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후기
2015년 제14회 몽골 학습탐사(2진) 일지 2 (8월01일~03일)
2015년 8월 01일 토요일, 작성자 강춘모
(비, 흐림)
<몽골 역사 속의 티벳 불교를 만나다>
07:30 아침 식사(누룽지, 미역국, 깨잎절임, 멸치볶음)
08:25 아침 강의(대항해 시대 이후의 동서양의 문화)
10:35 세첸칸 박물관 관람과 박사님 설명
11:20 군트가르블 사원 관람 박사님 설명
13:00 점심 식사(샌드위치, 빵, 씨리얼, 우유, 주스)
15:05 오후 강의(페르시아 역사, 유라시아 지역에서 발생한 강성한 제국과 지형 조건 등)
19:10 야영지 도착
20:00 페르시아 역사 암기여부 점검
21:45 저녁 식사(양고기 요리를 곁들인 간단한 파티)
몇 시쯤 되었을까? 텐트에 빗방울 떨어지는 잠이 깨었다. 비가 제법 많이 내리고 있다. 텐트 밖에 놓아둔 신발을 들여놓고 다시 잠에 들었다. 옆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어 보니 아들이 식사 당번이라 옷을 입고 있다. 조금 있다가 나가 보니, 오늘이 아들 생일인데 메뉴가 미역국이라고 좋아한다.
식사를 마치고 박사님의 아침 강의가 시작되었다. 15세기 대항해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16세기 종교개혁 17세기 시민혁명과 과학혁명 18세기 산업혁명까지 동서양의 역할을 비교 설명하였다. 대항해 시대 이전까지는 동서양의 문화와 기술 수준이 거의 동등한 수준이었지만 대항해 시대 이후에 큰 격차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대항해 시대를 촉발할 때 몽골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지금의 몽골은 어디에 있는가? 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하였다. 대헌장 권리청원 권리장전 미독립 선언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로 현재 250여 국민국가가 만들어 졌다. 국민국가란 모든 백성(국민)들이 창의성을 무한히 발휘하는 시스템(체제)인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시대 흐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계획하고 실행할 것인가에 대해 화두를 던져 주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전세계 정보의 90%정도를 보유하고 있으며 질 좋은 정보가 IT혁명과 미국의 경제를 끌고 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침 강의를 마치고 야영지를 뒤로하고 버스는 출발했다. 식사와 강의 시간에 잠시 멈추었던 비가 다시 내린다. 몽골 고원의 초원은 비를 흠뻑 받아 들이고 있다. 빗소리와 더불어 몽골고원의 아침은 고요하다.
비가 내리는 중에 작은 마을 온드라항 시티에 있는 세첸칸 박물관에 도착했다. 박물관 관람과 박사님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박물관에는 다수의 불상과 불교관련 유적이 티벳풍이었다. 위그루족 문자를 사용한 몽골어 표기법은 1924년 몽골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뒤로 러시아 표기 문자인 키릴 문자가 쓰이기 시작했다. 1940년부터는 위그루 족 문자는 거의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우리를 안내하는 가이드 말로는 현재는 자기 이름도 고유의 문자로 쓸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세첸칸은 1937년 러시아에 의해 총살당하며 칸은 사라지게 되었다. 사람 다리뼈와 두개골로 만든 악기가 있었는데 사람의 죽음을 새로운 시작으로 보는 티벳불교의 사상이 담겨 있다는 설명이 박사님으로부터 있었다.
박물관과 가까운 곳에 1대 세첸칸이 만들었다는 군트가르블란 사원을 방문하였다.마침 스님 앞에 앉아 무언가를 기원하는 신도가 있었다. 스님은 열심히 경을 읽고 있었고 신도는 두 손을 합장하고 소원을 빌고 있는 듯하다. 한참을 그렇게 하더니 가루 같은 것을 넣은 작은 비닐 봉투를 받고 돈을 건넨다. 아! 어제 보았던 물이 솟는 작은 개울에서 작은 비닐 봉투에 담은 가루를 정성스레 뿌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기복의 한 의식인가? 박사님의 몽골불교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티벳불교의 절대적 영향을 받은 티벳불교는 삶과 죽음 그리고 중유 단계로 나누는데 살아서 중유의 몸을 만들어 해탈하는 것이 티벳불교의 목적이라고 한다. 즉 죽음 직후에 광명의 빛이 들어올 때 수행하지 않은 사람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육도윤회를 하게 되는데 수행하여 경지에 오른 사람은 광명의 빛을 받아 진리자체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하는 49제 의식도 죽은 조상의 영가가 두려움에 떨지 않고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의식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불교적 요소가 이토록 깊숙이 박혀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원 곳곳에는 티벳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경을 넣어 돌리는 마니차가 설치되어 있어 티벳과 몽골의 문화적 동질성을 실감나게 한다.
