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
세계테마기행 서호주편 시작하는 날, 방송시간이 딱 아이들 잠잘 준비할 때라 1부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아들들 저녁먹이고 숙제봐주고 재우고선 겨우 정신을 차리니 이미 9시 50분이었습니다.
이래서야... 나중에 아이들 다 크고나서 "야 니들 키우느라고 엄마는 진짜진짜 보고싶은 프로도 한 번 못보고 살았어!" 라고 한스러운 멘트를 날릴것만 같아서, 이건 아니다 싶어 '내일부턴 꼭 본다' 결심을 했습니다.
둘째날부터는 미리미리 아들들에게 교육(?)을 시켰습니다.
"엄마가 평소엔 니들 먹고싶은거 하고싶은거 하게 해주느라고 텔레비전 하나도 안 보잖아.
그런데 오늘은 특별히, 8시 50분부터 EBS 볼거야. 꼭 볼거니까 니들 숙제 미리미리하고 일찍 들어가서 자.
엄마가 세계테마기행 보는 동안 조용히 할 수 있는 사람은 옆에서 같이 봐도 돼.
떠드는 사람은 바로 들어가서 자야되는거야, 알았지."
둘째 녀석은 조금 보다가 졸기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엄마없이 자긴 허전한지 방에가서 얇은 이불을 가지고 나와 고치처럼 몸에 말고는 데굴~굴러서 제 허벅지 옆에 붙어서 잡니다.
초등 2학년인 큰아이는 TV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나레이션을 들어보더니 "아, 석회암~ ~" 하며 자기도 좀 안다는 표시를 냅니다.
"스트로마톨라이트? 학습만화 WHY에서 본 거 같은데..."
"오 오 ~ ~ 우리 수혁이가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다 알아? 대단한데! "
진짜로 알고 있었든 아니면 처음 들었으면서도 어디서 봤던 것처럼 느낀 것이었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일부러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또박또박 발음하며 아이 귀에 한 번 더 넣어주고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니까요. 제가 박사님의를 처음 들으러 다니던 무렵 아기 티를 겨우 벗었던 녀석인데 어느새 이만큼 자라 저와 둘이서 스트로마톨라이트를 얘기할 정도로 컸다는 것이 감회가 새롭습니다.
큰 아이가 감탄을 하며 보길래 슬쩍 자랑을 했습니다.
"엄마가 작년에 갔다왔던 곳이 바로 저기 서호주야. 저 계곡에서 수영도 했다.
지금 말씀하시는 분이 엄마가 공부 배우는 박사님이야. 너 어릴 때 대전가서 박사님 댁에 갔던거 생각나?"
" 박사님 만났던 기억은 있는데 얼굴까지 생각나진 않아요. 바로 저 분이구나~ "
" 다른 분들도 다 엄마랑 같이 공부하는 분들이야. 엄마랑 친해~ "
(텔레비전에 나온 저 사람이랑 친하다는 딱 초딩 수준의 자랑 ^^;; )
" 엄마, 별들이 진짜 저렇게 돌아? "
" 그럼~ ! 근데 저건 여러 시간동안 밤하늘을 촬영해서 빠른 속도로 재생하는거야. 그러면 저렇게 별들이 도는 것처럼 보이는 거지."
" 엥? 카메라를 돌리는게 아니고? "
" 진짜라니까. 엄마도 서호주갔을때 침낭에 누워서 밤하늘을 지붕삼아 자고 그랬는데~ 한두시간 동안 계속 별들 바라보고 있으면 별자리들의 위치가 옮겨가더라고."
" 와~ ~ "
흰개미집과 서호주의 광활한 대지 위에 내리는 노을을 보며 아이는 궁금해하고, 신기해하고, 감탄을 합니다. 저는 얼른 아이를 끌어당겨 무릎에 앉히고 감싸안으며 말해주었습니다.
" 엄청 멋있지. 근데 있잖아, 화면으로 보는 것도 좋지만 직접 가 보면 10배 100배는 더 생생하고 감동적이다. 혁아, 너 좀 더 크면 엄마랑 같이 탐사 가자. 그냥 놀러가는 여행보다 훨씬 더 재밌다."
세계테마기행 서호주편, 참 잘 만든 좋은 프로그램이지만 서호주 땅을 내 발로 걸으면서 느끼는 벅찬 가슴과 경외감을 다 담을수는 없고 그 일부분을 맛보게 해 줄 뿐이라고 감히 말해봅니다. 박사님의 "세상에~!!"를 현장에서 들으며 각성이 쭉 끌어올려진 상태에서 듣는, 머리와 가슴에 콱콱 박히는 강의가 그립습니다.
나중에 같이 탐사 가자는 말에 아이는 좋~다며 눈을 반짝거립니다.
사랑하는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 날이 기다려집니다.
장성한 두 아들들이 번갈아 운전을 해가며 온 가족이 킴벌리 아웃백을 함께
탐사하는 그 날이 곧 올겁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세월 금새 흘러갑니다.^^
그러고 보니 문 선생님 닉네임도 Kimberley시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