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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마사 로물루스에서 유스티니아누스까지

토머스R.마틴  | 이종인 
책과함께 2015년 10월 15일 출간

책 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 국내도서 > 역사/문화 > 서양사 > 유럽사 > 로마사


『고대 로마사』는 저자 토머스 R. 마틴이 놀라운 필력으로 고대 로마가 소규모 공동체에서 꾸준히 세력을 확장하여 그 전성기에 지중해 세계의 최고 국가로 올라서고 그 후 500년 동안 그 세계를 다스린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기원전 8세기의 로마 창건에서 시작하여 기원후 6세기의 유스티니아누스에 이르는 1300년간의 포괄적인 역사를 서술하면서, 저자는 로마인의 근본적인 가치관을 하나의 렌즈로 삼아서 로마의 발흥과 쇠망의 전 과정을 살펴본다. 이처럼 역사적 사건과 인물의 배경과 동기에 집중하는 저자의 노력은 이 책 전체에 걸쳐 풍부한 해설을 통해 드러난다.

저자  토머스 R.마틴

저자 토머스 R. 마틴 Thomas R. Martin은 홀리크로스대학의 고전학 교수. 저서로 ≪고대 그리스사: 선사시대에서 헬레니즘 시대까지 Ancient Greece: Prehistoric to Hellenistic Times≫, ≪고대 로마사: 로물루스에서 유스티니아누스까지 Ancient Rome: From Romulus to Justinian≫, ≪헤로도토스와 사마천: 그리스와 중국의 첫 위대한 역사가들 Herodotus and Sima Qian: The First Great Historians of Greece and China≫이 있으며, 린 헌트(Lynn Hunt)와 함께 저술한 ≪서구의 형성: 사람과 문화 The Making of the West: Peoples and Cultures≫ I?II가 있다.

번역   이종인
 
번역가/통역사>영어

역자 이종인은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과 성균관대학교 전문번역가 양성과정 겸임교수를 지냈다. 현재 인문 사회과학 분야의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 ≪살면서 마주한 고전≫ ≪번역은 글쓰기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로마제국 쇠망사≫ ≪중세의 가을≫ 등이 있다.

  • 목차

    감사의 글

    인용 표시, 사료에 대하여

    1. 서론과 배경
    2. 로마인의 가치, 가정, 종교
    3. 로마의 건국에서 공화정까지
    4. 공화정 시대의 전쟁과 영토 확장
    5. 공화정의 파괴
    6. 공화정에서 제국으로
    7.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가문에서 제국의 황금시대까지
    8. 예수 그리스도와 제정 초기의 위기
    9. 제정 후기의 기독교 박해와 수용
    10. 야만족의 이동과 제국의 운명

    역자 후기
    추천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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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기원전 753년부터 기원후 565년 유스티니아누스의 사망에 이르기까지

고대 로마 1300년 역사의 최신 정본

이 책에 대하여

로마의 학자 리비우스는 ≪로마 시 창건 이래의 로마 역사≫라는 저서에서 로마의 훌륭한 지리적 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신들과 인간들이 이 지역을 우리의 도시로 선택한 좋은 이유가 있었다. 이 도시의 온갖 이점 덕분에 로마는 세계의 많은 도시들 중에서 가장 위대해질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그러나 자그마하고 가난하고 볼품없던 공동체가 점점 성장하여 지중해를 둘러싼 엄청난 지역들의 최강자가 된 배경에는, 이러한 지리적 요건 외에도 로마 민족의 운명에 중요한 역할을 한 전통적 가치관, 가족 구조, 종교가 있었다. 로마인들이 추구한 가치는, 신들에 대한 경배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의무 사항, 그들 자신의 행동과 남들의 판단에 따라 사회 내에서 얻게 되는 평가와 지위 등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고대 로마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동적이면서 극적인 고대사

≪고대 로마사≫는 저자 토머스 R. 마틴이 놀라운 필력으로 고대 로마가 소규모 공동체에서 꾸준히 세력을 확장하여 그 전성기에 지중해 세계의 최고 국가로 올라서고 그 후 500년 동안 그 세계를 다스린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기원전 8세기의 로마 창건에서 시작하여 기원후 6세기의 유스티니아누스에 이르는 1300년간의 포괄적인 역사를 서술하면서, 저자는 로마인의 근본적인 가치관을 하나의 렌즈로 삼아서 로마의 발흥과 쇠망의 전 과정을 살펴본다. 이처럼 역사적 사건과 인물의 배경과 동기에 집중하는 저자의 노력은 이 책 전체에 걸쳐 풍부한 해설을 통해 드러난다.