점심은 사원 밖에서 하게 되었다. 센드위치와 시리얼이다. 사원 주변에 웬 젊은이 2명이 있어 말을 걸어 보니 한국 대학생이다. 베이징을 거쳐 이곳에 왔다는 것이다. 우연히도 우리 동네 사람이다. 아들과 같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사진도 찍고 점심도 같이 먹었다. 세계가 마치 한 울타리처럼 느껴진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다음 목적지인 호흐 호수로 향해 출발했고 박사님의 오후 강의가 시작되었다. 내용은 페르시아 역사와 유라시아 지역에서 발생한 강성한 제국과 지형 조건 등을 본 학습탐사 교재를 통해 알아보고 이 지역에 이슬람 제국이 세워지고 시아파 수니파의 유래와 현재의 중동 국가 탄생배경까지 설명을 들었다. 박사님은 강조하신다 “세계사는 가족사다” 징기스칸 가족사와 하신 가문의 가족사를 알면 세계사를 꿰뚤어 볼 수 있다고 말이다. 페르시아 역사를 암기하도록 하며 느낌이 오도록 줄줄 나올 수 있도록 암기 하도록 말씀 하셨다. 2시간 지나 암기 테스트를 한다고 하니 일행은 암기하는라 정신이 없다. 그 많은 제국 이름과 탄생년도를 암기하기가 쉽지 않게 느껴졌으나 반복해서 보고 또 보고 하니 정말 신기하게 머리 속에 기억이 되었다. 나도 암기 테스트에 통과 했고. 뿌듯한 자부심도 느껴진다. 이제까지 역사적 사실을 단편적으로 알던 것을 통합적으로(시간적, 공간적) 이해하고 암기하다 보니 역사가 내 바로 앞에 다가서는 느낌이다.
야영지에 도착했다. 저녁 식사로 양고기 요리를 곁들인 간단한 파티를 하기로 하였다. 양 1마리에다 고기를 좀 더 사고 감자와 양파 등을 넣어 요리하는 것인데 요리 방법이 독특했다 큰 통에다가 양고기와 불에 달군 돌을 층층히 넣고 여기다가 약간의 물을 넣고 가스렌즈에 끓이는 방식인데 양고기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고 고기가 연한 것이 맛이 좋았다. 일행 모두 맛있게 먹었다. 삽시간에 고기는 사라지고 우리의 배는 뽈록해졌다.
2015년 8월 01일 토요일, 작성자 민경윤
아침 6시 반 여전히 비가 내린다. 아침식사는 비가 오는 관계로 텐트 안에서 먹기로 한다. 식사를 마치고 텐트를 바로 걷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더 쉬게 되었다. 그 시간 동안 부족한 잠을 보충한다. 밥을 먹고 짐을 정리한 후 짤막한 아침강의를 듣는다. 강의의 내용은 15~18세기 유럽의 주요 역사적 사건이다.
15세기의 유럽은 대항해 시대였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같은 동양을 소개하는 책들이 유럽 대항해 시대의 시발점이 되었다. 16세기는 부패한 카톨릭에 저항하여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17세기 전제 군주와 귀족들에 대항하여 시민 혁명이 있었고, 과학 혁명도 이어진다. 이어서 18세기는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 산업혁명에 의해서 현재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탄생했다.
아침 강의가 끝나고 8시 반 버스에 올랐다. 두 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곳은 광장 이었다. 굉장 중앙에는 징기스칸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그 동상을 보러 온 것인가 아니면 지나가는 길에 동상이 있기에 잠시 들른 것인가 의아할 때쯤 박물관에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곳은 원래 세첸칸의 여름 별장이었는데 나중에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그 박물관에 몽골 칸들의 초상화를 모아둔 곳이 있었다. 설명을 들으니 이름을 아는 칸들도 꽤 있었다. 다른 전시관에는 종교 관련 물품들이 있었고, 또 다른 전시관은 무기나 갑옷 깃발 등 전쟁 관련 물품들이 있었다. 박물관에서는 청나라의 순치제나 ‘자삭’ 칭호, 투시에트, 세첸칸 등에 대한 강의를 들었는데 이 부분은 거의 알아듣지 못 했다.
