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대부분의 역사서는 대륙 문명의 관점, 그것도 주로 농경 문화권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해석해 왔다. 그러나 이 책은 근대 해양세계의 발전에 주목한다. 세계의 해상 팽창을 최대한 균형 잡힌 시각으로 살펴보려는 시도이다. 근대 세계사에 대한 새로운 조망을 통해 우리 시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15-18세기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기본 틀이 만들어진 시기이다. 이 시대의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 동안의 역사 해석은 ‘서구중심주의’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에 따르면 근대사는 서유럽 국가들이 해외 팽창을 주도하고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세계체제의 건설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역사의 흐름은 이와는 달랐다.
각기 고립되어 발전해 왔던 지역들이 해로를 통해 상호 소통하면서 전 지구적인 네트워크가 구축되었다. 이를 통해 사람과 상품, 가축과 농작물, 혹은 다양한 생태계 요소들이 먼 바다를 넘어 이동했고, 지식과 정보, 사상과 종교가 교환되었다.
그러나 평화적인 교류가 이루어지는 만큼이나 무력 충돌, 경제적 착취, 환경파괴, 종교적 탄압이 일어났다. 이런 복잡다기한 과정을 통해 온 세계가 하나의 흐름 속에 합류하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 혹은 지구사(global history)가 탄생한 것이다.
저자소개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서양사학과를 졸업한 후,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및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 『테이레시아스의 역사』,『대항해시대』, 『문명과 바다』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역사와 영화』, 『경제강대국 흥망사 1500****』 외에 다수가 있다.
남반구 별자리가 이 시대에 탄생했습니다. 인간의 운동성에 관심과 주의를 가지고 읽으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독자리뷰1
대항해시대를 다루는 책은 여러권이 나와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뿌리인 만큼 대항해시대는 과거의 지나가버린 흥미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항해시대를 다룬 책들은 양만 많은 것이 아니라 다른 시대를 다룬 책들보다 질도 높다.
대항해시대를 다룬 책으로 가장 뛰어난 것은 이책의 저자가 번역한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들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많고 뛰어난 책들 위에 이책이 더해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책의 의미는 ‘보충’이랄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책은 저자가 번역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보론이랄 수 있다. 이책은 대항해시대의 경제사에 관한 것도 그 시대의 정치경제학도 아니다. 이책은 대항해시대에 관한 통사가 되려 하지 않는다.
다른 대작들은 베니스, 피렌체, 밀라노 등의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 포르투갈/스페인 그리고 네덜란드, 영국, 미국으로 세계경제의 패권이 이동하는 역사의 흐름을 다룬다. 이책은 그런 대작들과 경쟁하지 않는다.
이책은 통시적으로 대항해시대를 다룬 그런 책들과 달리 공시적인 관점을 취한다. 대항해시대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하나의 단위로 보고 그 시대의 단면을 잘라 그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책의 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의 구성은 그 시대의 항해술이 어떠했고 군사적 기술이 어떠했는지, 어떤 화폐가 쓰였는지, 노예무역의 성격은 어떠했는지, 환경의 변화는 어떠했는지, 질병이 어떻게 세계화되었는지 종교가 어떻게 강요되었고 수용되었는지, 문화는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등과 같은 질문에 따라 대항해시대를 알아나간다.
그러므로 이책은 일관된 스토리라인이 없다. 그러므로 대항해시대의 연대기는 다른 책에서 이미 읽었다고 전제하고 그 연대기에 대한 보론으로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책은 단순히 대항해시대에 관한 독립된 논문을 모은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이책에는 저자의 일관된 관점이 살아잇기 때문이다. 이책에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대항해시대 그리고 그 시대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우리의 시대를 이해하려면 브로델과 세계체제론이 말하듯이 15세기부터 지금까지 세계는 일관된 흐름 위에서 만들어졋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600년의 역사는 하나의 세계라는 단어가 실체가 되어간 세계화의 역사이다. 그리고 저자는 그 세계화의 역사는 폭력의 세계화였다고 말한다.
저자는 세계화는 탐욕과 오만이란 동기로 휘둘러진 폭력에 의해 하나의 세계로 지구가 묶여가는 역사였다고 말한다.
