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모처럼의 토요일, 어디 나가지도 않고 집에 있다가 저녁 즈음 되니 아버지께서 산에 가자고 하신다. 그러고보니 아버지와 단 둘이 산에 가본 적이 있었는가 떠올려보려고 했지만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만큼 오래된 일이거나 아니면 정말로 그랬던 일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운동은 줄넘기 대신에 걷기로 바꾸기로 하고 아버지와 함께 집을 나섰다.
아파트 후문으로 나와서 길만 건너면 산이 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바로 산이 있지만 나는 이 곳으로 와본 적이 없지만, 아버지는 이 길로 산책을 많이 다녀보신 것 같다. 산을 걸으면서 아버지께서 뭐 하나 물어보신다.
"활성산소는 왜 생기는거냐?"
아버지는 이전에도 건강에 관심이 많으신데 특히, 건강식품을 아주 좋아하셔서 흑마늘, 흑염소, 개소주 등을 종종 드시곤 한다. 내가 최근에 [몸이 젊어지는 기술 : 120세까지 젊게 사는 미토콘드리아 건강혁명] 이라는 책을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렸다. 예전에는 집에서만 주로 계시다가 그 책을 읽어서 그런지 요즘엔 자주 산책으로 걷기 운동을 하신다. 그렇게 책을 다 읽어보시고 활성산소가 무엇인지는 알겠는데 활성산소가 왜 생기는건지는 잊어버리신 듯 하다.
"활성산소는 호흡하는 사람은 누구나 생겨나지만 그걸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은 사람마다 다른 거에요.
운동하는 사람은 활성산소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좋아지고요."
조금 더 지나가니 내가 알던 익숙한 길이 드러난다. 내가 온 길과 내가 알던 길은 서로 이어져 있었다. 약숫터를 지나 운동기구들이 있는 쉼터에 다다랐다. 운동을 하시는 분들도 있고 공기 좋은 곳에서 수다 떨기 위해 나오신 아주머니 분들도 있었다. 그리고 정상에 다다랐다. 그래봐야 동네 뒷산이 얼마 높지는 않지만, 이 동네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산에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전에는 보지 못했던 전망대가 세워져 있었다. 팔각정 모양의 2층으로 올린 건물에는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어서 저 멀리 가게의 간판 글씨도 볼 수 있을 정도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이지."
마치 인생의 깨달음을 알려주시려는 듯 한 마디 하시고는 말 없이 내려가신다. 해가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여덟시가 넘으니 사방이 어둑어둑하다. 거의 다 내려오면 시골의 작은 마을 같은 동네에 오래된 손두부집을 지나가는데, 이 집은 내가 초등학교 때 소풍왔을 때에도 있었던 듯 하다. 그러고 보면 내가 이 동네에 이사와서 살게 된지 벌써 20년, 내 나이 스물 일곱이다.
그리고 두 세 걸음 앞서 가는 아버지의 등을 보며 생각했다. 아버지 나이 쉰 여섯이고 얼마 안 있으면 갑이 돌아온다.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돌아오는 길에는 거리에 파는 토마토를 한 바구니 사 가지고 들어온다.
"토마토에는 리코펜이 들어 있어서 항암효과가 있다고 해요.
운동도 많이 하시고 토마토도 많이 드셔서 오래 사세요."
공간이란 참 대단도 합니다. 오랜 시간이 변했는데도 기억속에 남아서
여러개의 상념을 섞이게 하니 말입니다.
오랫만에 산책하는 부자의 모습에
그 옛날 부자가 함께 걸었을 모습이 겹칩니다.
걸어온 길과 알고 있던 길이 서로 겹치고,
초등학교 때 보았던 순두부집을 스쳐지나가는 장면에
시간이란 늘 상념을 남겨 의미를 되새기는구나 하고 있습니다.
새로난 길과 기억속에 길이 겹치듯
새로운 삶과 기억속에 삶, 그 사이에 무엇이 차 있는걸까요.
이미지가 의미를 담아 향기 풍기고 있습니다.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저는 아버지와 저런 대화도 산책도 한번 해본적 없습니다.
부산놈이 돼서 그런지 제가 그런놈이라 그런지는 잘 모르겠네요.
글을 읽다 보니 날도 쇠약해가는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이번 여름엔 예정없이 고향에 한번 내려가야겠습니다.
양겸씨 덕분이네요. ^^
1박2일 아들과 아빠 여행
몇년전 마침 서로 시간이 나서 아들과 불연듯 1박2일 여행을 다녀왔다.
아들은 30대중반,아빠는 60중반. 태어나서 처음이다. 아들과 둘만이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보는 것이..
갑작스런 아빠제의에 아들은 놀라며,"예?? 어디를 왜 가는데요? 예약을 할가요?"
그냥 가보자.이유는 무슨이유,그냥 떠나는 거야. 아빠도 어디 갈지 몰라.
아무데나 들어가 자면 되지,예약 필요없다.
더 놀란 사람은 졸고있던 엄마다. 뭐라고요?? 남자 둘이 무작정 정처없이 나간다고요?
차를 탔다. 아들이 묻는다. 어데로 갈가요? 어디 멀찍이 해안가로 가보자.
태안반도 해변을 걷고 수목원의 소나무숲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때로는 침묵속에서 그간 하고싶었던 얘기를 무언으로 전했다.
저녁에는 조그만 어촌에서 회를 안주로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얼큰히 취하도록 마시며,
가족이야기,아들과 아빠의 삶,세상이야기하느라 밤이 깊은데,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나와 걸었다.
민박집 작은 방에 둘이 누었다. 아들과 같이 옆에서 잔게 언제였던가..나보다 아들의
감회가 파도소리와 함께 밀려 왔다.
왜 나는 아들과 마음을 터놓고 진심으로 대화하지 못하고,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사랑의 눈길로 따듯하게 안아주지 못하는가?..
저녁 늦게 집에 둘이 웃으며 들어오자,엄마 하는말 "둘이 싸우고 따로 들어올줄 알았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두런 두런 얘기하면서 산책하는 모습
가장 부러운 모습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특히 가족이 붕괴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이제는 이런 모습들이 평범한 장면이 아닌것이 되어버린것 같아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