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봄입니다. 차디찬 바람이 불어 오길레 같이 걷던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이 바람은 겨울바람일까요? , 봄 바람일까요?' 그랬더니 그러더군요. 당연히 겨울바람 아니냐구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꽃을 샘내는 바람이니 봄바람이지요. 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래도 찬 바람인데 겨울바람이지요. 라고 하길레 여름에 우박이 내리면 겨울 우박인가요,
아니면 여름 우박인가요. 그랬더니 웃더군요.
얼마나 예쁜 말입니까. 꽃을 샘내는 바람이라니.
설날에 집에 내려갔더니 부모님께서 제 근황을 물으십니다. 그래서 직장 나가서 일하고 집에 가서
책보고, 일요일에는 박자세 가서 공부한다고 그랬지요. 그러자 어머니께서 그러십니다.
학교 다닐 때도 안하던 공부를 지금와서 하냐고 그러십니다. 그냥 웃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그 때의 재미가 있었습니다. 세상은 늘 새로웠고 지치지 않는 호기심이 있었습니다.
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힘 닿는 시간까지 놀았습니다. 술도 참 많이 마셨고, 연애도 했습니다.
지금은 지금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책장에 꽂혀 있던 무협지와 만화책, 소설책, 에세이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뇌과학, 지질학, 분자 생리학, 일반상대성 이론, 생리학, 생화학 등의 자연과학 책자가
들어섰습니다. 제가 좋아하던 자리를 나이 든 나에게 스무살의 내가 자리를 양보합니다.
만약 스무살이 되더라도 저는 꼭 제가 했던 것처럼 놀고 싶습니다. 누구에게도 양보하기 싫은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소주 한 잔에 즐거웠고, 사귀고 이별하는 감정에 맘껏 가슴 설레다가 저미다가 쓰라리다가
서늘해지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나이에 만나는 지금의 시간은 책장에 책의 종류가 바뀐 것처럼 그렇게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친한 지인 한 명이 시 한 편을 보내 주었습니다.
세상에 의미가 없다는 걸
마흔 두살에 알았다
사랑에 의미가 없다는 걸
언제 알 수 있을까
아직도 시간 탓을 하고 있다.
어쩌면 저는 시간 탓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라든지 아니면 스무살에는
스무살에 시간이 있다든지 혹은 오십이나 육십이 되면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될거라든지 말이죠.
그런건 없습니다. 시간 탓만 하다가는 봄바람 지나가듯이 시간이 지나가 버립니다.
다음 나이에 나를 기다립니다. 그 때 내 책장에는 또 어떤 책과 공부가 기다리고 있을까를 말입니다.
여섯 살 어느 봄날 집에 들어오니 할아버지집 툇마루에 봄 햇살이 쌓이고 있었고 그 햇볓 따뜻함에
고양이가 고개를 파뭍고 졸고 있었습니다. 나는 고양이 곁으로 가서 털을 쓰다듬었습니다.
고양이는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나를 확인하고 눈을 감습니다.
툇마루 밑에는 누렁이의 새끼들이 낑낑거리며 어미의 젖을 빨려고 머리를 디밀고 있습니다.
나는 고양이 털을 쓰다듬다가 툇마루 뜨뜻함에 자울자울 졸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불현듯 집 뒷편의
대나무가 바람에 비벼지는 소리에 언뜻 눈을 뜹니다.
나의 어린 봄날은 그렇게 내게 녹아 들었습니다.
꽃샘 바람이 불어오면 그 소리와 고양이와 강아지들의 낑낑거리는 소리와 흙마당에 내가 구슬치기를
하려 파두었던 구멍이 떠오릅니다.
단단한 기억이 이렇게 봄을 만듭니다.
모두들 어여쁜 봄날 만드시길 바랍니다.
시클라멘이라는 꽃은 꽃 봉우리가 참 예쁜 꽃입니다. 작년 8월 즈음에 선물로 받은 걸 몇 일전까지
잘 키웠습니다. 물 줄 때 주고 분갈이 할 때 하고 햇볓 볼 때 그리 해주니 한 번도 빠짐없이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하더군요.
다른 꽃과 다르게 꽃봉우리가 생겼다가 피기 시작하면 꽃잎을 뒤로 한껏 뒤집는 꽃입니다.
