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후기
서호주 마블바
서호주 학습 탐사의 소감을 묻는 말에 얼버무리듯 “그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이었구나를 떠나간 뒤에 알게 될 것 같은 심정”이라고 애매하게 답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감동을 느끼고 탄사를 연발하는데 저는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잘 모르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좋은건 확실한데 ‘무엇이 왜’냐고 물으면 멍하고 몽롱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처음엔 이진홍 선생님의 말처럼 표현하면 사라질 것 같은 풍경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라질 것 같은 벅찬 감정을 화려한 수사도 없이 지그시 눌러 문자로 새겨 주시는 법념 스님의 글을 다시 읽어 봅니다. 여러 회원들이 올려주신 사진을 되풀이해 봅니다.
서호주에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나서야 그곳이 그리워집니다. 다정도 병인지라 잠 못 이루고 새벽 마당에 나가서 비가 뿌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마블바의 언덕에서 본 풍경을 떠올리고 비오는 하늘에 별이 보일 리 없건만 지붕 사이로 고개를 기웃거립니다. 거실에 앉아있다가도 문득 창밖 하늘을 바라봅니다. 비 갠 하늘엔 바람에 흔들리는 단풍나무가 보이지만 시선은 밖으로 머물지 않아 희미해지고 한 달 전 마블바의 언덕을 떠올립니다. 너무 커다란 해일 앞에 가까이 서면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듯이 35억 년 전 붉은 땅의 덮쳐오는 감동을 당시에는 감당하지 못했던 겁니다. 비행기로 7시간을 날아오고 한 달이 지난 뒤에야 그곳의 느낌이 제게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우주적 시공간이 주는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간의 감각으로 소화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었나 봅니다. 이럴 줄 몰랐습니다.
사람을 집중해서 관찰하는 습관 때문에 서호주 탐사는 인물열전을 쓰고 싶을 만큼 함께 한 대원들에 대한 인상적인 기억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이름도 모르겠는 암석보다는 내 눈 앞에서 웃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훨씬 매력적이었으니까요. 기쁨과 흥분이 차차 가라앉고 나자 박사님이 수업 중 요구했던 생명의 흔적을 걷어내고 세상을 바라보라던 요구에 조금 가까워졌습니다. 슈퍼노바를 통해서 지구에 온 우주의 역사와 생명의 근원을 함께 탐사하고 공부하는 대원들 덕분입니다.
생명의 기원이 되는 샤크베이의 스트로마톨라이트, 그린스톤 벨트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은 비너스 벨트, 이것은 진정 탐사로구나 알게 해 준 카리지니 협곡, 귀엽게 생겼지만 가까이 할 수 없는 가시 풀 스피니팩스와 초콜릿같은 조립현무암, 감탄을 자아내던 밤하늘의 은하수와 포말하우트...... 기억을 헤쳐내면 꽉 차다 못해 넘치는 서호주 탐사. 그중의 백미를 꼽으라면 당연 마블바의 산상수훈입니다. 그것은 존재의 근원에 대해 먼저 탐구한자의 지혜를 명확한 언어로 나누는 자리였고, 자연과 우주에 깊은 경외감을 온몸으로 느낀 자리였습니다.
