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국방대학교의 문장렬 교수님께서 또 늦게 (!) 이제서야 숙제를 제출하셨습니다.
"기냥 해넘기기 거시기 해서"' 라면서...
저에게 보내온 것을 그대로 forward 합니다.
Enjoy!
인간의 의식마저도 우주적 심연의 표면에 일어나 퍼져가는 파도일 뿐이다.
시공을 비롯한 우주내 모든 존재는 사연을 가지고 있고,
모든 사연은 태초에까지 이르는 모든 과거를 기억한다.
가슴에 와 닫는 명문장입니다.
저는 생물만이 사연을 이야기 할 수 있고,
무생물은 단지 사연을 간직하기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가진 생물과 무생물의 구별기준이었습니다.
둘다 심연의 파도라는 측면에서는 구분이 무의미해집니다.
기나긴 심연의 사연을 간직한 우주가 인간이라는 생명을 통해 스스로의 사연을 이야기 합니다.
우주가 표면의 파도를 통해 스스로에게 말하는 소리가 어찌 경탄스럽지 않겠습니까?
제가 뒤늦게 자연과학을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과학만이 우주의 이야기와 목소리를 전달해줍니다.
법성원융 무이상, 제법부동 본래적
무명무상절일체, 증지소지 비여경
진성심심극미묘,불수자성 수연성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일미진중 함시방,일체진중역여시
무량원겁즉일념,일념즉시 무량겁
.......
선생님 글을 읽다 지난 경주답사에서 얻어 온 의상대사 법성게가 떠올라 복습해 보았습니다.
지혜로우신 선생님의 눈에 법성게가 펼쳐첬던 것이겠지요.
그 시각 밥오밥나무아래 오찬에 저도 함께했었지요?
개미들을위한 고시래도 하고..
2011여름 서호주: 사연, 심연, 인연
문장렬
사연
거기, 길옆에 서있던 커다란 바오밥나무 아래서 우리 몇 사람은 나그네의 조촐한 점심으로 미심쩍은 허기를 흩어 버렸다. 한낮의 강렬한 햇볕은 구름 한 점 허하지 않고 땅의 붉음과 나무의 푸르름을 보얗게 뒤섞었다. 그럴수록 선명한 먼 하늘의 파란 빛깔에는 눈이 시렸다. 여기저기 햇볕에 헤어지고 바람에 흔들리는 바오밥나무의 그늘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나는 태양의 반대편에서 두 팔을 한껏 벌려 나무의 몸통을 안아 보았다. 좀 서늘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냥 따뜻했다. 다시 달리는 차 안에서 우리는 더 준수해 보이는 바오밥나무들을 수없이 지나쳤다.
그날, 어둠이 내린 뒤 도착한 야영장 한 가운데, 아마 호주 대륙에서 가장 클지도 모를 바오밥나무가 천구를 이고 서서 조용히 우리를 맞아 주었다. 낮 동안 양광에 지친 눈이 행여 별빛에라도 부실까봐 밤하늘 한편을 넉넉히 막아 주었다. 나무 위로 빛나는 별들이 나무 속으로 졌다. 맞은편의 총총한 별들과 희미한 황도광은 바오밥나무를 비추고 있었다. 마젤란성운은 하얀 세모시로 성글게 짠 천 조각처럼 아스라이 먼 곳에서 보일락말락 펄럭이고 있었다. 이튿날 바오밥나무 너머로 동이 터왔다. 수줍게 이지러져 가는 하현달과 새벽별들이 거대한 바오밥나무의 검은 실루엣 위로 그날의 짧은 첫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심연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 작은 연못이 있었다. 그곳에 이르는 바윗길엔 갈라진 땅의 모든 역사가 기록되어 있었다. 계곡이 언제 생겨났는지는 사소한 일이었다. 역사책은 항상 같은 말로 시작되었다. “이 책과 이 책에 기록된 것들과 이 책을 보는 자들은 모두 함께 태어났다.” 불의 역사와 돌의 역사와 철의 역사와 물의 역사가 어우러져 그날 그곳에서 그 연못이 우리를 불렀다. 몇몇이 물로 뛰어들었다. 나도 물위에 누워 천천히 팔다리를 헤저으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사막의 한낮에 크게 뜬 내 눈은 빈 하늘로 채워졌다.
“모든 인간은 다른 모든 인간에게 저 깊은 비밀과 신비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도시의 어둠 속에 산재해 있는 집집마다 남모르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그 집들의 방방마다 자기들만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그 모든 방 안에서 박동하는 수많은 가슴들은 저마다 가장 가까운 가슴에게도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다!” (Charles Dickens, A Tale of Two Cities)
어찌 인간만이 저 깊은 비밀과 신비로 이루어져 있을까. 만물의 사연들은 시간 자체의 역사만큼 깊다. 하여 우리들의 사연도 태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구한 시간은 찰나로 이어져 있고 광대한 공간은 점으로 나뉜다. 찰나와 찰나 사이, 점과 점 사이엔 바닥모를 심연이 놓여있다. 만물은 심연으로 이루어져 있고 인간의 의식도 그 자체가 하나의 심연이요 이 우주적 심연의 표면에 일어나 퍼져가는 파도일 뿐이다.
인연
심연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태초에 한 몸이 둘로 나뉘었다. 무한히 격렬했던 그 폭발도 무한히 짧은 순간에 이 우주와 저 우주로 나뉘는 그렇게 단순한 이분법의 지배를 받았을 것이다. 끊어진 것들이 아직 좁은 공간에서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이어지고 이어진 것들은 끊어진다. 사연이 시작되고 인연이 탄생한다. 사연이 멈추고 인연이 끝난다. 그러나 사연은 다시 태어나고 인연은 다시 시작된다. 모든 사연은 태초에까지 이르는 모든 과거를 기억한다. 모든 새로운 만남은 재회일 뿐, 우리는 항상 하나였고 하나일 것이다.
단 한 개의 못이 말발굽의 편자에 잘 못 박혀 한 나라가 무너졌다던가. 그 못도, 그 것을 두드리던 대장장이의 망치와 팔뚝의 혈관에 흐르던 피도, 저 켜켜이 쌓인 호상철광과 바람에 날리는 붉은 먼지도, 언젠가 무수한 개미들이 오랜 조직적인 수고로 쌓아올렸을 수많은 개미집들도, 인류 문명의 건설과 파괴에 사용된 거의 모든 무거운 물건들도 한 때 바닷물에 충만히 녹아 있다가 단순하고 반복적인 생명현상의 결과 고형화된 철이라 부르는 한 가지 원소를 고리로 이어진다. 그것이 있었기에 우리가 있었고 거기에 갔고, 가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며 철의 인연으로 서로의 사연을 묶었다.
----------------------------------------------------------------
심심해서리 ... 글이 그냥 댕깁니다. 댓글로 펌.
몽골의 '딩동댕'에 이어 서호주의 '연.타'!
멋집니다.
타이밍이 아슬아슬
책에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