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후기
4월 29일
만주 백두산 탐사는 내가 몽골탐사에 이어 두번째로 참가하는 해외 학습탐사다 . 기대와 설레임으로 기다렸던 탐사로 아침일찍 서둘러 공항에 도착했다.
5시 30분 연휴와 겹쳐서인지 이른 새벽부터 공항은 북새통이다. 탐사 총괄팀는은 벌써 도착해서 회원들에게 책자와 이름표 송수신기를 나누어주고 있다. 몇일 전부터 탐사준비로 힘들었을 총괄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만주 백두산 탐사대는 남자 25명 여자 32명(학생 8명) , 총 57명으로 대규모다. 비행기 탑승과 학습, 현지에서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6개의 조로 편성했다. 나에게는 6조 조장과 전체일지 미션이 주어졌다. 6조 대원은 남미진, 이성희, 이재상, 박진수, 설명옥, 김형문, 박용진, 구기영, 박순천대원 모두 9명이다. 글을 써 본적 없는 박자세 입문 1년차, 학습도 따라가기 버거운데 걱정이 앞선다. 탐사 총괄팀 박순천대원이 함께하니 든든하다. 해외여행객이 많아서인지 줄이 너무 길어 수속시간이 많이 걸렸다. 해외학습탐사시 항상 이뤄지던 공항에서의 학습시간은 주어지지않았다. 8시 5분 인천출발 9시 10분(현지시간) 심양공항 도착 밖의 공기는 뿌옇다. 중국의 황사인듯하다. 이를 예상하고 마스크를 준비한 대원들이 보인다. 역시 준비가 철저하다. 한꺼번에 외국인입국자가 많아 지자 우리를 내국인수속줄로 안내하여 입국수속은 빠르게진행됐다. 몇년전 일본간사이 공항에서 내국인줄이 텅 비어있는데도 외국인을 2시간넘게줄세웠던 때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가이드와 미팅후 1,2,3조는 1호차에 4,5,6조는 2호차에 승차후 요녕박물관으로 이동한다. 가이드는 중국의 전체적인 인구분포와 역사를 간단하게 설명한다. 5월 1일 ~ 4일과 10월 1일 ~4일은 중국의 대표적인 휴가철이라고 한다. 도로사정이 만만치 않음을 예측할 수 있다. 10시 40분 요녕박물관 도착 박물관은 1년전에 이전해서 청나라 요나라 금나라 유물이 전시되어있고 고구려 유물은 아직 전시되지 않았으며 2~3년 뒤에나 전시될 예정이라고 하니 아쉬울 따름이다. 고대비석의 비문과 다양한 한자체가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박사님 설명을 들으며 박물관을 돌아보니 박물관이 딱딱하기만 한곳이 아니구나 싶다. 유물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역사와 연결해서유물을 보니 재미있고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유난히 옥 유물이 많이 전시 되어 있다. 장신구에서 장식품, 종류와 크기 색깔 문양이 다양이 다양하다. 그 섬세한 아름다움이 그 옛날 홍산문화유적으로 기원전 4,500년 전의 유물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옥으로 만든부장품이 몇 개 나왔느냐에 따라 계급을 알수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장인이 필요했을까 짐작이 가지 않는다. 탐사대원들이 비문앞에 섰다. "전서, 예서, 초서, 행서, 해서, 이건 한자체의 종류인데 예서와 초서는 비슷한 시기에 나오고 발달된 순서랍니다" 김우현대원의 설명이다. 김우현대원의 박식함에 또 한번 놀란다. 1시간으로 예정되었던 박물관답사는 1시간 40분이나 진행되어 계획보다 늦은 점심을 먹고 심양고궁으로 이동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심양은 신도시 답게 현대식 건물이 많이 보인다. 지금도 공사중인 현장이여러곳에서 목격 되었다. 청나라의 첫 고궁에 도착했다. 밖에서 궁은 그리 커 보이지 않았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크고 넓게 펼쳐져 있다. 중국연휴와 겹쳐서인지 중국관광객이 많고 황사와 바람이 심해 관람하기도 숨쉬기도 쉽지않다. 일부 대원들은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들이 몹시 부럽기만 하다. 중증전 한복판에 용이 등장한다. 발톱과 머리의 모양이 움직임이 살아있는듯 생생하게 표현되어있다. 용은 흥륭와 사회문화(BC 6,000년)에 등장한다. 세계문화유산등재된 대정전은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24개의 기둥 12개의 창문 4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24절기, 12개월, 춘하추동을 의미한다고 한다. 고궁에서 박사님의 역사강의를 듣고 돌아보니 눈에 들어오는것이 많아 좋다. "중국에서는 모든문화도 황제를 위해 존재할뿐이다. 과거 그렇게 발달된 동양문화가 발전할수 없었던 까닭이다. 동양에서 시계가 시간을 보는 예술품으로 존재할때 서양에서는 시계가 산업으로발전하여 양자학 상대성이론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박사님의 이 말씀은 내가 그동안 궁금했던 '번창했던 중국문화가 왜 멈춰졌을까?'에 대한해답을 찾았다. 9시 넘어 늦은 저녁식사후 저녁강의는 쉬기로 하고 바로 숙소로 이동한다. 안락한 침대를 보자 작년 몽골 탐사를 떠올랐다. 씻을수 있음에 감사하고 침대에서 편하게 쉴수 있음에 감사하다.
1946년에 출판된 이미륵 선생의 '압록강은 흐른다'에서 심양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 만주의 수도인 심양도 역시 이러한 무방비 평야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그 육중한 성벽은 무서운 성의 인상을 주었다. 중앙 아시아에서 불어오는 폭풍과 몽고 사막에서 날려 오는 먼지에 싸인 이 성이 바로 아시아의 절반까지 확장된 만주 세력의 본거지였다. "
이미륵 선생이 일제 시대에 압록강을 헤엄쳐 탈출하여 독일로 가는 도중에 들린 곳이 심양이었지요. 그 당시에 심양은 한 때 마적 출신이었던 장작림 장군이 지배하였습니다. 성벽에는 처형장이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처형된 사람의 표가 있었다고 합니다. 묘 앞에 한결같이 비와 먼지로 바랜 나무 묘비에 이름, 연령, 직업이 적혀 있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만주의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피에 역사와 점령되고 그 위에 사막의 바람과 모래가 불어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