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자연과학 대 인문·사회학 8대 2로 재편성해야”


[중앙일보]   입력 2016.01.02 01:33     종합 16면



[사람 속으로] 과학 강의 모임 이끄는 박문호 박사

종교·철학보다 자연과학 알아야
사회현상 분석하고 발전 이끌어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 회원 5300명
10여 년간 대중의 과학화에 힘 써
고비 사막 등 14차례 해외 탐사
강의실서 배운 것 현장에서 체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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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호 박사는 교과서주의자다. ‘유니버설 랭귀지(자연의 언어)’라 이름 붙인 각종 법칙과 과학공식, 방정식 등의 암기를 강조한다.



이 사람들 희한하다. 놀라운 일이 벌어지면 “오 마이 갓(Oh my God)!” 하지 않고 “오 마이 사이언스(Oh my Science)!”라고 외친다. 신의 자리를 과학이 꿰찼다. ‘오 생명이여~’ ‘기원(起源)을 추적하자’ ‘생물의 광물화’ 등 합창하는 말들이 ‘할렐루야’ 저리 가라다. 교회도 아닌 강의실에서 열락에 겨운 감탄사가 터지다니. 공부는 ‘미쳐야 미친다’를 증명하고야 말겠다는 열띤 분위기가 한겨울 추위를 밀어낸다.


 지난 세밑 29일 오후 11시 서울 서래로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이하 박자세) 연구실. 오후 8시에 시작한 강의가 세 시간이 넘었는데도 자리를 뜨는 사람이 없다. 누군가가 “저, 지하철 막차가…” 우물거리고서야 열강은 간신히 마무리됐다. 분초를 다투며 속사포로 수업을 이끌던 박문호(57) 박사는 그제야 짐을 챙기는 이창호 국수에게 “들을 만해요?” 말문을 뗐다. 박자세 회원 5300여 명을 공부 귀신으로 만든 박 박사는 지난 10여 년 전국을 누비며 자연과학을 공부하지 않고는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음을 역설해 왔다. 이날 ‘과학 리딩 모임’의 주제는 암석이었는데 그는 냅다 칠판에 그린 사각형 그림 도표를 외우게 하더니 “평생 살면서 발에 차이는 돌이 뭔지 궁금하지 않았느냐”고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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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해외학습 탐사지인 서호주에서 대원들이 박 탐사대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박자세]



“돌을 알고 싶다는 욕구를 만들어야 해요. 왜 알아야 하는가. 지구상 산소의 99.9999%가 암석 속에 있어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숨을 안 쉬면 5분 내 죽는 우리의 목숨 줄인 산소 거의 대부분이 돌에 박혀 있어요. 돌을 공부하는 게 이제 가슴에 와요? 절박한 겁니다. 기껏해야 100년쯤 살다 가는 우리가 암석이 되면 기본 단위가 100만 년으로 훌쩍 뛰어요. 지질학적 시간으로 들어가는데 그걸 준비해야 합니다. 찰나에서 영원으로.”

 가지고 노는 단위가 보통 수십억 년이다. 인간의 기본 도리로 138억 년 우주의 진화를 알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게 박자세의 자세다. ‘유니버설 랭귀지(자연의 언어)’로 같이 대화하며 자연과학적 세계관으로 삶을 새롭게 디자인해 공부와 인생을 하나로 만들자고 전도한다.

 “종교와 철학이 이 질문에 답해 주던가요? 겨우 지난 백 년 동안 소수의 사람이 존재의 본질을 마주하고 새로운 언어로 자연현상을 기술하기 시작했어요. 일반 사람들은 과학이 어렵다며 과학의 대중화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망했죠. 대중의 과학화는 왜 안 됩니까. 일반인은 불가능하다던 마라톤 완주를 지금은 다 합니다. 3~4시간씩 뛰기 위해서는 땀 흘리며 훈련하면서 존재의 비밀은 왜 거저 먹으려 하죠? 집중해서 반복 암기해 익숙해지면 과학은 쉽고 아름다워요.”

