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밤하늘의 별처럼 한 세계를 비춘다. 

존재는 언어의 외투를 걸쳐야 소통이라는 왕관을 쓸 수 있다.
그 언어를 쓰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 그 언어가 아니면 아예 접근 시도조차 허용하지 않는 세계가 있다. 그 세계의 언어가 떠난 자리에는 순간 비언어의 몽상이 활개친다.

보편의 향기는 폐 깁숙이 스며들어 숨쉬고 눈 뜰 때마다 온몸을 감싼다.
특수성은 보편성의 기초 위에 집을 짓는다. 보편의 의미를 억제하는 것은 무지라는 무의미다. 앎과 모름 그 지극한 비대칭에서 나온 입김이 새파랗게 질린다. 숨막히는 분자간의 스킨십은 정성적 사고나 내재적 성찰로는 그 짜릿함을 맛볼 수 없다. 표상된 의미는 분자식을 만나고 나서야 그 실재가 드러난다.
의성어는 의태어보다 공감각적이다. 귀신보다 귀신 소리가 나는 더 무섭다. 두 염기 사이의 화학적 결합은 불안하지만 염기쌍이 맺어지며 돌아가는 유투브 이중나선 장면의 배경 음악은 베토벤의 환희나 합창이 연주 되어야 한다

아무렇게나 찍은 사진은 잡다한 말과 같다. 그래서 잘 그려진 이미지는 언어의 한계를 뛰어 넘는다. 언어에 이미지를 채색한다. 과학이라는 유니버셜 랭귀지는 그 자체만으로는 덜 아름답다. 박자세 대가의 손길로 재탄생해야 한다. 씨줄과 날줄의 빈틈없는 교직구조로 옷감을 짜서 우주를 덮는다. 양성자. 집 나간 아들 기약없이 버려지고 난데없이 데려가는 외로운 양치기. 주춧돌 전자의 절제된 몸짓. 눈물이 난다. 박자세 언어는 아름답다.

사유가 아니라 관찰에서 대상은 드러나고 새로운 것을 보기보다는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될 때 놀라움과 환희심이 생긴다. 없는데도 보이는 세상은 공부하는 삶이 주는 놀라운 기적이다.

이해되면 떠날 수 있고 보내줄 수 있다.
사라지기 전에 빛의 등에 올라타고 싶다.
빛으로 와서 분자로 남는
그렇게 보이는 것들을
그렇다고 말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