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후기
어디서 많이 듣고 많이 보았던 광경은 사실 감동이 덜 합니다. 그랜드 캐니언에 갔을 때도 조금 비슷 했습니다. 마치 큰 감동을 받지 않으면 안 될 듯 해서 미리 긴장 했었습니다. 백두산은 더군다나 민족의 영산이며, 신화적 공간이며, 동시에 분단의 역사의 비극을 지켜보고 있는 산입니다. 거기서 무슨 커다란 감동을 받지 못할까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본 것은 백두산이 아니라 백두산을 보고 있는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학습탐사에 함께 한 어머니는 백두산을 오른다는 생각만으로도 몇 일을 걱정하셨습니다. 정작 백두산을 오를 때는 긴장을 얼마나 하셨던지 몇 계단 오르고는 숨을 헐떡거리셨습니다. 짊어 졌던 가방은 제가 들쳐 메고 어머니의 뒤꽁무니를 따라 올라갔습니다. 힘이 드셨을텐데도 못 올라가겠다 않고 힘겹게 오르는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어머니가 오르는게 아니라 백두산이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어머니는 등이 많이 굽으셨습니다. 자식 넷을 키우며 등 펴 본적이 없기도 했겠지만 많은 시간을 봉사 활동으로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한 십 년전 정도에 성당에서 독거 노인분들에게 드린다고 김장 김치 1000 포기를 담그셨습니다. 마지막 물 한 바가지 끼얹고 끝낸다고 힘을 주셨는데 얼음판이 된 바닥에 넘어지셨습니다. 그리고는 뼈가 아홉 조각이 나셨지요. 수술을 끝나고 마취에 깨어날 때 저를 보시고는 눈을 몇 번을 깜빡이셨습니다. 서울에 있을 아들이 목포에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 하신 겁니다. 그렇게 오른팔을 잘 못 쓰셔서 그러지 않아도 굽은 등은 더 굽어져서 숨쉬기가 더 곤혹스러워 하셨습니다. 그 와중에도 유머는 잃지 않으셔서 건배하자고 하는 분에게 ‘제가 건방진게 아니라 하느님이 제 곁에 여러분을 더 가까이 하게 하려고 팔을 이것 밖에 못 들게 하셨어요.’ 하십니다. 팔을 못 올리는데 잔을 부딪치려면 상대가 가까이 와야 하는데 상대방의 무안함을 줄이려 그리 말씀 하십니다.
어머니께서는 백두산을 그 굽은 등을 몇 번을 펴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달래며 올라야 했습니다. 평생 누구 하나 탓하지 않으셨는데 그 때는 나이 탓을 하시더군요. 나이는 뭐라고 안 할거라면서 말이죠. 나이가 사람도 아닌데 화낼리가 없지요. 오갈 데 없는 감정이 사람에게 부어질 때 사람은 상처 받는다는 지론 때문입니다.
백두산 천지가 몇 계단 남지 않은 곳에서 안내 손잡이를 잡고 살짝 주저 앉으시더니 숨을 헐떡이셨습니다. 그리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는데 저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너네 아빠가 돌아가실 때 그렇게 숨을 못 쉴 때 뭘 그렇게 남은게 있어서 그러요. 다
놓고 편히 가시오.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지금 이렇게 숨이 못 쉬고 보니 얼마나 힘들어서 그랬을까 생각이
들어서, 미안해서 미안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안아드리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시더니 커피 좀 빨리
달라고 하십니다. 백두산이 저기 저렇게 시퍼렇게 눈 뜨고 있는데 언능 힘내야지 그러십니다.
