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박사님께서 겁을 많이 주셨기 때문에 (“설악산 대청봉 가는 것 만큼 힘들다”)

조금 긴장한 채 운동화 끈 바짝 조여매고 캄캄한 새벽 집을 나선다.

충분하지 않은 몸훈련이 오늘의 강행군을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도 된다.

차창 밖으로 안개에 휩싸인 대지를 뚫고 여명이 밝아온다.

안개가 많다는 건, 오늘 날씨가 맑을 징조. 시작의 기운이 좋다.

기차가 살짝 연착하여 지하철 타려던 걸 취소하고 택시를 탄다.

그래도 조금 늦어서 멤버들은 이미 전시관으로 입장을 모두 한 터이다.

중앙박물관의 위용을 보며 뛰어서 들어간다. 앤디가 반갑게 맞이하며 프린터물을 나눠준다.

뒤늦게 어떻게 박물관을 관람하며,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었던 것을

다른 분들의 후기로 알게 되었다. 천오백년 전에, 오백년 전에 살았더라면 어떠했을까?

그런 시각을 갖고 본다면 달리 보였을 전시물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늦으면 안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어떤 경우도 놓치면 자기 손해인 것이다.

시작부터 상세한 설명들이 이어진다. 거의 강의를 하시는 것 같다.

휴일이어서인지 어린이들을 동반한 관람객도 많고 실내가 소란스러워서 설명을 듣기가 만만치 않다.

뒤쪽에 있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다.

설명을 놓치지 않으려고 기를 쓰다 보니 집중도는 높아지고 몸의 피로도는 잘 감지되지 않는다.

불편한 상황이 반드시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공통의 패턴을 발견하라는 말씀이 계속된다.

공통적으로 전인류에게 나타난 현상은 물리적 실체가 있는 것이고

이것은 브레인의 진화와 관련이 있다.. 라고.

동굴벽화, 흑요석, 순장제도, 토기의 출현(잉여생산물 생성–인구밀집–계급분화–고대국가로의 발전),

왕권의 상징물인 도끼. 조개가면, 신분제 사회를 나타내는 복식과 그 정점에 있는 편두 풍속,

self의 형성과 관련 있는 동경의 출현, 문자의 등장 등등.

핵심적인 사항을 빨리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신다.

그저 스치며 ‘그렇구나’라고 고개 끄덕이고 지나치고 말았을 지점에서

멈칫 발을 멈추고 집중하고 들여다보게 된다.

동서양의 인류사 전체를 종횡으로 엮어내는 강의를 들으며

역사공부의 관점과 시야를 획득하는 최고의 배움의 장이 되어준 박물관 탐사. 역시 ‘학습탐사’이다.

인류사에서 천년을 유지한 국가는 로마와 신라뿐이며

신라의 독특함은 한 왕조의 운명이 끝났음에도 그 문명의 원형이 파괴되어 사라지지 않고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는 점에 있다며 자부심 가지고 신라사를 다시 보자는 지점에서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박물관은 한 두시간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 그대로 실감이 나는 순간이다.

중앙박물관은 한번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해외학습탐사를 대비하여 여러 번 와 봐야 하는 곳이니,

점심식사 후에 과천국립과학관으로 이동하기로 한다.

과천과학관까지는 지하철로 이동하여 자연사관, 기초과학관을 중심으로 둘러보았다.

137억년 우주의 진화 강의를 통해 배웠던 내용들을 전시물로 접하니 반가웠다.

과학관을 돌아보며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가 라는 것을 선명히 깨닫는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이 아니라 ‘암기’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암기되지 않은 지식은 깡그리 모르는 것이다. 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며,

‘외우자’를 속으로 되뇌인다.

옅은 어둠이 내려 앉을 무렵, 박자세 5회 국내학습탐사가 마무리된다.

이번 국내 학습탐사에는 부모님을 따라온 꿈나무들이 많았다. 진지한 자세로 눈빛을 반짝이며

끝까지 함께 한 어린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더욱 반갑고 뜻 깊은 탐사였다.

흥미와 호기심으로 촉발되어진 싹이 미래에 어떤 훌륭한 나무들이 되어줄까, 정말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