그 후 첫 세첸칸이 만든 절, 군트 가르블랑에 갔다. 그 절 안쪽 구석에는 스님들이 사람들과 마주보고 앉아서 주문을 외웠다. 가이드분께 물어보니 티베트어라서 못 알아듣는다고 하셨다. 절 안에는 정면의 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그림들이 걸려 있고 가운데는 긴 의자들이 놓여 있다. 그리고 의자에 어린 스님들이 앉아 있었다.
절에서 티베트 불교를 복습했다. 티벳 불교는 알탄칸 때에 몽골로 유입되었다. 또한 이때 달라이라마라는 말이 생기는데, 알탄칸이 스님 소남가초에게 준 호칭으로 바다같은 스승이라는 의미이다. 티벳 불교에서 뼈가 자주 나오는 이유는 죽음을 해탈로 가는 단계라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으면 49일 동안 다음 생으로 가기 위한 ‘중유’의 상태가 된다. 이때 정보를 담고 있는 미세의식과 물질의 형태인 풍이 만나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이것이 환신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해탈하지 못하고 짐승으로 태어나는 ‘아귀축생’을 하거나 ‘육도윤회’를 반복한다. 수행을 많이 한 사람들은 중유 상태에서 광명이 투사 되었을 때 그 빛과 하나가 되어 우주 자체가 된다. 이것이 깨달음의 상태다. 고승 쫑카파는 살아서 중유의 몸을 만드는 것이 수행의 목표였다.
이번 탐사중 인상 깊었던 강의는 불교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이해한데로 정리하면 이렇다.
삼라만상은 내부의 원인인 인과 바깥의 조건인 연이 만나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을 인연소기 혹은 시절인연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연(연기)은 결국 공이다. 이런 사실을 여실하게 아는 것이 반야, 즉 지혜다. 우리는 모든 인연의 집합일 뿐 고정불변의 ‘나’라는 것은 없다. 인간도 세포들의 결합일 뿐이다. 불교용어로 모든 것은 마야(허깨비)이다. 이것에 매이다 보니 카르마(업)가 생긴다. 업을 없애는 행위가 요가이다. 요가는 유식이라고도 부르는데 우리나라에는 현장법사가 전파해서 의상대사가 완성했다. 요가를 통해서 니르바나 즉 해탈에 이른다. 최고의 유가라 불리는 무상유가의 대가인 쫑카파는 수행의 방식으로 생기차제와 구경차제를 제시했다. 생기차제는 일종의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한 멘탈 훈련인데 관상법과 성취법이 있다. 원하는 이미지를 반복해 떠올려서 스스로 그것이 되는 것이다. 구경차제에 이르는 것은 죽어야 가능한데 쫑카파는 입적의 순간 16살 소년의 모습을 한 문수보살이 되었다
다시 버스에 올라 잠시 달리다가 주유소에 들렀다. 기름을 넣고 출발하나 싶었는데 정비까지 마치고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나서야 차는 출발했다. 잠깐 잠도 자고 쉬었는데 다시 강의를 시작했다. 이번 강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역사이다. 처음 다섯 개의 나라인 아시리아, 페니키아, 바빌로니아, 히타이트, 리디아를 시작으로 고대 페르시아 왕국인 아키메네스조가 세워지고 이를 알렉산더 제국이 점령했다. 알렉산더가 제국이 셀레우코스와 프톨레마이오스로 나뉘고 박트리아와 쿠산이 이어진다. 그 후 사산조 페르시아를 거쳐 이슬람 제국이 세워진다. 이슬람제국의 왕조는 정통칼리프-우마이야-압바스의 순서다. 그 후 몽골인들의 일한국과 티무르제국, 오스만 투르크가 세워졌다.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은 이스라엘, 사우디, 이라크, 터키, 이집트로 나누어지고 같은 시기에 페르시아제국은 이란의 사파비왕조-카자르왕조-팔레비왕조로 1970년대 까지 이어진다. 세부 내용들 까지 외우려니 상당히 힘들겠다 싶었다.
