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조카가 세 명 있다. 그 중에 두 명이 누님네 아들들인데 요 녀석들이 대단한 꼴통들이다.

꼴통이라는 말은 누님이 자기 아들들에게 붙여준 예명 아닌 예명이다. 전적이 화려한 녀석들이라 꼴통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둘째 조카 녀석이 초등학교 입학하고 나서 누님은 학부모회의 회장이 되셨다. 평소에 앞장서는 것을 좋아하는 누님이기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대학 다닐 때는 학생회 간부를 했고,  간호과 졸업하고 나서 들어간 종합병원에서는 노조를 하였다.

 

누님이  대학 다닐 때 가족이 모여 저녘 식사를 하는데 누나가 없었다. 아버지는 내게 누나 어디 갔냐고 물으셨다. 난 내가 어떻게 알겠냐고 하려다가 tv를 보는데 어디서 많이 본 여자가 나오길레 '누나 저기 있네. '라고 말했다. 그리고 온 가족은 학생 운동 대모를 하는데 가장 선두에 서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누님을 발견했다.

 시간이 지나 종합병원 노조로 tv에 또 나왔을 때는 온 가족이 그러려니 했다. 그런 누나가 이제는 자식들 학교에 학부모 회장이 된 것이니 그닥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님네 아들들이 보통네기들이 아니라는데 있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데 이름만 달랑 써진 빵점짜리 시험지를 던져 놓고 나간 것은 그 학교 역사상 드문 일인데 형제가 용감하게 둘 다 백지 시험지를 놓고 나갔다고 한다. 연년생이니  다른 보호자들과 선생님들에 입에 회자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 기 좀 세워보겠다며 학부모회장을 맡은 누님은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받아보니 둘째 상진이의 담임 선생님이셨다.

' 네. 선생님 잘 지내시죠. 상진이가 또 사고 쳤나요?' 하도 사고를 많이치다 보니 받자마자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아니요. 어머니. 상진이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에 멀리 선교활동 다녀 오셨다고 해서 전화 드리는 겁니다.'

 

선생님이 갑자기 선교활동 다녀왔다고 하는 소리에 누님은 방학동안 경주에 다녀온걸로 전화 하신 줄 알고

'네. 저희 가족끼리 다녀왔습니다. '라고 답을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먼 곳까지 다녀 오셨냐며 힘들지 않으셨냐고 하셨다. 누님네는 절실한 기독교 신자라서 해외 선교를 아이들 방학 기간에 맞춰서 다녀 오시곤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 얘기로 들으셨다. 담임 선생님 또한 교회를 다니셔서 평소에 해외 선교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고 하신다.  그렇게 이야기를 한 참 하는데 무슨 사막이 나오고, 비행기를  너무 많이 타면 힘들지 않냐까지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이건 뭔가 이상하다고 누님은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저희 가족은 이번에 경주에 다녀왔는데, 비행기는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이 말에 담임이 한 이야기가 이렇다.  방학 숙제로 기행문을 제출하는데 상진이만 기행문을 안내서 물어보니까. 이 번에 너무 멀리 다녀오다 보니 미쳐 기행문을 쓰지 못했다고 얘기를 하더란다. 그래서 얼마나 멀리 다녀왔길레라고 생각하면서 물었더니. 아프리카라고 대답을 당차게 조카녀석이 하더란다. 대충 동남 아시아나 일본 정도면 그러려니 했을텐데 아프리카라니. 조금은 당황하기도 했고 하도 엉뚱한 녀석이라 의심도 들어서 비행기는 몇 시간 탔냐고 돌려서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건 자기도 정확히 모르겠고 자다가 눈을 뜨면 비행기고, 다시 한 참 자다가 눈을 떠도 비행기고. 오줌을 세 번은 더 누었는데도 비행기였다고  천연덕스럽게 답을 하더란다. 점점 정말로 아프키카 갔다온 건가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초등학교 3학년이 치는 뻥치고는 너무 글로벌해서 의심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의심을 지울 수가 없어서 아프리카에 갔더니 모래가 너무 많지 않냐고 묻자 조카녀석은 사람 사는데가 다 똑같죠. 라고 하더란다. 사람 사는 데는 사람이 살고 다른 데는 풀도 많은데도 있고, 사막도 있고 날씨 더운 것 빼고는 거의 비슷했고, 어차피 한국 교회에서 대부분 있어서 다른 사람들 만날 일도 없다고 얘기를 하길레 아프리카 정말로 다녀온 것으로 알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이 글로벌하게 친  뻥에 그냥 속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날 상진이는 친구집에 놀고 있다가 누님에게 끌려 나갔다.

