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
지금 우리 지구인 모두가 겪어내고 있는 코로나19!
以前의 사스나 메르스와 달리 코로나19가 pandemic화 되면서 이를 마주한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들의 아수라阿修羅 풍경 속에 단군할배이래 처음으로 우리나라 시민들은 세계인의 질시어린 감탄의 신음소리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그들 눈에 희한稀罕하고 unique한 활동사진의 장면들을 天然덕스럽게 연출하고 있습니다. 근대 이후 문명판 위의 보편적 인식 질서가 코로나19로
인하여 (국가마다 그리고 국가의 지도자와 국민 또는 시민들의 몸짓으로, 자신들도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복顚覆되는 상황들이 목격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20일 미국과 동시에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 100일이 지나가는 시점에 누군가 코로나19의
관찰기를 쓸 것 같아 살펴보니 대부분 정치경제관련 글이었습니다. 내가 써 볼까?하는
요상한 마음도 한 구석에서 일기도 했지만, 106일째 되는 지난 월요일 5월 4일 새벽, 아파트 통로 가스배관에 낀 한겨레신문 1면과 5면에 김훈 선생님의 글이 실렸습니다. 야 ~ 호! 3번을 되풀이 해서 읽고 신문에 줄 친 구절을 노트에 옮겨 적고 全文을 다운받아
김훈 선생님의 숨소리를 상상하며 저의 숨길을 따라 다시 옮겨 적었습니다. 도중에 불현듯 김구 선생님의 "나의 소원"이 떠올라 내리는 눈물 콧물로 입술을 핱는 혓바닥이 짭쪼름하였습니다. 지난 월요일 아침나절에 저에게 벌어진 사건이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김훈 특별기고 '무서운
역병의 계절을 나며 희망의 싹을 보았다' http://m.hani.co.kr/arti/opinion/column/943498.html#cb --------------------------- 김훈 선생님의 책 <연필로
쓰기>2019.3.27. (주)문학동네 5쪽의 알림 중의 문구. '생활의 질감과 사물의 구체성을 확보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사물의 구체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즉 불확실할 때 나타나는
감정이 불안이고, 그 구체성이 누군가의 거짓으로 뒤덮이면 분노의 불꽃이 피어납니다. 그래서 아주대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不安은
사실을 알고자 하는 감정이고, 분노憤怒는
진실을 알려는 감정이다.” https://youtu.be/ktL0zNkArbM 사스와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 국정농단과 광화문 촛불, 검찰개혁과 서초동 집회 4.15총선의 집권여당화 코로나19와
정은경 질본 본부장 작금昨今 우리가 위치한 지구행성의 한 귀퉁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관통하는 맥락은 무엇일까? 그리고 미증유의
pandemic 상황에서 사실에 가장 가까운 자연과학에 대한 인식의 깊이와
확장을 통해 머리로부터 시작한 가슴 떨림으로 팔다리와 손발이 절로
따라 움직이는, 그래서 우리의 삶의 터전인 지속가능한 지구라는 행성에서 모든 지구인이 행복한 연대의 어깨동무와 손잡기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가능했으면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말이 참 무섭습니다.
자연을 쪼개보면 時間(天), 空間(地), 人間(人)인데
모든 사건은 이들 사이間에서 일어나고
그 사건의 인과율인 사실을 규명하려는 과학,
사건 속에서 교직되는 인간의 무늬를 표현하는 인문학.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자리에 모든 자연이 포섭되는 인식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코로나19로 인한 pandemic은 계속되겠지요.
과학적 인식에 기반한 구체적인 학습과 실행이야말로
앞으로의 인류 생존에 결정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김우현선생님의 견해와 멀지 않은 것같아 반갑습니다.
아주 neat한 댓글!
고맙습니다!
링크 2건,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부루대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