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얼마전 집사람의 문자 메시지
오늘 밤 건축학개론 보자고한다 ..
잠시 뭔 의민지 헤아리다가 답장을 썻다 우리집에 건축학개론 책 없는데..
영화제목 이란다. 이럴 땐 만사의 일을 접고 하늘이 무너질 지라고 콜하는게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지름길임을 몸으로 체득한 까닭에 그러마하고 나섰다. 집사람과 난 문화적 취향에 공통점이 없기에 최소한 합의가 영화는 가급적 같이보고 가끔씩 공연가는 정도이다. 취향을 대강 알기에 그런 영화이려니 했다. 아니라 다를까 그런 영화이다.줄거리가 첫 사랑이다.
졸지않고 끝까지 잘 봤다.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감정이 몰입되었다. 이런 경우의 몰입은 동감과 같다.
그러게 나에게도 저런 경험이 있었지 .헤어짐의 고통이 있었지. 정말로 힘들었고 삶을 놓아버리고 싶기도 했었지. 전달하려는 주제가 중요한 것도 있지만 표현도 중요하다. 심도있는 연출력과 스토리 그리고 연기가 같이 융해되어야 주제에 대한 의미도 부각된다.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잘 만든 영화이다.
멜로 영화의 반열로 세운다면 첨밀밀, 러브레터, 만추와 견주어도 좋겠다 생각되었다.
미국의 탐사에서 여러번 감정의 극한을 경험하였다. 그건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공통의 감정이었다. 내가 아름답다고 느낀 상황은 남들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은 매우 복잡한 감정의 동물이다.
공포,분노,슬픔,행복,조울,좋음,성욕,애착,상사,싫음,혐오,역겨움,증오같은 감정의 표현은 나라마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을지언정 감정의 공통분모다. 각각의 표현도 매우 다양하다.
인간은 왜 이렇게 복잡한 감정을 가졌을까요? 운전을 하면서 박사님께 물었다.
그것이 인간의 진화사에 생존의 조건이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소유한 감정은 서로의 숫가락이 담기는 공통의 그릇에서 비롯되었다.의미의 장이었다.의미는 언어로 표현되고 소통과 교감의 도구가 되었다.
인간까지 가지 않더라도 포유류와 조류의 많은 종은 특정 배우자를 선호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에게 에너지를 집중한다. 이를 동물행동학에서 구애끌림이라 정의한다. 구애끌림은 유혹과 같은 의미로 성선택의 작용기제이다. 공작의 꼬리깃털은 생존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지만 이성이 좋아하는 외모로 진화하였다.
사람의 경우엔 특정인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핑크렌즈의 기제가 작동한다고 한다. 좋은 점은 과대평가하고 허물은 가려지는 소위 꽁깍지가 씌어지는 것이다.
이와같은 작용을 신경해부학의 관점으로 접근하면 사랑에 빠질 때 안쪽 뇌섬,앞 띠이랑, 해마,의지핵 등과 같은 선조영역이 활성화 된다한다. 그런 감정의 영역은 마냥 동물인 셈이다.
이런 관점으로 감정 현상을 환원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과학하는 사람의 기본이지만 때론 이런 해석으로 인간을 정의할 때 불편함이 돋기도 한다.나라는 존재가 그런거야?
한번씩 그런 해석을 접고 그냥 감정 자체에 몰입하고 싶은 경우도 있다. 슬프면 슬픈대로 기쁨은 기쁜대로 감정의 바다에 헤엄치고 싶기도 하다. 적어도 영화라는 허상의 이미지 일지언정. 영화를 보는 내내 헤어진 옛사랑이 머리에서가 아니라 심장에서 솓아오른다 . 이 영화는 그래서 집사람과 볼 영화는 아니다. 찔끔거리는 눈물을 죄지은마냥 들킬까 조바심을 내야하니까..
눈치로 다 알 수 있습니다. 꼭 명시적인 글과 언어만으로 소통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집 개와도 잘 소통합니다.
밥을 먹을 때마다 식사준비가 완료되면 개가 저에게 와서 짖고 날뜁니다.
저에게 밥먹으라는 신호죠.
일부러 못들은 척 하면 제 종아리를 긁으며 빨리 와라고 발짓을 합니다.
제가 깜박 잊고 개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고 자리에 앉으면 난리가 납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에 어쩔 수 없이 먹을 것을 주어야 제가 식사를 편안히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오랜 시공을 함께하면 살아있는 생명과는 말 안해도 모든 소통을 할 수 있어요.
이 영화가 많이 회자되는 걸 보니 뭔가 가슴을 건드리는 구석이 있나봅니다.
그리고 미국가셔서 촬영하신 영상들은 캠코더 내장메모리에 모두 잘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
제목이 더 영화 같습니다. 몸살 기운에 끙끙거리던 시간에 눈이나 호강하자하고 본 영화가 '만추'입니다.
보고 났더니 봄보다 먼저 가을이 도래하고 있습니다.
비일상적 생활에 도취라고 누군가 표현했습니다. 내가 사랑하고 헤어지고 슬퍼하는 것도 아닌데 영화 한 편에
그 감정 송두리채 휩쓸립니다. 이런 것을 가상현실이 아니라 실효현실이라고 하나 봅니다.
실제 일어난 것은 아닌데도 그것이 내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 '실효현실'입니다.
무언가를 아는 순간 자신이 사실은 몰랐구나라고 하는 현상을 동시에 겪습니다. 그래서 아는 순간 어리석어지고
모름을 모르는 순간 아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건 아는 것일까요. 모르는 것일까요.
이런 저런 생각이 감기 기운과 함께 맴돌며 본 영화 '만추'에 감동이 식기전에 건축학개론을 보고싶게 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나바호의 모닥불을 떠오르게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옛사랑이 심장에서 솟아 오른다니 참 좋은 영화입니다.
심장에도 원초적인 신경세포가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습니다.
제 경우에 이 영화를 보면서 누가 떠오를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저는 제 아내가 떠오를 것 같은데,
아내가 다른 사람을 떠올리며 눈물흘리면 그 난처함을 어떻게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