 

 첫째 녀석에게는 여자친구가 있다. 녀석은 아이답지 않게 과묵한데가 있다. 어려서부터 시작한 태권도는 수준급이어서 도대회에 나가서 딴 금메달이 몇 개는 된다. 그래서 동년배나 한 학년 위까지도 녀석을 피한다. 그러던 어느날 여자친구가 울면서 진협이를 불렀다. 자기는 졸려서 책상에 엎드려 있는데 자꾸 울길레 왜 우냐고 했더니 자기반에 몇 몇 녀석이 놀리고 건드린다고 진협이에게 일렀다. 그래서 조금 짜증나는 얼굴로 일어나서는 여자친구 반 앞 쪽 교실문을 벌컥 열고는 자기 여자친구 건든 얘 다 나와라고 소리를 쳤더니 쉬는 시간에 떠들고 놀고 있던 얘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진협이를 쳐다 보았다. 그리고 다음날 누님은 또 학교에 끌려 가셨다.

 

지금은 녀석들이 너무 철이 들어 학교를 찾아가거나 담임 전화를 받거나 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한다.   녀석들에게도 누님과 매형에게 닥친 일들이 모른척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벤츠까지 타고 다니던 누님네가 사업에 실패하였다. 그래서 사업 확장을 위해 옮긴 제주도에서 나오지도 떠나지도 못한 채 그렇게 살고 있다. 그리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세번째 아이의 유산과 함께 얼마 후 자궁까지 들어 내면서 둘째 녀석과 약속한 동생은 영영 어려운 일이 되었다.

 재 작년에 자궁 수술을 하기 위해 부모님이 계시는 익산에 누님 혼자 잠시 제주도에서 나와 있을 때 이 꼴통 두 형제가 갑자기 사라졌다.그 녀석들 찾으러 매형이 제주도 사방을 찾고 돌아 다녔는데 저녘 늦게 녀석들이 거지꼴을 하고 집에 들어 왔다고 한다. 어디 갔냐고 매형이 다그치니까 한다는 말이 엄마 아프다고 하니까 몸에 좋은 전복 따러 바다에 갔단다. 전복은 못 잡아고 근처 조개파는 아줌마에게 부탁해서 소라는 몇 개 얻어 왔단다.  그 말에 수술을 하고 누워있던 누님은 웃으면 배아프니까 웃기지 말라며 전화로 매형을 나무라셨다.

 

  그런 누님에게 이번달 25일에 제주도에 간다고 했더니 너무 신난다며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더란다. 동생이 제주도에 온다는 이유가 신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내가 제주도에 가는 것 하나에 조카녀석들은 내게 전화를 한다. 언제 오냐고 말이다. 25일에 간다고 몇 번을 이야기 했는데도 언제 오냐고 묻는다.

 

 이제는 학교에서 말 안듣는 얘들은 조용히 불러다가 배를 푹하니 때려주면 된다던 녀석들이 너무 재미가 없어졌다고 누님은 말한다. 너무 기가 죽은 것 같아서 차라리 사고치던 때가 더 나았지 싶다고 말이다. 도대체 뭔 소린지.

 

 이래저래 바쁘다는 핑계로 조카들 얼굴을 못 보았다. 제주도에 가면 이 녀석들이 변성기에 든 걸걸한 목소리에 어울리는 얼굴인지를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에 가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