저자는 사회사, 정치사, 종교사, 문화사를 서로 교직시키면서 로마인들이 전쟁, 정치 조직, 개인적 지위의 탐구, 종교적 신념 및 실천과 정부 사이의 통합 등에서 이룩한 성공과 좌절한 실패를 해석한다. 그는 왕정, 공화정, 제정으로 이어지는 로마의 정치 발전을 개관하면서, 국가의 결정뿐만 아니라 개인적 행동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사회적·도덕적 가치를 핵심 요소로 파악하여 그러한 요소들에 집중한다. 로마의 창건에서부터 그 후대에 이르기까지 고대의 역사를 차근차근 서술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고대 텍스트와 저자들을 최대한 인용하면서 독자들에게 1차적 사료로 돌아가라고 권유한다. 포괄적이고, 간결하고, 읽기 쉬운 이 걸작은 로마와 그 나라가 맞이했던 천변만화의 운명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독특한 창문을 제공한다.

한 권에 담은 고대 로마의 역사

이 책은 고대 로마의 역사를 기원전 753년부터 기원후 565년 유스티니아누스의 사망에 이르기까지 1300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통상 로마 제국이라고 하면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까지를 말하지만, 이 책은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예전의 로마 제국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보인 마지막 황제였기 때문에 그의 통치 시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은 고대 로마의 윤곽을 한번 ‘훑어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앞으로 펼쳐질 로마공화정을 이해하는 데에서 가장 까다로운 문제, 곧 왜 공화정이 붕괴했는지를 탐구해나갈 것임을 밝히고 있다. 2장에서는 로마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 맥락을 제공하는 로마인들의 가치, 종교, 가족을 다룬다. 고대 로마사는 통상 왕정, 공화정, 제정이라는 세 시기로 나누는데, 7왕이 통치한 왕정 시기(기원전 753~509년 로물루스에서 타르퀴니우스까지)를 2~3장, 공화정 시기(기원전 509년~기원전 1세기 후반부)를 3~6장, 그리고 제정 시기(1세기 이후 5세기까지)를 7~10장에서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시대 구분에 덧붙여 기본적으로 로마의 역사에 단 한 가지 중요한 구분만이 존재함을 지적한다. 왕정을 폐지한 기원전 6세기 말 이후로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정치 제도를 계속해서 공화제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로마의 정치사는 근본적으로 국가의 통치권을 공유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귀족과 평민 사이에서 벌어진, 팽팽하면서도 때로는 폭력적인 역사였다.

또한 로마 후기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 종교사에 두 장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다. ‘8장 예수 그리스도와 제정 초기의 위기’에서 기독교가 유대교에서 파생하여 독자적인 종교로 우뚝 서고 다시금 세계 종교로 나가는 과정이 자세히 설명되고 있으며, ‘9장 제정 후기의 기독교 박해와 수용’에서는 순교자 페르페투아의 사례를 통해 기독교가 어떻게 마침내 로마 국교로 올라서서 세계 종교로 번성할 기반을 갖추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이로써 기독교 사상과 로마 사상을 동시에 물려받은 기독교인의 고뇌 등 원시 기독교의 신자들이 당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생생하게 그려내었다.

사료 중심의 간결하고 정확한 서술

저자는 이 책에서 공화정 시대에 로마가 지중해 전역을 석권할 수 있었던 배경, 화려한 세계 최강의 제국이 쇠망의 길을 걸어가게 된 이유, 종교로서는 후발 주자인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될 수 있었던 까닭을 중심으로 고대 로마사를 서술해나간다. 이 핵심 질문들을 사료를 바탕으로 해석하면서, 로마사 전반에 대해서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서술을 지향한다. 예를 들어 왕정 시대의 사비니 여인들 납치 사건, 공화정 시대의 킨킨나투스 이야기, 왕정을 멸망시킨 계기가 되었던 루크레티아 이야기 같은 사건들도 모두 두세 줄로 간결하게 소개한다. 지루할 틈이 없이 개요와 핵심 주제를 넘나드는 노련한 서술을 통해 학생과 일반 교양인을 위한 고대 로마사 입문서가 탄생하였다.