벌써 주변 사람들은 거의 다 외운 듯 하고 하나둘 시험에 통과하기도 했다. 나도 얼른 통과해서 편하게 양고기 잔치를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외웠지만 7시 야영지에 도착했다. 일단은 더 급한 텐트를 치고 짐을 푼 다음, 텐트에 박혀서 세계사 도표에 코를 박고 몇 번을 더 중얼거렸다. 그렇게 고생을 한 끝에 시험에 통과했다. 그것도 이사님의 도움으로 겨우. 앞서 통과한 사람들은 여유있게 모닥불을 쪼이며 요리를 구경하고 있다.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식사뿐이다. 상을 차리고 다른 음식들을 준비하고 나니 양고기가 금세 완성되었다. 허르헉이라 부르는 찜요리인데 구운돌을 고기에 얹어 요리한다. 검고 중근돌인데 기름이 묻어 있었지만 몇 분이라도 손난로의 역할을 해 주어 사람들이 기름묻은 돌을 들었다 놨다 했다. 박사님이 오늘은 술을 허락 하셔서 어른들은 술을 마셨다. 추워서 텐트에서 먹을까 생각도 했지만 텐트보다 모닥불 주변이 더 따뜻했다. 고기는 예상은 했지만 그보다 더 질겼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고 자정이 돼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2015년 8월 02일 일요일, 작성자 강현석
<징기스칸이 고난의 시절을 보내고 칸으로 등극한 역사적 현장에 서다>
07:30 아침 식사(누룽지, 셀러드?, 멸치볶음)
10:00 호흐 호수와 주변 역사적 현장 관람(징기스칸이 5년 이상 살던 곳이며, 칸으로 등극한 역사적인 장소임)
11:50 게르 방문(게르 방문하여 게르의 삶과 음식 체험)
16:20 점심 식사(양고기, 라면, 수박)
19:00 오후 강의(유럽 역사)
20:11 자오모드 전투 지역 도착(박사님과 촬영팀 현지 방문)
20:20 나머지 버스 이동하며 유럽 역사 암기 및 점검
22:30 야영지 도착
23:00 저녁 식사(김병장, 토마토 스프)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고 출발 하였다.나는 촬영팀이여서 먼저 출발하였다. 호흐 호수와 주변 역사적 현장 관람하였는데 징기스칸이 5년 이상 살던 곳이며, 칸으로 등극한 역사적인 장소라고 한다. 다만 차로 가기 조금 힘든 곳에 위치하여서 이동에 불편 하였다. 게르를 방문하여 게르의 삶과 음식 체험하였는데 너무 잘 사는 게르여서 깜짝 놀랐다. 점심 식사로 양고기를 먹었는데 원래 더 일찍 먹을 수 있었는데 너무나 오래 걸렸다. 식사 후 촬영팀과 드론을 날렸다. 자오모드 전투 지역은 박사님과 촬영팀만 갔다. 횡량한 곳이였다. 저녁 식사로 김일병, 토마토 스프를 먹었다. 집에 간다는 생각에 설렌다
2015년 8월 02일 일요일, 작성자 정여령
아침에 눈을 떠 텐트 밖으로 나가보니 초원이 보였다. 그 사이로 나, 이한이, 민경윤, 박수미 선생님, EBS 카메라 감독님이 만든 화장실이 보였다. 보통의 하루와 같이 오늘 저녁에도 땅을 파 화장실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감과 함께 시작했다. 7시 아침식사를 했다. 날씨가 꽤나 쌀쌀해 텐트안에서 오들오들 떨며 밥을 넘겨야했다. 식사 후 우리는 짐정리를 하고 텐트를 걷었다. 9시부터는 아침강의를 시작했다. 이슬람교를 창건한 하심가문에 대해서 소개하는 내용이였다.
무하마드와 하디지가 결혼을 해 낳은 딸이 파티마이고 그녀와 결혼한 사람이 알리이다. 또 알 리가 낳은 분들이 하산, 후세인이다. 하심가문은 8대부터 12대까지는 잠적했고 632년부터 1대 아부바크르 2대 우마르 3대 우스만 4대 알리로 661년까지 이어졌다. 사람들은 이것을 정통칼리프 시대라 부른다. 또 징키스칸 세계제국을 만들기위한 공동체는 울루스이고 움마는 이슬람제국을 만들기 위해 모인 공동체다. 이땐 정말 박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몰랐다. 그냥 일지를 써야 해서 열심히 메모만 했다.
우리는 허름한 버스를 타고 호흐 호수로 이동했다. 이동 중 도시를 벗어나 처음으로 전봇대를 발견했다! 한국에서는 어딜 가나 있지만 몽골에서는 정말 드문 경험이었기에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우리는 9:55분쯤 호흐 호수에 도착했다. 들어가기 전 매표소에 들려서 뭐 볼게 많나보다 했지만 정말 없었다. 호흐 호수에서는 한국에서와는 다르게 화려한 시설들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텐트도 있었고 통나무로 만든 집과 팬션 그리고 꽃들이 많이 있었다. 산책하는 현지인들이 종종 보였다. 호흐 호수에서도 강의는 이어졌다. 이때 EBS아저씨들이 촬영을 위해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게 하니 집중이 안됬다. 호수 옆 공원에는 31개의 칸의 조각상이 나무로 만들어져있는데 높이가 약 2.5m정도 됬다. 이 호수는 징키스칸이 나와 같은 나이에 어린시절을 보낸 곳이며 멀리 떨어져 살다 다시 돌아온 1206년에는 세력을 모아 호수에서 ‘대칸’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물가라 조금 추웠지만 통나무집과 꽃들이 어울어져 멋있었다.