오병이어가 따로 있다고 보질 않습니다. 나누고자하는 간절함이 각자 챙겼던 주머니와 보따리에 있던 빵과 고기를 풀게 하였고 굶주림을 풍요로움의 기적으로 바꾸었듯이 생명현상의 근원을 파고들어 우주에까지 생각의 통섭을 먼저 이루어낸 사람이 그 감동을 전하는 일을 시작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거인의 어깨가 되어주는 경험이 저에게는 기적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구체적인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그 느낌은 단순히 기억의 서랍에서 어쩌다 꺼내보는 추억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리할 겁니다. 살아가는 동안에 풀고 싶은 화두를 잡은 셈인데 문제는 이 화두를 표현할 언어를 골라낼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럴 줄 알았습니다. 이것은 제가 가진 언어의 빈약함이요, 학습 탐사의 내용을 제대로 익히고 이해하지 못한 탓입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대강 흉내만 내왔던 게으른 공부 습관 때문입니다. 사람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하니 하루아침에 이 버릇이 고쳐지지는 않을 것이나 혼자 공부하는 것이 아니니 박자세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되풀이하다보면 제 공부도 기적이 아닌 일상이 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6월 천뇌 발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김현미 선생님과 슈퍼문을 바라보았습니다. 커다랗게 배가 불러서 자기 몸을 주체할 수 없어 땅 위로 떨어질 것만 같은 달을 보고 전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질문을 해 봅니다. 근데 저 달은 무슨 암석일까?
내 이럴 줄 알았습니다.
박수미 선생님이 이렇게 근사한 분일 줄^^
탐사중 새벽강의를 놓쳐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 마블바 품속에서 오랜 기억을 더듬느라 빠진 그자리가 너무 아쉽습니다.
역시 기록이 중요합니다.
앞으론 탐사의 백미인 새벽강의는 모두 녹음해야겠습니다.
와우 은근 글이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같은 조였던 박수미 선생님~!
박자세를 소개한 남편 분을 원망도 했었다는
이제 논술의 방향도 자연과학 독서로 바뀌었다고 하셨지요
그리고 운전을 하면서 저에게 물어본 말
슈퍼노바가 뭐냐고 물었지요
순간 대답을 못하고 엉뚱한 대댭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개념있는 공부가 왜 필요한지, 플랫폼을 세운 공부가 왜 중요한지를
얼굴이 뜨거워지면서 깨닫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저번 천뇌 발표 때 질문했던 슈퍼노바를 잘 설명해주셔서 감동이였답니다.
여행을 박자세 스타일( 여행지에 대한 학습 메뉴얼을 만들어 공부하고 여행지로 가서 1달정도 체류)로 하고 있어서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것도 가족모두,
딸 시우와 함께 한 학습탐사에서 운전도 열심히하며 탐사도 진지하게 임하던 박수미 선생님은
바로 내가 목격한 아름다운 거인~! 그 날 마블바의 산상수훈과 내려오는 길에서 함께 했었지요, ^^*
아 그 날 거인들과 함께한 마블바의 아침~!
그 날 현장에서
녹화해야한다는 걸 직감하고
동영상 촬영을 권유했음에도 무시해버린
임** 선생은 각성하시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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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적으로 연주되는 빅밴드재즈, 혹은 장쾌한 교향곡을 듣는 기분이었지요.
허무하고 허무한게 지식의 바벨탑이라지만,
그 날은 단단한 강철 거미줄로 세상의 허무를 나꿔채는
어떤 아티스트를 보는 것 같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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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샘 말씀대로
박사님 스스로 같은 연주를 반복할 수 없다는 것도
운명적인 매력..
'커다랗게 배가 불러서 자기 몸을 주체할 수 없어 땅 위로 떨어질 것만 같은 달' 이라는 문장을 한참 들여다 봅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몸이라 표현하기 힘든 이미지입니다. 색다르고 시선이 머뭅니다.
언어의 빈약함을 내내 느끼는 저로써 부러운 표현입니다. 구분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언어가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상 끝과 하드 보일드 원더랜드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마음이란 사용하는게 아냐. 마음이란 그냥 거기에 있는 것이지. 바람과도 같은 거야.
당신은 그 움직임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좋아."
이 구절을 이해하고 쓰려고 노력하다가 알게 됩니다. 마음이란 사용하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담아두면 언제가는 흘러나오는 마음이 언어의 빈약함을 채워주리라 믿습니다.
혹은 마음을 잃어버려도 다시 돌아온다는 확신이 나를 나라는 존재로 묶어두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참 좋은 표현이 많아 기쁜 글 입니다.
사진은 이진홍 선생님의 글에서 말없이 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