저자가 지향하는 엄중한 역사 서술 방식은 ‘문화 교류’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저자는 이웃들과의 교차 문화적 접촉이 로마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하면서, 로마인들이 다른 문화의 전통을 단순한 방식으로 채택하거나 그리스 신들의 이름에 라틴식 이름을 부여하는 것 같은 피상적인 방식으로 변화시킨 것만이 아님을 강조한다. 교차 문화의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다른 민족에게서 가져온 것을 자신들의 목적에 적응시킨다. 그들 자신에게 알맞게 변화시킨 다음, 나름의 방식으로 그 영향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교차 문화적 접촉은 어떤 ‘고수’가 어떤 ‘하수’를 지도하는 방식이라기보다 동등한 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혁신의 경쟁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이로써 저자는 로마인들이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발명과 다른 문화의 채택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그들 나름의 생활양식을 발전시켰다는 역사적 관점을 제시한다.

개설서이자 사료집이면서, 고대 로마를 주제로 한 탁월한 연구서

이 책에는 로마 제국의 번영하는 판도와 후기의 쇠퇴하는 판도를 보여주는 지도가 13컷 들어 있으며, 로마 제국의 개요를 금방 파악할 수 있는 연대표가 각 장 시작 부분에 제시되어 있다. 본문 뒤의 [추천 도서]에서는 1차 사료인 원전과 후대 학자들의 유명한 저서를 2차 사료로 제시하여, 로마사를 더 깊이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최신 정보를 제시한다. 이 고대 사료들은 이 책의 본문에서 명시적으로 언급했거나, 거론하지 않았더라도 본문을 읽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그 필요성이 제기되는 자료들이다.

이 책은 2012년에 출간된 가장 최신의 고대 로마사 책이며, 380쪽 분량에 그 동안 학계의 연구 성과를 모두 담고 있다. 특히 저자가 40년 동안 학생들에게 로마사를 강의해오면서 파악한 고대 로마사의 요점이 핵심적으로 잘 정리된 책이다. ≪고대 그리스사≫와 더불어 고대 세계의 역사와 문명을 소개하는 고전학 교수의 책 두 권이 독자들에게 동시에 선보이게 되었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사와 로마사를 읽는 독자들에게 “우리는 장래 언젠가 새로운 증거를 발견할 수도 있고, 아니면 현재 알려진 증거에 대해 우리의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해석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현재의 해석이나 결론에 대해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라고 당부한다. 제한적인 해석이나 결론에 머무르지 않고 강의 노트를 끊임없이 보완하면서 최신의 학설까지 담아내려 노력한 저자의 열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책속으로 추가

아우구스투스는 ‘새로운 옛 공화국’을 점진적으로 확립해나갔다. 전통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는 복수와 권력을 추구하면서 무자비한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 젊은이로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으나, 로마에 평화를 가져온 노인으로 그 경력을 마감했다. 그는 상비군을 창설했고, 로마군이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로마 속주의 경계를 확정했으며, 수도 로마를 아름답게 꾸몄고, 화가와 조각가를 후원했으며, 도시 대중의 삶을 향상시켰고, 성공을 거둔 관대한 통치자라는 이미지를 널리 퍼트리기 위해 각종 선전 수단을 활용했으며, 상류계급을 유지시키기 위해 결혼과 자녀에 대한 로마인의 인식을 새롭게 형성하려 했다. 그가 이러한 변화들을 시도했기에, 역사가들은 로마제국 초기 몇십 년 동안을 가리켜 ‘아우구스투스 시대’라는 명칭을 붙였다. - 6장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177쪽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이 널리 알리고 싶어 했던 이미지를 잘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증거 문서 하나를 남겨놓았다. (…) 이 문서에는 그가 로마의 지도자로서 한 일과 공동선을 위해 거대한 사재를 출연한 사실이 1인칭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경력이 공화국의 전통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거듭하여 강조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10대 시절에 그는 사병을 조직하여 양아버지의 복수를 했고 공화국의 자유를 수호했다. 내전의 승자가 되어서는 독 재관 직책을 제안받았으나 거부했다. 그가 받아들인 직책은 원수 하나뿐이었다. 그는 인민을 돕기 위해 엄청난 사재를 출연했다. 그는 공식 권력이 아니라 전통적 가치를 따름으로써 얻은 엄청난 존경을 통하여, 국가 내에서 원수라는 지위를 획득했다. - 6장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185쪽

