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후기
제 14차 박자세 해외학습탐사 몽골 2진
2015. 7. 27 (월)
전날 경주에서 올라와 다음날 새벽 5시 공항리무진에 올랐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니 몸이 무거워 일부러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본다. 자려고 하니 눈이 더 말똥말똥해진다. 7월말부터 8월초는 휴가철이라 공항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다. 아침 7시 55분 출발이라 여섯시까지만 가면 되리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버스에 올랐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그게 아니라는 걸 이내 알아챘다. 박순천님이 내게 연락하느라 전화를 다섯 번이나 걸었지만 배낭 속에 넣어둔 터라 들리지 않아 받지 못했다. A카운터와 B카운터 사이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두리번거리자 박순천님이 헐레벌떡 뛰어온다. “스님, 공용 짐도 다 부쳤고 대원들도 다 들어갔어요. 빨리 수속하세요.”라고 재촉했다. 미리 와서 거들지도 못하고 연락이 닿지 않아 애가 탔을 생각을 하니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서둘러 수속을 마치고 21번 게이트로 오니 대원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자동출입국 검사로 남보다 일찍 들어와 그런가보다. 타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았다. 김향수님을 끝으로 다모여 전원 무사히 탑승하였다. 비행기는 예상대로 만원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500페이지나 되는 묵직한 탐사책자를 꺼낸다. 그리고 깨알처럼 앞뒤로 써서 눈을 크게 떠야 보이는 인쇄물도 내놓는다. 이걸 다 외워야 하겠지 라는 부담감과 함께 책임감도 몰려온다. 조금 있으려니 이내 기내식이 나온다. 야채 죽과 오믈렛, 나는 오믈렛을 먹었다. 먹을 만했다. 시간이 남기에 기내에서 다큐멘터리를 한 편 보았다. 제목은 ‘생명 40억년의 비밀-1부 소리 없는 지배, 식물’이다. 책은 들여다보니 졸음이 쏟아지던데 다큐멘터리는 졸지 않고 재미있게 보았다.
징기스칸(GHINGGIS KHANN)공항에 내렸다. 세 시간 걸렸으나 밖으로 나오니 11시를 훨씬 넘긴 시간이다. 1진 선생님들과 만날 수 있으려나 기대를 했으나 떠난 뒤였다. 제일 먼저 김현미 이사님이 보이고 밖으로 나오니 박사님이 반겨주신다. 전번 탐사 때 수고해주신 몽골의 유로선생님도 보이고 다른 대원들도 다 나와 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도 있고 낮선 이들도 있지만 다들 서로 반겼다. 짐을 들고 버스로 옮겨 탔다. 너무 신식이라 놀랐더니 시내까지만 타고 갈 거라고 해서 ‘그럼 그렇지’라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2진은 모두 34명으로 초중고생이 합쳐 6명이라 활기찬 웃음이 퍼진다.
12시 40분경, 공항을 벗어나 울란바토르(ULAANBATAR)를 향해 달린다. 시내 어느 지점에서 버스A와 버스B 두 대의 소련제차량으로 바꾸어 탔다. 3년 전에 비해 도로도 많이 정비되어 있고 높은 빌딩과 아파트도 많이 늘어난 것 같다. 산 밑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과 도심의 집들은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등 화려한 지붕이다. 지나다니는 자동차도 많아져 낮 시간이건만 지체되어 느리게 달린다. 코리아 하우스라는 식당에서 단체로 김치찌개를 먹었다. 주차공간이 없어 좀 떨어진 곳에 차를 대놓고 걸어갔다. 점심을 먹고 차에 오르니 벌써 오후 두시 반이다. 식당 가까운 곳에 한국정자가 보인다. 몽골 사람들이 난간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기증하지 않았나 싶다. 금방 출발하지 않아 물으니 A버스가 약간의 접촉사고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처럼 쉽게 해결이 되지 않아 지연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3시경쯤 겨우 출발했다.