저자의 논의를 이해하려면 브로델의 논의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저자는 이책을 읽기 전에 ‘물질문명과 자본주의’같은 통사를 읽었다고 가정하는 것같다. 그러므로 이책의 논의는 그런 통사의 논의를 전제한 상태에서 전개된다.
저자의 논의는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는 다른 것이란 브로델의 논리를 전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브로델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시장경제는 언제나 어디서나 있었던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유럽의 발명이라는 것이다. 핵심도시가 있으면 그 도시 주변지역으로부터 그 도시로 물자와 사람의 흐름이 있다면 그것은 시장경제이며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있었던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도시들 간의 교역 네트웤도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자본주의 역시 그런 교역 네트웤으로부터 만들어졋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다른 것은 그 네트웤을 폭력적으로 재조직한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교역 네트웤은 상업적인 것이었고 상인들간의 네트웤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네트웤에 참여한 유럽인들은 국가를 등에 업었고 국가의 폭력을 이용해 그 네트웤을 자신들에 유리하게 재조직했다. 네트웤에서 이윤율이 높은 부분을 자신들이 차지하기 위해 폭력을 동원한 것이다. 자본주의가 이전의 시장경제와 다른 것은 그 폭력성에 있다는 것이다.
이책의 저자가 보여주려는 것은 그 폭력성이 어떤 것이었고 그 폭력성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이다.
이상이 이책에서 기대할 수 있는 내용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책은 저자가 번역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보론으로 읽을 때 그 가치가 있다.
독자리뷰2
역사는 어떻게 흘러가는가.
나는 그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일 것인가.
그것에 관한 참된 의미를 꿰뚫어볼 수 있는가.
과연 나는 통찰이라 부를 만한 행위를 하고 있는가.
흐름을 통찰.
내 인생의 목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말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 없이 많은 흐름들을 엮어 하나의 큰 흐름으로 바라보는 눈을 가지는 것.
지금까지 대부분의 역사서는 대륙 문명의 관점, 그것도 주로 농경 문화권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해석해 왔다. 그러나 이 책은 근대 해양세계의 발전에 주목한다. 세계의 해상 팽창을 최대한 균형 잡힌 시각으로 살펴보려는 시도이다. 근대 세계사에 대한 새로운 조망을 통해 우리 시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15-18세기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기본 틀이 만들어진 시기이다. 이 시대의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 동안의 역사 해석은 ‘서구중심주의’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에 따르면 근대사는 서유럽 국가들이 해외 팽창을 주도하고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세계체제의 건설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역사의 흐름은 이와는 달랐다.
각기 고립되어 발전해 왔던 지역들이 해로를 통해 상호 소통하면서 전 지구적인 네트워크가 구축되었다. 이를 통해 사람과 상품, 가축과 농작물, 혹은 다양한 생태계 요소들이 먼 바다를 넘어 이동했고, 지식과 정보, 사상과 종교가 교환되었다.
그러나 평화적인 교류가 이루어지는 만큼이나 무력 충돌, 경제적 착취, 환경파괴, 종교적 탄압이 일어났다. 이런 복잡다기한 과정을 통해 온 세계가 하나의 흐름 속에 합류하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 혹은 지구사(global history)가 탄생한 것이다.
저자소개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서양사학과를 졸업한 후,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및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 『테이레시아스의 역사』,『대항해시대』, 『문명과 바다』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역사와 영화』, 『경제강대국 흥망사 1500****』 외에 다수가 있다.
남반구 별자리가 이 시대에 탄생했습니다. 인간의 운동성에 관심과 주의를 가지고 읽으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독자리뷰1
대항해시대를 다루는 책은 여러권이 나와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뿌리인 만큼 대항해시대는 과거의 지나가버린 흥미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항해시대를 다룬 책들은 양만 많은 것이 아니라 다른 시대를 다룬 책들보다 질도 높다.