푸른 하늘에 하얀 머리, 백두의 천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천지를 한 참을 보고 있으시다가 작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만
봐서 미안해요~~~’ 누군가에게 건강하다는 의미가 미안함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났을까요. 자리에 주저 앉아서 뭘 꺼내 들고 낑낑거리고 계십니다. 뭐 하시냐고 물었더니 ‘지원장이 힘 빠질 때 먹으라고 했는데 암만해도 지금이 그 땐 것 같다.’ 그러면서 공진단 한 알을 빼려고 백두산 천지 앞에서 눈 위에 잡동사니 올려 놓고 낑낑거리십니다. ‘엄마 옆에 테이프를 때야지~~’ 그러면서 제가 공진단을 드렸습니다. 무슨 전설의 고향에서 위급할 때만 꺼내서 펴보시오 그러던 보자기를 펴는 공손함으로 감사드리며 공진단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함으로 무사히 백두산을 내려 오셨습니다. 어머니의 백두산은 어머니께 무엇을 드렸을까요? 역사의 순환이나 국제적 정세에 놓여 있는 한반도, 역사 속에 되 찾아야 할 영산의 의미, 이런 건 아니라 생각합니다. 백두산은 긴 시간을 그렇게 놓여 있었을 뿐입니다. 어머니는 이번 학습탐사에 대해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 밤 하늘에 별들도 같이 있는 듯 보이지만 홀로 빛난다. 어찌 사람이라고 안
그렇겠는가. 같은 버스에 있다고 같은 별이 될 수는 없지. 부부마저
떨어져 있는 별이다. “
누구나 혼자 이겨내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들과 어머니 관계라도 그렇겠지요. 각자가 각자의 존재를 찾기 위해 암기도 하고 힘든 발걸음을 디디며 학습탐사 여정을 보냈습니다. 여정의 순간마다 끝내 만나는 건 나 자신 그것밖에 없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상처 주고 상처받는 여린 별들의 이야기는 비단 오늘 내일의 이야기는 아닐 듯 합니다. 암기 발표를
할 때 너무나 잘하는 중학생을 보고 어쩜 저리도 빛을 홀로 낼까? 하시고, 딸에게 보여 주겠다며 잠을 안자고 외워서 발표하는 아버지를 보고는 ‘ 아버지라는 공은 함부로 얘기할게 아닌거다.’하셨습니다.
뭔가를 발견하고 뛰어가는 박사님을 보고 대단한 무언가를 발견 했나 보다 하고 같이 뛰어 가셨답니다. 박사님은 거기서 구멍 하나 뚫어진 돌을 보고 너무도 신나서 이야기하는 모습에 감동을 먹으셨다고 합니다. 참으로 배움을 나눈 다는게 먼저 신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라 감탄하십니다.
박사님께 감사함을 전하셨습니다. 어제 오늘 내일 그런 시간이 그렇게 있는지 알고
지내다 모든게 지금 여기에 다 있음을 알려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떠난 사람도 다 지금 여기 있는
거라는 걸 맘에 담을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다고 하십니다.
어머니의 백두산은 떠나오고 나서도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솔다의 어머님이 학습탐사를 오셨습니다.
frame을 척척 암기하여 발표까지
무엇보다 소녀같은 감성으로 시낭송까지
부러웠습니다. 어머니와 학습탐사를 온 솔다가
효자였습니다. 어머니와 학습탐사를 온 솔다는
확인했습니다. 솔다가 왜 솔다인지를
아름다웠습니다. 학습탐사하는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
가르쳐주셨지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새로운 곳에 새로운 꽃이 핀다' 전해주시고
반가웠습니다.^^*
"어제 오늘 내일 그런 시간이 그렇게 있는지 알고 지내다
모든게 지금 여기 다 있음을 알려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떠난 사람도 다 지금 여기 있는 거라는 걸 맘에 담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다고.."
참으로 삶의 연륜이 대단하시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단지 시간이 흐른다고 얻어지는 연륜이 아니란 생각을 합니다.
밤하늘의 별들도 같이 있는 듯 보이지만 홀로 빛난다고 하신 것처럼,
정말로 아는만큼 보이고, 가슴의 크기만큼 느끼고, 담고 공감할 수 있나봅니다.
꼭 한번 들러보고 싶었던 백두산이었고, 웅장한 풍광과 그 속에 담긴 역사에 가슴 져려오긴 했습니다만,
이렇듯 크나큰 감동으로, 온몸 울리는 느낌으로는 다가서지 못했었는데
어머님의 이야기를 전해들으니 새삼 백두산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탐사기간 내내 소녀같은 감성으로, 유쾌한 모습으로 대원들을 놀래키셨는데
또 이렇게 깊은 마음의 글까지 전해주시니 감동입니다.