몽골 국립박물관을 견학했다. 박물관을 돌며 박사님이 일일이 설명하였다. 일층은 구석기유물부터 시작해 신석기, 청동기, 철기의 순으로 진열되어 있다. 몽골은 75만 년 전 구석기동굴(tsagaan agui site-바양홍고르 지역)이 남아있다. 지구상에는 15만 년 전부터, 우리나라는 5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구석기시대는 기원전 100만 년 전부터 1만 년까지이다. 초기석기시대는 자연적으로 조각난 날카로운 돌을 이용했으나 신석기시대(기원전 12,000∼3000)에는 돌을 갈아 뾰족하게 하거나 날카롭게 갈아서 썼다. 야생밀이나 곡물을 갈아서 쓴 맷돌도 보인다. 흑요석(黑曜石)은 화산에서 나온 돌로 단단해서 날카롭게 갈아 짐승의 가죽을 벗기는데 사용했다. 우리나라는 만주일대와 백두산에서 발견된다. 나무나 동물의 뿔은 뾰족하게 간 돌에 박아 손잡이로 쓰는 등, 점점 도구가 다양해진다. 이 때 바늘이 출현한다. 기원전 1,500년경이다.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3,500년부터 시작된다. 청동기문화유적은 흉노의 무덤인 구르칸(돌무덤)에서 많이 발견된다. 나중에 적석목곽분으로 발전한다. 이 무덤에서 청동 솥, 거푸집 등 청동기유물이 많이 나왔다. 스키타이문화는 기원전 700년, 흉노는 기원전 200년경이다. 흉노문화는 흉노→선비→ 유연→돌궐→위구르→거란→요→금→몽골(원)로 이어진다. 거란은 불교문화가 발달했고 위구르는 징기스칸이 세계를 정복하는데 위대한 공을 세운 민족이었다.
돈을 취급하는 지금의 은행(銀行)은 예부터 은을 화폐단위로 썼기 때문에 부쳐진 이름이다. 황금은 알타이와 관련이 깊다. 알타이산맥에서 황금을 지키는 새를 가릉빈가라고 한다. 알타이(지금의 러시아지방)는 다시 알탄→알티→알지로 이어져 신라의 건국과 연관이 깊다. 사슴이 그려진 사슴 돌은 기원전 2,000∼1,000년이다. 암각화는 기원전5,000년 전부터 그렸다. 주로 동물그림으로 초기 것은 선만 뚜렷하게 했으나 점점 섬세하게 그리게 되었다. 동굴벽화로는 4만 년 전 것이 제일 오래되었다, 인류문화는 3만 년 전부터 폭발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도구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층 전시실로 올라갔다. 묘비(墓碑)는 비를 떠받들고 있는 비좌(碑座)와 이수(螭首)가 있다. 돌궐장군 퀼테킨의 묘비와 이수는 우리나라 무열왕릉비석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퀼테킨은 트루크영역을 넓힌 명장으로 유명하다. 중국 남북조시대에 형성된 관롱집단은 선비족을 본거지로 한 집단으로 나중에 수, 당의 지배계층이 되었다. 구성철륵은 돌궐을 제외한 트루크 계열로 흉노의 일족이다. 아홉 개의 각기 다른 성을 가진 부족이 모인 집단으로 위구르가 가장 셌으며 항상 당나라를 위협했다. 이란, 투란, 트루크로 불렀다. 거란은 유목민이었으나 농사도 지어 말과 소에 대한 토템신앙을 믿었다.
한쪽 벽면에는 전통의상이 전시되어 있었다. 카툰은 왕비를 말하며 머리에 족두리를 쓰고 있고 베키는 공주를 말하며 둘 다 치장을 많이 한 옷을 입었다. 노얀과 타이시는 귀족계급이나 지배자를 일컫는다. 복장의 색으로 계급을 표시하고 율령이나 격식에 맞는 옷을 입도록 했다. 옷은 대체로 화려하고 솜을 두어 두꺼운 옷이 많다. 짐승의 가죽이나 털로 만든 옷도 있다. 비단으로 만든 옷은 왕족이나 귀족의 옷이고, 모자를 다 썼다. 모피에는 야자크라는 세금을 매기고 징기스칸의 법령에 따라 옷을 입게 하였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모피생산지로 국토의 사분의 삼이 시베리아다. 시베리아는 모피 외에도 광물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 솔롱고스는 무지개라는 뜻이다. 본래의 의미는 족제비나 담비와 같은 털 달린 동물을 말한다고 한다. 묵특 선우 또는 묵돌 선우는 흉노족으로 유목세계의 패권을 잡은 왕이다. 한나라 유방과 싸워 이긴 대가로 돈을 받아 100년간 평화를 유지한 인물로 유명하다. 삼층은 몽골 근대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사진과 설명으로 가득했다.
박물관 견학 후 시장 보러가는 도중 수흐바타르 광장을 지나갔다. 바타르는 영웅이란 뜻이다. 몽골의 독립영웅이며 혁명가인 수흐바타르를 위해 광장에 큰 동상을 세워놓았다. 몇 사람만 시장에 가서 물과 일용품을 사들고 끙끙거리며 나른 뒤 올라왔다. 34명의 탐사대원, 운전기사 5명과 가이드 유로선생님, 그리고 EBS 촬영 팀 2명 모두 합해 42명이다. 삼시세끼 먹어치우는 음식의 양은 물론 물의 양 또한 만만치가 않다. 시장 보는 것도 그렇지만 나르는 일도 보통 일은 아니리라. 기다리는 것보다 구경도 할 겸 따라갔더라면 좋았을 걸…. 저녁 7시건만 시장 팀은 아직 다 오지 않았다.