 박자세 회원들은 모든 과학 공식과 도표와 수식을 통째로 외운다. 박 박사는 교과서주의자다. 수십 년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을 신앙 수준으로 받아들인다. 대학원 수준의 최신 논문도 함께 읽고 토론한다. 그래서 10대부터 80대까지 누구나 공부할 뜻과 힘만 있으면 평등하게 동료로 함께 간다. 과학 학습의 목표를 이해에 두지 않고 유니버설 랭귀지에 익숙해지는 언어학 영역으로 바라본다. 박 박사가 펴낸 『그림으로 읽는 뇌과학의 모든 것』(휴머니스트)은 박자세의 공부 형식을 잘 보여준다.

 “종교 대신 자연과학을 알면 홀가분해지죠. 요즘 기후변화가 전 세계 지도자들의 화두가 됐는데 저는 사회 지도층이 과학을 공부하면 문제 없다고 봐요. 예수님과 부처님 다 끌어모아도 그 힘이 과학의 만분의 일도 못 미쳐요. 우리는 우리가 뭘 모르는지조차도 몰라요. 이걸 깨닫는 순간 다른 세상이 펼쳐지죠. 공부는 위를 보고 하는 겁니다. 기원(起源)을 추적합시다.”

 이날 박자세는 인간의 노화가 풍화임을 함께 증명했다. 우리가 결국 돌로 환원한다는 사실을 과학으로 분석하면서 바로 암기했다. 지난 5억 년 인류의 여정이 ‘생물의 광물화’임을 인식했다. ‘생물의 광물화’를 몇 번이고 외치는 회원들 얼굴이 환해졌다. ‘삶은 불타는 것’이고, ‘우리는 돌로 돌아간다’. 박 박사는 이런 과학적 사실을 암기 정도가 아니라 늘 화두처럼 들고 다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자세는 강의실에서 배운 것을 현장에서 체험하고 확인한다. 그동안 서호주 사막, 고비 사막, 하와이 마우나케아 천문대 등 14차에 걸쳐 해외학습탐사를 다녔다. 침낭에서 자고 텐트 생활을 하며 하루 열댓 시간씩 공부에만 전념하는 몸 훈련 시간이다. 이 강행군 속에서 『서호주』 『몽골』 『유니버설 랭귀지』 세 권의 책이 태어났다. 한국전자통신원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박 박사는 한 번 탐사에 나설 때마다 700쪽 넘는 연구 자료를 만들었다. 지난 10년간 그가 읽은 책과 논문이 3000권이 넘는다. “가르치면 세 배 더 공부하게 된다”고 배움을 기뻐하는 공부꾼이다. 문과(文科)에 몰려 있는 이 나라 교육 현실을 걱정하면서 그는 “자연과학 대 인문학·사회과학을 8대 2로 재편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많은 사람이 불확실한 죽음 이후의 세계를 위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합니다. 하지만 죽음 이후는 원자로 돌아간다는 사실 이외에는 확실한 것이 없어요.”

 “오 마이 사이언스!”


[S BOX]  노회찬·정목 스님·이창호도 회원 … "과학공부 경이롭고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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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세에 감염된 사람들은 면면이 다채롭다. 남녀노소 평등하게 공부하고 친구처럼 막역하다. 과학의 이름으로 차별을 없앤 후천개벽 세상이다.

 최근 박자세에 가세한 대표 인물이 노회찬 전 국회의원이다. 그는 박자세의 대표 저서 『유니버설 랭귀지』를 읽고 감동의 서평을 보내왔다. “책을 받아본 지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벌어진 입을 아직 다물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연명에 급급할 뿐인 일상의 저잣거리에서 에베레스트를 등반 중이라는 벗의 소식을 들은 느낌입니다. 경이(驚異)! 놀랍고 신기할 따름입니다.”

 방송인으로 활약하는 정목 스님은 강의실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질문과 대답을 도맡아 하는 열성 학생이다. 암석을 배우다가 “돌에 대해 알고 싶어요”라고 소리친다. 듣고 익힌 내용을 청취자에게 전파하겠다는 열의가 대단하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소중하다는 입장에서 자연과학은 특히 스님들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세계 바둑을 제패한 이창호 9단도 수강생이다. 돌부처란 별명에 걸맞게 세 시간 강의 내내 꿈쩍 않고 자리를 지킨다. 집중력이 대단하다. 출판기획자인 김수기(현실문화연구 대표)씨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업에 빨려 들어가는 순간을 여러 번 경험했다”며 “과학을 어렵다고 기피해 온 이들에게 삶의 다른 국면을 발견하게 만드는 힘이 대단하다”고 평했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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