내 부모님의 이야기인양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그나저나 넘치는 감성과 말솜씨, 글솜씨는 모전자전이신 듯 합니다.
이향희선생님의 탐사 작품사진이 음악과 함께 동영상으로 어우러지니
이보다 근사할수가 없네요.
이 영상 속 등장인물이 바로 우리들이었다는게 실감이 안납니다.
오녀산산성 위에서 들리는 바람소리는 또 어찌 그리 현장감 넘치는지요?
절벽 아래서부터 불어올라오던 그 바람이 다시 생생히 피부에 와닿는 느낌입니다.
멋진 사진, 멋진 음악 그리고 멋진 사람들이 만든 가장 멋진 '바로 이 순간'입니다.
이향희 선생님께서 압록강이 있던 집안 박물관 근처에서 한국말을 듣게 됩니다. 타지에서 들리는 한국말에 고개를 돌렸습니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나이든 여자와 딸로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습니다. 어디서 오셨냐고 묻자 대답을 머뭇거리다. 한 명은 탈북을 하여 부천에서 살고 어머니는 북한에 있다고 합니다. 헤어진지 9년 만에 그렇게 압록강 근처에서 만났다고 합니다.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이겠죠.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중국을 두고 있으니 충분히 그럴 법한 일입니다. 딸이 말합니다. 들고 온 휴대폰이 배터리가 떨어져 사진 한 장 못 찍고 있다고 합니다. 그 사연을 이향희 선생이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진 찍어서 보내 주겠다고 연락처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제 그 모녀는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세월호에서 아이를 잃은 부모의 시간은 그 날 그 시간에 놓여 있습니다.
부천에 사는 딸은 어머니를 모시고 한국으로 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좋지도 않은 남한에 왜 가야 하냐고 이야기합니다. 이향희 선생은 속으로 한국이 북한보다 낫지 않은가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들은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북한에 사는 어머니는 아니라고 합니다. 이미 우리는 생각에 벽에 그리 서로 다르게 살아 왔습니다.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는 널리고 널렸습니다. 그런데 이향희 선생님의 압록강에서 만난 모녀의 이야기는 묘한 여운을 남깁니다. 저기 저 멀리 시대적 이야기가 아니라 내 눈 앞의 살아 있는 지금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사진이라는 사각의 틀에 들어선 풍경 너머에 사연이 뭍어 있습니다.
탐사 이틀째 였던가 삼일째였던가 기억이다.
옆자리에 딱 우리 어머니 연배로 보이는 어르신이 앉아계셨다.
어떻게 오셨는지 여쭤보니 아들과 함께 오셨단다.
오전에 탐사를 끝내고 호텔로 향하는 밤버스 길에 발표를 하시는데
해도 해도 프레임 암기가 잘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솔직한 심정을 소녀 감성으로 말씀하시는데 지혜가 느껴졌다.
어두운 버스안에서 짬짬히 깨알처럼 쓰신 메모를 들쳐보시는데 적잖이 놀랬다.
"어머니 저도 잘 안 외워져요."
그날 저녁에 늦게까지 공부를 했다. 딸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기억력에 자꾸 원망이 든다. 1시쯤 잤다.
다음날 아침 발표를 했고, 위기때 장조장님이 힌트를 줘서 떠듬거리지만 무사통과를 했다.
딸아이는 박수를 쳐줬고, 옆자리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면서 꼬깃꼬깃 품속에서 구운달걀하나를 건네셨다.
"그렇지, 하면 된당께~ 참 잘했서요. 닭 한마리 잡수쇼~"
40대 중반을 넘어가는 사내가 처음 밟는 낮선 중국땅에서
오랜만에 받아보는 푸근한 격려다.
까서 먹으면서 같이 온 아들이 누군지 궁금했다.
며칠 후 두사람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생각했고,
'모전자전'이 뭔지 알 수 있었다.
p.s : 평생잊지 못할 닭한마리 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사진은 이향희 선생님이 찍으신 작품을 썼습니다. 미리 감사 말씀 드립니다. 참 좋은 시간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