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호 박사님과 통화 중에 알게 된  '반복의 이유'라는 시와

신춘문예(단편소설 분야)  당선자의 수상소감을 올립니다. (동아일보 1월 1일자)

이 두 글의 공통점은 바로 박자세의 철학과 통한다는 점입니다.

박자세에서 강조하는 기억의 법칙은 '대칭화', '순서화', '배경화' 입니다.

이 중 '배경화'는 낯선 것을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반복의 의미를 표현한 글을 함께 감상 해보시죠.

 

 

 

                                      반복의 이유 
                                                         ―이성미(1967∼)

 

                   나는 너를 반복한다. 너를 알 수 없을 때
                   너의 이름을.
                   나는 언덕을 반복한다.

                   반복하면 너는 민요처럼 단순해진다.


                   반복하면 마음이 놓인다.

                   만만해 보이고
                   알 것 같고
                   반복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법칙이 생길 것 같다. 게임처럼
                   너에게도 언덕에게도.
                   반복하다 보면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반복하면 리듬이 생긴다.
                   리듬은 기억하기 좋고
                   연약한 선을 고정시킨다.


                   고개와 어깨에 잘 붙고 발바닥과 손바닥과 친하고
                   리듬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 

                   리듬은 주술 같고
                   리듬이 된 것은
                   일이 어렵기 때문인데
                   리듬으로 두려움이 줄어들고
                   낯섦도 줄어든다.
                   리듬은 폭력과 가깝고
                   노래와도 가까워서
                   리듬은 아름다운 노래가 되기도 한다.

 

                   노래를 부르면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면
                   마치 형태가 있다는 듯이
                   손으로 부드럽게 쥐어서
                   너에게 줄 수 있을 것 같다.

                   너에게서 건네받을 수 있을 것 같다.     
    

 

 

2014 신춘문예 단편소설 [구제, 빈티지 혹은 구원]

당선자의 수상소감
                                                                                        

 -이서수 (1983년 서울 출생, 단국대 법학과 졸업)

 

당선 전화를 받고 길거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편의점으로 들어가 쌍화탕 한 병을 사서 마셨다. 왜 하필 쌍화탕이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뜨끈한 그것을 쭉 들이켜고 나니 입안이 맵싸해지고 두 볼이 뜨거워지면서 비로소 당선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순간엔 맵고 따뜻한 무언가가 절실했다.

 

스물아홉이 되던 해에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고, 여러 번의 낙선을 경험했다. 그 시절에는 당선작을 꼼꼼히 읽어보는 게 중요한 숙제였지만 그보단 당선 소감에 눈길이 먼저 갔다. 당선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글을 썼는지,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그것을 읽어보는 게 큰 즐거움이었고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됐다. 그렇기에 나 역시 당선 소감에 그러한 말을 꼭 적으리라 다짐했었다.

 

내 경우엔 하루에 이삼십 장 정도를 매일 쓰되, 내 작품을 쓰는 시간보다 책을 읽는 시간이 더 많았다. 읽지 않으면 쓰는 힘도 바닥이 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쓰고, 읽고, 걷는 게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지극히 단순한 일과를 반복하면서도 지겹기는커녕 나날이 즐거웠고 또 그만큼 고독했다. 그저 즐겁기만 했다면 당선의 행운을 얻기는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고독과 단순한 일과의 반복이 안정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가족의 도움이 컸기 때문이다. 거듭 낙선하던 때에도, 내게 당선의 운은 없을지라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운은 있다고 믿었고 그 힘으로 버틸 수 있었다. 나를 작가 지망생이 아니라 작가라고 불러주던 친구들에게도 고맙다.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선생님들께 무한히 감사드린다. 자신감이 사라질 때마다 그분들을 떠올리며 계속 글을 써나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