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
이 글은 박 플랑크의 글 입니다. ......2006. 6.8
잠시 옮겨 봅니다.
내소사 겨울 저녁
오박사가 대우르망을 운전하며 내소사에 도착한 것은 1988년2월 초순 어느겨울 저녁 이었다.
화순 운주사에서 오전 내내 이른바 천불천탑의 고졸한 미소를 참배하고 곧장 서해안을 따라서 내소사에 도착 하였다. 내소사 대웅전 앞 마당에서 고독 한 그루 겨울 저녁에 적막해 보였다.
아무도 없었다. 겨울 저녁 내소사느 선정속에서, 쩡쩡이 침묵을 우려내고 있었다. 허전하고 배고픈 몸 천천히 이끌고 내소사 저녁 어스름 속으로 한발 한발 조심히 옮겨 다녔다. 병풍처럼 절 뒤편을 둘러싼 산은 화강암 밝은 흰색이 서글피도 찬연 하였다.
대웅전은 고요하고 단아 했다. 단청없는 맨 얼굴의 대웅전이 아무도 없는 마당을 마주하며, 없는듯 그곳에 정좌 했다.오래된 범종이 조그마한 종각에 편히 있고, 적당한 높이의 석탑은 대웅전 마당에서 홀로 쉬고 있었다. 모든 물물사이 손에 잡힐 것 같은 고요가 머물고 산과 절과 겨울이 만나서 시간 저편으로 희미하게 사라졌다.
'완벽한' 혹은 '흠없는' 이란 단어가 온몸에 가득 했으나 표현되는순간 이저녁 공기 속으로 모두가 동참하는 선정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것 같았다. 완벽한 아름다움은 지상의 것이 아니다. 지상의 존재는 적멸의 고요함에 무한히 접근 할뿐, 그곳에 도달하지 않는다.
만나지 않으나 무한히 가까워지는것 그것은 지상의 서글픈 아름다움이다. 그 겨울 저녁 변산반도의 한점 내소사는 지상의 존재가 아니었다. 내소사는 잠시 존재 했다가 어스름 속으로 사라진 재현되지 않을 적멸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제 어린시절 기억속의 내소사는 두려움과 처절함과 괴기함이 서린 곳으로 남아 있습니다.
내소사입구의 숲길이 주는 청량감과 아담한 규모의 사찰이 주는 외양적인 소박함과는 달리 무서운 전설이 구전되어 어린시절 제 가슴을 졸이게 하던 곳입니다. 물론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내소사는 말 그대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의 내방하였던 곳이란 의미에서 내소사라 칭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나당연합군에 멸망한 백제의 백성들이 통한의 눈물을 뿌리며 소정방군대의 학살을 피해 숨어들다가 내소사의 직소폭포에 뛰어들어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가 구전되어옵니다.
직소폭포는 더위를 피해 물놀이를 하다가 매년 몇사람씩 목숨을 잃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과거에 자살한 원혼들이 떠돌며 해코지를 한다며 조심하라고 겁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고등학교시절에 겁이 없었던 저는 진짜로 죽어서 찾지못한 시신이 있는지 직소폭포바닥을 잠수하여 확인해 보았습니다. 들어가보니 와류에 휩쓸리면 우묵하게 파인 바위턱때문에 빠져나오기가 힘들게 되어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와류에 휩쓸려 우묵하게 파인 바위턱에 걸려 빠져나오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마치 귀신이 못나가게 붙드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ㅎㅎㅎ
전설을 눈과 몸으로 확인했습니다.
내소사에 가면 어린시절에 가졌던 정서때문에 아름다움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는데,
선정에 가득찬 완벽한 아름다움이 있다니 적멸의 순간의 그 아름다움을 찾아 다시 가봐야겠습니다.
"적멸"이란 단어가 이런 느낌이었군요!
오대산에 가면 적멸보궁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10여년전에 그냥 아무런 느낌없이 스쳐지났는데, 적멸이란 단어를 느끼러 다시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