새로운 도시들이 많이 들어선 여러 지역에서는, 로마의 영향에 의한 변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러한 공동체들은 황제들이 속주 전역에 하사한 제대군인들의 정착촌으로 시작해서 성장했거나, 아니면 로마군의 주둔 부대를 중심으로 그 주위에 자발적으로 생겨났다. 이러한 정착촌들은 특히 서유럽이 형성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고, 라틴어(그리고 라틴어에서 파생한 다른 언어들), 로마의 법률, 관습을 그 지역에 단단히 심어놓았다. 독일의 서쪽 변경에 가까운 트리어나 쾰른 같은 저명한 현대 도시들은 로마의 도시로서 출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속주들과 로마제국의 중심인 이탈리아 사이의 사회적·문화적 구분은 희미해졌다. 마침내 속주에서 황제도 배출했다. 집안이 스페인에 정착해서 살았던 트라야누스가 그 첫 번째 사례이다. - 7장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가문에서 제국의 황금시대까지 221쪽

이런 광범위한 박해는 제국의 위기를 더욱 가속화한 내전, 경제적 실패, 전염병을 중단시키지 못했다. 갈리에누스 황제(재위 기원후 260~268년)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를 중지하고 주교들에게 몰수당한 교회 재산을 다시 돌려주도록 함으로써 제국에 종교적 평화를 회복시켰다. 이 정책 은 3세기의 나머지 기간 동안 기독교인과 제국 정부 사이의 긴장을 누그러뜨렸다. 그러나 기원후 280년대에 이르러 제국이 재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비틀거리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 8장 예수 그리스도와 제정 초기의 위기 266쪽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로 개종하기는 했지만 전통적인 로마 종교를 불법으로 선언하지도 않았고 또 자신의 개인적 신앙을 공식적인 국교로 만들지도 않았다. 그 대신에 종교적 관용을 선포했다. 이 정책은 313년에 선포된 ‘밀라노 칙령’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락탄티우스, ≪박해받은 사람들의 죽음에 관하여≫ 48). 반세기 전에 갈리에누스 황제가 선언한 사상을 바탕으로 한 이 칙령은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종교를 선택할 수 있다고 선언했고, ‘최고의 신성’이 제국을 보호한다고 말했다. 이 애매모호한 용어는 기독교인과 전통 신자들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한 말이었다. 콘스탄티누스가 볼 때, 종교적 관용은 신들의 호의를 다시 얻고 사회적 불안을 예방하기 위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 9장 제정 후기의 기독교 박해와 수용 282쪽

동로마 황제들은 로마 문명의 건강과 장수를 지원하기 위해 전통을 유지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의 특성’을 보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게르만 민족들과의 접촉이 서로마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의 제국을 ‘야만화’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서로마 황제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게르만족과 훈족 용병들을 많이 고용했으나 이 전사들의 관습이 제국의 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하려고 애썼다.

- 10장 야만족의 이동과 제국의 운명 322쪽

불운하게도 유스티니아누스의 군사적 승리는 장기적으로 볼 때 재앙으로 판명되었다. 그것은 서로마제국의 기반 시설과 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고 군사비 지출로 동로마제국의 국고를 텅 비게 했다. 서쪽에서 벌인 고트족과의 전쟁은 대규모로 죽음과 파괴를 퍼트렸다. 유스티니아누스가 서부 전쟁을 지원하고 또 군대가 출동하여 본국 방어가 허술한 동로마제국을 메소포타미아의 사산 왕조가 공격해 오지 못하도록 뇌물을 주려고 이미 과부하인 주민들에게서 세금을 더 짜내면서, 동로마도 큰 피해를 입었다. 세금 부담은 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들었고 농촌 지역에서 도적 떼들이 들끓는 요인이 되었다. 가난과 도적 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농촌의 많은 사람들이 수도로 몰려들었다.

- 10장 야만족의 이동과 제국의 운명 3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