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
박자세 모임이 있는 날. 행선이 겹치는 솔다렐라와 함께 같이 오는 일이 많다.
언젠가 그가 이런 이야길 한다. 박자세에 오고 이후 세상일이 시시해졌다.
속으로 웃는다. 당신도 본격적으로 뭔가를 만났군!
내가 하는 일이 목적을 갖는 만남이 잣다. 공동체, 대안교육, 인간의 성숙, 우리가 사는 동네가 보다 인간적으로 형성되기 위한 노력 등등의 주제들이다. 만나는 사람 거의가 진지하고 사심들이 없다. 공동의 선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특성이다.
이런 만남이 관습처럼 형성이 된 이후, 패턴이 다른 만남은 웬지 거북살스럽다. 오랫만에 동창회를 가더라도 일상의 대화 예를 들면 아파트 평수를 넓혀다든지 승진을 했다든지 새로 차를 구입했거나 골프의 핸디가 줄었다든지 하는 말들이다. 속물적인 자본주의 특성이 사람들의 경쟁심리를 부축이는 경우는 다반사다. 흔히 tv에서 접하는 광고도 그렇다. "오랫만에 친구를 만났다. 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가 나를 말해줬다" 이 같은 표현들이 난무하는 세상에 살고있어도 대다수가 아무런 거부감이 없는 모양이다. 이런 유형의 광고 원조는 IMF이후 김정은이 나와 "부자되세요" 한 이후 부터이지 싶다. 잘산다는 말의 의미를 돈으로 함축시킨 꼴이다.
인생에서 성공의 잣대로 삼는 기준이 그렇다. 서로를 비교해가며 안도감을 얻기도 하고 열패감에 쌓이기도 한다. 누가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하면 축하의 표현속에 배아품이 또아리 친다.
그런데 재밌는 현상이 있다. 입시철 이후의 송년 모임에서 종종 접하는 현상인데 동창들간의 대화의 밀도를 좌우지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자녀문제다. 부모가 아무리 똑똑하여 소위 SKY를 나와 좋은 직장에서 이사의 반열에 올랐다 하여도 자녀가 그런 대열에서 줄서지 못한 경우 자기보다 무엇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동챵놈의 아들이 SKY에 붙었다는 말 한마디에 바로 기가 죽는다. 자식농사에서 승패가 갈리는 것이다. 단지 남자들만 그렇지는 않을듯 싶다.
우리의 일상이 그렇다는 얘기다.
요새 유행하는 말중에 이런 사람들의 기준으로 자녀를 제대로 건사키 위한 세가지 조건이 있다 한다.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아빠가 간섭하는 순간 모든것이 어그러진다는 논리에는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솔다렐라가 또 말한다. 이런 자신이 외토리같다 한다. 공부에 몰입하는 사람이 오히려 비정상에 속한다. 세상사 뭐 특별한게 있다고 그 난리냐 그런 뜻이려니 여견다. 그 말에 속으로 답한다. 그 심정도 이해돼..
바로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면 안다. 진지한 만남이든, 공부로의 몰입이든, 선한 가치의 추구든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를. 아마도 천명중에 한명이 될까말까다. 상식이 정상이 아닌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이런 일상에서 고독하고도 진지한 만남이 박자세이다. 선사들이 위대한 자각을 우리식대로 구현하고 있음이다. "생명현상의 온전한 이해는 그 어떤 구도자의 깨달음보다 위대하다"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깨달음을 세상에 나누고자는 일이 박자세의 자연과학문화운동이다.
세상일이 시시해질 때 우리는 잘 살고 있음이다. 자위가 아니라 믿음이다. 이건 신념기억으로 형성되어야 마땅하다.
건대에서 차를타고 오면 30분, 지하철을 타면 한시간 정도 시간에 강의의 소감을 말하며, 삶을 ,고민을 이야기하며 제법 많은 대화가 오간다. 굳이 말이 필요 없을 땐 묵묵히 대화한다. 만남은 얼마되지 않아지만 긴 세월을 함께한 도반같다.
동향 친구들의 가족동반모임이 일년에 몇 번 있습니다.
서울과 광주 쪽에 분산돼 있다 보니 중간 쯤인 공주에서 모임을 갖곤합니다.
늦은 오후에 만나 함께 운동을 하고 술 한 잔 나누며 늦게까지 이야기하거나 놀다가 다음 날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별로 재미없어졌습니다.
작년 말에 친구들이 니가 회장을 맡아 모임을 꾸려봐라고 했는데...
올해 만난 적이 없습니다.^^ 전화도 안 하게 됩니다.
친구들이 좋아서 아내가 시간이 안 된다기에 돌도 안 지난 아기만 차에 태우고 데려간 적도 있었는데..
아마 지난 번 제주도 학습탐사에 다녀오고 나서부터 인 것 같습니다.
그처럼 밀도 있고 알찬 여행을 언제 해 보았던가
가끔 회사나 거래처 사람들과의 회식이나 술자리도 그냥 심드렁합니다.
빨리 끝나 집으로 갔으면 좋으련만..
왜 이리도 집에 갈 생각들은 안 하는 건지..
주변을 돌아보면 자연과학을 전공한 이조차도 자연과학에 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물론 일상에 일에 파묻혀서 잠시 잊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지난 지리산 둘레길 탐사 때 박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명이나 두 명이 어느 곳을 쳐다봐도 사람들은 그냥 지나쳐 간다.
그러나 세 번째 사람이 그 곳을 보면 다른 사람들도 그 곳을 보게 된다.
둘레길도 처음엔 그랬다. 사람이 한 둘 늘어나다보니 길이 되었다.
문화의 트렌드는 그렇게 생기는 것이라고.
박자세가 자연과학의 트렌드를 주도할 날을 기대합니다.
무수한 만남을 갖고, 무수한 이별을 하고, 무수한 기억이 남는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기억의 조각중에 아름다운 기억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힘들고 괴롭던 기억이 더 많이 나를 옥죄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힘들고 괴롭던 기억을 아름답다 표현하고 있는 내 모습에 흠찟 놀라게 된다.
내가 경험한 기억이 바뀐다. 모든 기억은 지금에 존재하는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좋은 기억이 생긴다.
좋은 친구를 만나면, 좋은 추억이 생긴다.
좋은 공부를 만나면, 힘들고 괴롭던 기억도 추억도 감정을 내려놓고 바라보게 된다.
좋은 공부를 하여 생긴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 내 속에 품고 있던 맹수같은 질문이 길들여짐을
알게 된다.
그런 사람 곁에는 그런 사람이 생기는 법이다. 좋은 만남, 그거 좋은거다.
제 주위를 둘러보아도 자연과학을 좋아할 만한 사람이 드뭅니다. 그런 사람이 둘 있기는 하지만, 자기 일에 바빠서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일이 있음에도 이렇게 박자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지요. 새삼스레 박자세의 인연이 소중하다는 걸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