그 후 우리는 게르를 보러 갔다. 게르 안에서도 강의는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박사님이 아니라 버스 기사님 중 한 분이 강의를 해주셨다. 게르는 만드는데 30분, 해체하는데 30분이 걸리고 게르 안에서 집안일을 하는 것은 주로 여자이므로 여자 집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그리고 게르에 사는 여자 분이 주신 수테차와 요구르트 그리고 과자처럼 생긴 몽골전통간식을 먹었다. 몽골에서는 우유로 만든 요리가 많다. 수테차를 한국에서도 먹고싶어서 만드는 법을 열심히 봤다. 거기에는 물, 우유, 소금, 찻잎을 넣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만들어 먹어보니 이상한 맛이났다. 알고보니 소젖이 아닌 말젖이였다고 한다. 학교에 있는 말 ‘칸트’에게 조금 젖을 빌려 만들어 보고싶다.
게르에서는 태양열을 사용했다. 게르의 구조는 입구에서부터 오른쪽으로 동그랗게 주방기구-침대-서랍-장신구함-침대-옷장-발전기-싱크대 순으로 놓여있다. 이동을 고려해서 간단하게 꼭 필요한 살림살이만 있었다. 그 게르의 아들은 조금 장난이 많이 보였다. 승마경주로 150만원되는 상금을 받았다. 점심식사는 양고기였다. 요리 과정은 굉장히 길고 복잡했다. 왜냐하면 우선 양을 잡아야 했고 그 양을 손질해 몸 속에 달궈진 돌을 넣고 요리했는데 잔인했다. 전 날 먹었던 양보단 맛있었다. 양을 먹는데 잡는 걸 직접 봐서 그런지 조금은 거북했다.
다 먹은 후 자우모드로 출발했다. 초원과는 달리 눈에 띄게 길이 막혔다. 박사님은 가는 동안 오후강의를 진행했다. 솔직히 이땐 조금 졸았다. 정말 조금. 히타이트와 이집트는 최초로 평화협정을 맺었고 BC450년 알렉산더와 페르시아가 전쟁을 벌였을 때 다리우스3세가 알렉산더를 피해 도망간 곳이 ‘박트리아’이다. 또 알렉산더는 ‘세계시민’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우리는 이동하는 동안 로마사를 암기했다. 탐사 중 공부할 때 마다 드는 생각이었지만 박사님은 정말 아는 게 많으셨다. 자우모드까지 이동하는 약 3시간 동안 나는 로마사를 다 외웠다. 천재가 된 기분이었다. 자우모드에 와보니 할게 없어서 다시 차를 타고 울란바토르 쪽으로 향했다.
김현미 선생님께서 ‘5년 전 몽골에 왔을 때는 비가 한번도 오지 않았고 3년 전 몽골에 왔을 때는 비가 2번 왔었다. 그런데 이번에 왔을 때 계속 내린다는 이야기였다. 평소에 지구 온난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실감해본적도 없었는데 이 말을 계기로 환경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10시 30분경 울람바토르 부근 초원에서 마지막 캠핑을 했다. 다른 초원과는 달리 말 울음소리가 무척 가까이에서 들렸다. 내리자마자 우리는 텐트를 쳤다. 화장실은 물론이었다. 화장실을 만드려고 땅을 파는데 처음에 정말 시멘트인줄 알았다. 돌이 엄청 많았다. 그래서 박사님한테 가서 말씀드렸더니 ‘거~ 대충 파’라고 하셨다. 대충 파고 있는데 또 EBS카메라 감독님이 오셔서 같이 파기 시작했다. 우리는 마지막날이라 그런지 엄청난 오기가 생기서 정말 깊이 팠다. 우리는 비로소 몽골학습탐사 마지막 날 화장실 만드는법과 정리하는법을 숙지했다. 이제 ‘몽골’하면 화장실이 떠오를만큼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11시15분경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소위 ‘김병장’이라 불리는 비빔밥을 먹었다. 땅을 파서 배가 무척 고팠기에 더 맛있었다. 각자 잘 준비를 마치고 텐트로 들어가 꿀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