대항해시대를 다룬 책으로 가장 뛰어난 것은 이책의 저자가 번역한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들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많고 뛰어난 책들 위에 이책이 더해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책의 의미는 ‘보충’이랄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책은 저자가 번역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보론이랄 수 있다. 이책은 대항해시대의 경제사에 관한 것도 그 시대의 정치경제학도 아니다. 이책은 대항해시대에 관한 통사가 되려 하지 않는다.
다른 대작들은 베니스, 피렌체, 밀라노 등의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 포르투갈/스페인 그리고 네덜란드, 영국, 미국으로 세계경제의 패권이 이동하는 역사의 흐름을 다룬다. 이책은 그런 대작들과 경쟁하지 않는다.
이책은 통시적으로 대항해시대를 다룬 그런 책들과 달리 공시적인 관점을 취한다. 대항해시대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하나의 단위로 보고 그 시대의 단면을 잘라 그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책의 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의 구성은 그 시대의 항해술이 어떠했고 군사적 기술이 어떠했는지, 어떤 화폐가 쓰였는지, 노예무역의 성격은 어떠했는지, 환경의 변화는 어떠했는지, 질병이 어떻게 세계화되었는지 종교가 어떻게 강요되었고 수용되었는지, 문화는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등과 같은 질문에 따라 대항해시대를 알아나간다.
그러므로 이책은 일관된 스토리라인이 없다. 그러므로 대항해시대의 연대기는 다른 책에서 이미 읽었다고 전제하고 그 연대기에 대한 보론으로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책은 단순히 대항해시대에 관한 독립된 논문을 모은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이책에는 저자의 일관된 관점이 살아잇기 때문이다. 이책에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대항해시대 그리고 그 시대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우리의 시대를 이해하려면 브로델과 세계체제론이 말하듯이 15세기부터 지금까지 세계는 일관된 흐름 위에서 만들어졋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600년의 역사는 하나의 세계라는 단어가 실체가 되어간 세계화의 역사이다. 그리고 저자는 그 세계화의 역사는 폭력의 세계화였다고 말한다.
저자는 세계화는 탐욕과 오만이란 동기로 휘둘러진 폭력에 의해 하나의 세계로 지구가 묶여가는 역사였다고 말한다.
저자의 논의를 이해하려면 브로델의 논의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저자는 이책을 읽기 전에 ‘물질문명과 자본주의’같은 통사를 읽었다고 가정하는 것같다. 그러므로 이책의 논의는 그런 통사의 논의를 전제한 상태에서 전개된다.
저자의 논의는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는 다른 것이란 브로델의 논리를 전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브로델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시장경제는 언제나 어디서나 있었던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유럽의 발명이라는 것이다. 핵심도시가 있으면 그 도시 주변지역으로부터 그 도시로 물자와 사람의 흐름이 있다면 그것은 시장경제이며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있었던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도시들 간의 교역 네트웤도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자본주의 역시 그런 교역 네트웤으로부터 만들어졋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다른 것은 그 네트웤을 폭력적으로 재조직한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교역 네트웤은 상업적인 것이었고 상인들간의 네트웤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네트웤에 참여한 유럽인들은 국가를 등에 업었고 국가의 폭력을 이용해 그 네트웤을 자신들에 유리하게 재조직했다. 네트웤에서 이윤율이 높은 부분을 자신들이 차지하기 위해 폭력을 동원한 것이다. 자본주의가 이전의 시장경제와 다른 것은 그 폭력성에 있다는 것이다.
이책의 저자가 보여주려는 것은 그 폭력성이 어떤 것이었고 그 폭력성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이다.
이상이 이책에서 기대할 수 있는 내용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책은 저자가 번역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보론으로 읽을 때 그 가치가 있다.
독자리뷰2
역사는 어떻게 흘러가는가.
나는 그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일 것인가.
그것에 관한 참된 의미를 꿰뚫어볼 수 있는가.
과연 나는 통찰이라 부를 만한 행위를 하고 있는가.
흐름을 통찰.
내 인생의 목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말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 없이 많은 흐름들을 엮어 하나의 큰 흐름으로 바라보는 눈을 가지는 것.
해상의 팽창과 함께 일어난 수 없이 많은 변화들을 하나하나 살핌으로써,
현실들을 한줄기 흐름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조금이나마 더 기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