저녁 7시 15분, 울란바토르를 출발했다. 소련제 버스 2대, 텐트 등 공용 짐을 실은 스타렉스 1대, 식자재 실은 스타렉스 1대, 두 대가 다 고물이다. 그나마 유일하게 생생한 차는 촬영 팀이 탄 스타렉스다. 유로선생님이 탄 스타렉스를 선두로 5대가 움직인다. 조금 가다가 7시 반쯤 주유소에 들렀다. 주유원은 모두 아주머니들이다. 빨간 바지를 입고 빨간 모자를 썼다. 기름 넣는 짧은 시간에도 유로선생님은 바쁘다. 가는 길을 일러주랴, 묻는데 대답하랴 여기저기서 불러대니 바쁠 수밖에…
한 시간 쯤 달려 사방이 훤히 트인 푸른 초원에 내렸다. Nalayh라는 지명이다. 차에서 내리자 메뚜기 떼들이 반긴다. 김향수님은 “어머 여기 골프장하면 좋겠다.”라며 본 대로 느낀 대로 말한다. 멀리 양과 염소 떼들이 보이고 소떼들도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저녁 한 때의 평화로운 풍경이다. 저녁 8시 반이지만 아직도 해가 하늘에 떠있어 밖은 훤하다. 박사님은 좀 더 가서 자리 잡자고 했으나 기사님들이 피곤하다고 오늘 일정은 마무리하기로 했다. 처음 내렸던 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 숙영지를 잡았다. 나는 첫날이지만 1진은 열하루 째라 피곤할 만도 하다. 기사님을 비롯해 모두들 고단했으리라.
모두들 각자 소임에 맞춰 재빨리 텐트를 꺼내어 칠 준비를 하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식사준비를 하느라 식자재를 꺼내 준비하느라 바쁘다. 사방에서 망치소리. 텐트 세우는 소리, 텐트 펼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느새 텐트가 열 채쯤 들어선다. 여럿이서 힘을 모으니 금방 뚝딱이다. 텐트를 치고 나니 저녁은 뭘 줄까 궁금해진다. 박사님은 학습탐사 때는 그저 간단히 먹고 공부에 집중해야 된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어야지. 아무튼 먹고 자는 일이 보통 일은 아닌 듯하다.
풀이 많은 초원에는 어디를 가나 소똥, 말똥, 염소 똥을 보기 싫을 만큼 본다. 처음엔 누구라도 더럽다고 피한다. 그러나 나중엔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풀만 먹고 자라 그런지 냄새도 나지 않는데 뭐가 더럽단 말인가. 3년 전 탐사 때는 모기가 많아 맨 손으로 마른 똥을 주워와 모깃불을 피울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만졌다. 처음 온 대원들은 더럽다며 피해 다닌다. 차차 익숙해지리라. 낮엔 햇볕이 따가워 덥더니 해가 지자 이내 추워진다. 초원의 등성이를 보니 해가 넘어가며 강렬한 빛을 발한다. 사라지기 전의 마지막 빛이 하늘을 물들인다. 주홍빛으로…. 점점 사방이 어둑어둑해지더니 찬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노을이 구름을 물들여 하늘은 비단보자기를 풀어놓은 듯하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초원의 작은 언덕배기는 황금빛 테를 두른 듯 선이 뚜렷하다. 보는 동안에 해는 붉은 노을빛만 남기고 꼴딱 숨어버렸다. 노을 사이로 보금자리를 찾아 날아가는 새들이 보인다.
추위가 느껴져 가방에서 망토를 꺼내 입었다. 말이 망토지 펼치면 직사각형 작은 이불, 접어서 단추만 끼우면 입을 수 있는 옷이 되니 편리한 놈이다. 저녁은 간편식이라더니 진수성찬이다. 햇반에 애호박 된장국, 배추김치, 오이김치, 어묵조림, 생된장에 생오이와 아삭이고추, 이보다 더 잘 차릴 수 있을까. 뜨거운 된장국이 목을 타고 내려가니 피로가 싹 가시는 듯하다. 식사가 끝나자 각자 자기소개가 있었다. 고등학생 강현석 군의 자기소개가 인상적이었다. “저는 남이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저도 남에게 지시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너무나도 개성이 뚜렷하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번 학습탐사에서 제일 얻어가는 게 많은 사람을 꼽으라면 강현석 군이 아닐까. 앞날이 기대된다. 끝나고 나니 밤 11시가 훌쩍 넘었다. 텐트 속에서 이내 잠에 빠졌다.
역시 박자세 해외탐사는 스님의 일지로 정리가 되는 군요. 놀라운 기록입니다.
아마 EBS영상이 잡아내지 못하는 것까지 모두 담아질 것 같습니다.
다음 편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