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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행기다. 첫 글 ‘사진 속 여자’를 한 편의 잘 짜인 소설처럼 읽었다. 우연히 만난 볼 품 없는 뚱뚱한 가정부가 옛날 이름을 날리던 여배우라니. 다시 앞면을 들춰보았다. 미국 여행기가 맞다.

 

사진가이자 여행 작가인 후지와라 신야가 ‘모터 홈’(주거 가능한 자동차)을 타고 7개월 미국을 여행하면서 쓴 여행기다. 그 다음 편인 ‘알파카를 놓아 줘’도 멋진 단편소설 같다. 이거 정말 미국 여행기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고 책을 구입했다. 소장하고 싶은 느낌이 드는 에피소드와 문장이 눈에 꽂혀들었다. 후지와라가 미국을 보면서 느끼는 감상에는 성찰이 묻어 있다. 그는 미국을 여행하면서 그 나라에 배인 정체성과 역사를 들춰가면서 글을 쓴다. 그는 미국의 ‘스타’와 ‘패밀리’가 미국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분석한다. 로키산맥과 대평원을 넘어가면서 미국의 자연을 날카롭게 관찰한다. 이런 식이다.

 

“ 길은 지평선을 향해 일직선으로 하강했다.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보이지 않는다. 길은 재의 바다에 가라앉고 있었다 ……. 조금 더 달리는데 나른함이 엄습해왔다. 차가 앞으로 가고 있다는 실감이 없다. 엑셀을 밟는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 이토록 단조로운 자연 속에서 살아가기에는 인간의 뇌세포는 산토끼에 비해 지나치게 농밀하다 ……. 여전히 현실감이 없다. 차를 달리면서 조금씩 공상의 영역으로 진입하기 시작한다. 이 재의 바다 어딘가에 4차원의 경계가 각인되어 있는 것처럼.

 

공상을 좋아하는 미국인의 기질, 그리고 허황된 꿈에 열광하는 기질은 대륙의 중추에 이처럼 블랙홀 같은 거대한 공백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 아닐까 …….”

 

그는 미국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현상에 과거의 풍부한 경험을 채색해서 내놓는다. 예를 들면 이렇다. 후지와라는 1969년 여름에 이란의 벽촌을 방랑하고 있었다. 그는 이란 시골의 14인치 흑백텔레비전에서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을 본다. 이란 사람들은 우주비행사가 이란의 사막처럼 생긴 달 표면에 사뿐히 날아오르는 장면을 보고 더욱 경직된다. 침묵이 뒤덮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절규가 사람들에게서 터져 나온다. 기쁨의 표현이 아닌 분노하는 소리였다.

 

뒷날 후지와라는 그 이란어가 “아메리카는 악마다.”라고 확인한다. 왜 그들은 달에 착륙한 미국인과 미국을 악마로 불렀을까? 그로부터 10년 후에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나 호메이니가 집권한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미키마우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를 회상하며, 맥도널드가 왜 미국적인 음식점인지 고찰하고, 맥도날드에서 만난 인종차별을 비판한다. 미국은 개별국가의 복사품이며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사는 나라다. 그것이 20세기 미국의 고유한 현상을 만들어낸다. 후지와라는 1987년, 미국이 강성할 때 미국을 여행하면서 그 문명을 사색한다.

 

역자가 후기에서 미국을 추종한 일본에 대해 밝혔듯이 한국인은 불가항력적인 힘과 강요로 ‘아메리카’적인 가치관으로 삶의 형태를 가꿔왔다. 후지와라도 이렇게 마지막을 맺는다. “7개월에 걸친 여행에서 내가 목격한 것은 결국 미국이라는 낯선 나라가 아니었다. 내 안의 또 다른 뿌리를 그곳에서 확인했다.”

 

한국인은 더욱 더, 미국인은? 미국이라는 나라는? 하며 거듭 물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의 한국을 찍어낸 오리지널이 그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