몇 일전에 치료실 냄새를 없앤다며 창문을 열어 두고 퇴근을 했는데 돌아와 보니 꽃대가 수그러들고
잎은 축 쳐져 있더군요. 아직 피지 못한 꽃봉우리는 처연한 모습으로 빨간 색을 머금고 얼어 있었습니다.
생애 단 한번의 환희라는 듯 꽃잎을 오무려트리고 있었습니다. 마음의 빈공간이 생겼습니다. 적적한 공간
하나 내 안에 심었습니다.
못내 아쉬워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봄이 그리 져물었구나 싶어서 그랬습니다.
꽃씨 뿌려지고 폴리아데스 화원에 꽃이 피면 봄의 시간이 거기 머물겠군요. 정다운 풍경이 향기를
머금는 시간을 떠올려봅니다.
ㅎㅎㅎ, 나의 코흘릴적 어린 봄이
조병화시인의 '해마다 봄이되면'이
이장희시인의 '봄은 고양이로소다'가
영화 '봄날은 간다'가 생각납니다.
무엇보다 얼마전 솔다의 글에서 콕 기억되는 '2015년 나를 기다린 나에게 반갑다고 말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나를 기다린 나의 봄에게 반갑다고 말한다.'
올해의 대박 봄소식 박자세의 유미상 수상을 이어
'갖가지 기적을 일으키는 봄을 그대에게 보이리라 '
릴켈의 봄을 함께 화이팅입니다.^^*
아~니~?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천천히 가다니요?
쏜살같이 가던데~~~~요!!!
어릴 적엔 모든 것 하나 하나를 새롭게 경험하니
일일이 해마와 장기기억에 넣으면서 신기해 하곤 했었죠~~~
그래서 어린시절의 뿌리 깊은 기억들은
평생 끌어다 써도 넘치는 골방의 비밀창고가 되는 느낌~~!!!
나이가 들면서는 어제가 그제 같은 날들이 중첩되더이다~~~
이제 새로이 문외한이 박자세에서 과학 공부를 하면서부터
솔다의 말대로 모든 것이 갑자기 새로와지기도 하고
흐릿했던게 갑자기 촛점이 명확하게 맞춰지기도 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늦추더이다~~!!!
완죤. 동감.
앞으로는 잘 노느는 사람한테만 보상하는 것으로!!!
공부를 하든,
운동을 하든,
그림을 그리든
앞으로는 즐길줄 아는 자가 21세기 주인공이 될 것이기 때문이죠.
왕자와 거지라는 동화에 보면 왕자의 교육을 위해 거지를 고용합니다. 왕자의 교육을 위해
행동 수정을 위한 목적으로 왕자 대신 고용된 거지를 왕자의 선생이 매를 때립니다. 일종의
거울 신경 세포를 자극하는 용도입니다.
그걸 읽을 당시 이해를 못했지만 그러려니 했더니 그렇게 시간이 지났습니다. 풍요와 풍족이
가득하면 생각할 것 외에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로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실크로드의 경로가 전쟁으로 인해 메디나와 메카로 바뀌며 통행료등의 부가 그 지역에 모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메디나와 메카에서 나온 부는 아랍인에게 무상으로 제공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쌓인 부는 인간의 생활을 바꿉니다. 시와 음악으로 감정을 논하고 증폭시켰지요.
전교 상위권 성적을 가진 아이에게 아는 지인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공부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앞으로의 세상이 감정을 찾는 이가 많을테니 감정에 머물지 말고 감정을 만드는 사람으로 커야
한다고 합니다. 듣고 있다보니 갑자기 부가 축적되며 감정을 즐기는 이에게 감정을 제공하던
사람들의 역사가 스쳐갔습니다.
거지가 왕자의 매를 대신 맞으며 공부하는 시대가 단지 동화가 아님을 알게됩니다. TV를 틀면
지속해서 뉴스와 사건 사고를 전합니다. 무심코 보고 듣는 공익광고는 이상하게 제게는 왕자와
거지를 떠오르게 합니다.
감정의 실체를 들여다 보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가 도래하고 하고 있는 듯 합니다.
아~~달콤한 솜사탕 같은 글 읽으니
창가에 햇살이 유독 따스하게 느껴지네요.
어제도 이곳에 춘설이 흩날렸지요.
꽃씨 뿌리고 묘종 옮기던 송이 꽁꽁 얼뻔 했었답니다.
아무리 바람이 차다해도 이미 봄바람인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