에 흐르는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하량 유적지는 홍삼문화, 요하문명의 꽃이다.
장군총은 무기단=> 기단=> 계단=> 계단식 석실분으로 발전한다.
이부분은 고고학의 분야다.
첫번째 발견 유적지(적석총)는 유물들을 보호하기위해 철저한 단열처리를 위해
1억 위안을 들여 만든 건물로 쌓여있다.
박사님 강의
"유적지 보호를 위해 200억을 쓰면서 박물관화장실은 재래식으로 하나밖에 짓지않는 이들의 문화를 생각해봄직하다.
문화의 패턴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예를 들면 무덤의 양식)
문화와 문명의 차이를 알자.
물질문화는 급변한다 예를 들어 핸드폰의 사용, 빗살무늬토기에서 무민토기, 비파형동검에서 세형동검으로으 변화, 삶의 패턴을 보며 시대를 파악하자"
우리가 무언가 큰 것을 놓친 느낌이 든다.
적석총을 뒤로 하고 나오는 박물관벽이 탐사대원을 잡는다.
온통 처음보는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로 암석학 강의로 이어진다.
이 암석은 화산지역에만 나는 암석으로
호산 편마암에 마그마가 스며들어 안구적 편마암이 된다. 엄청난 변성에 의해 마그마 타이트, 혼성암으로 변화한다.
암석문양을 보고있자니 의류 문양으로 사용해도 될 정도로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화장실에서는 안구적 편마암 문양의 타일을 사용하고 있었다.
3시 55분 기념사진 촬영후 유적지를 뒤로하고 녕성으로 이동한다.
오른쪽 창밖에는 세번째로 발견되어 발굴을 기다리고 있는 넓은 유적지가 보인다.
왼쪽으로는 쟁기를 끄는 말(가이드말로는 당나귀라고 했다)과 농부의 모습,
넓은 포도농장과 공사중인 도로, 냇가엔 연휴를 즐기는 중국인들, 길 양쪽에는 백양나무가 우리 탐사대원을 반기기라도 하듯 예쁘게 줄지어 있다.
"밖의 풍경을 보면서 현대와 연결할때 역사는 현대사가 된다"는 박사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요중경의 중경탑입구는 1년에 한번 열리는 축제로 현지인들이 길을 막아 일부대원들이 보고파하던 시장을 통과해서 중경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중경탑 주변으로는 흙으로 쌓은 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향을 피우며 절을 하는 현지인들을 볼수 있었는데 그 향의 크기에 놀랐다.
야시장에서 일부 대원들은 물건을 사기도하고 탐사총괄팀은 과일을 사서 나누어주었다.
6시 50분 적봉으로 이동
8시 20분 적봉에서 저녁식사후
9시 10분 저녁강의
"왜 암기를 해야 하는가?"
1. 지속적 인간 (사고의 지속성)
2. 정서적 인간 (기억량에 비례) 기억하지 못하면 울지도 웃지도 못한다.
3. 창의적 인간 (창의성의 본질은 암기)
다시한번 암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강의 였다.
이번탐사는 첫째도 암기 둘째도 암기다.
5678 학습탐사~~~ 제목 하나로도 충분히 학습탐사의 정경이 그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