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쌀 한 줌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 이걸로 밥하고 나면 내일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남편은 목포로 전근하여 이사를 한다고 하고
두달 전에 낳은 셋째는
젖달라고 칭얼거린다.
어떻게 해야 할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남은건 쌀 한 줌이 아니라
그 옛날 할머니가 품에 안고 밥 먹여 주시던
모습이 생생이 떠오른다.
내 새끼 보듬어 따뜻한 한 끼 나도
주고 싶은 맘뿐이다.
내일 이사해야 하는데
남편은 직장 때문에 목포에 가서 없고
집에 쌀독 앞에
주저 앉아 있으니
세상이 깜깜하다
빛은 어디에도 없고
그 어둠속에 울리는 아이의 칭얼거리는
울음소리는
나락에 떨어트리는 듯 하다
가슴이 가슴이
옥죄어저 온다
....................................................................
둘째 녀석을 낳고 아버지는 목포로 발령이 나서
가고 없는데
이사를 가야했다는 어머니의
옛날 얘기다.
어머니는 이 얘기를
푸짐히 쌓여진 음식을 두고
이야기 하면서 눈물이 눈에 한 가득
품어 내고 있으셨다.
내 가족사는 꾹꾹 담아
더 이상 쌀 한줌에
눈물 고이지 않게 하겠다던
어느 아낙에 주먹 움켜짐에
역사다.
그 아낙 우리 어머니다.
그 시대의 울 어머니들~!
강하고, 지혜롭고, 헌신적인
어머니의 그 때의 나이가 되어
나를 보며
한없이 한없이 고개가 숙여지고
그 끝없는 사량에 눈물 한바가지 흘리고
그 지혜 닮아보려고
그리움 가득 가득 채웁니다.
먹먹해 지네요, 가슴이....
기억이 납니다
내가 어린시절
어머니는
힘들게 사셨지만
고생이라 생각을 안하셨지요
다들 그리 살았으니까요
기억이 납니다
1960년대까지도
어머니들에겐 힘든 시절이었지요
물론 아버지들도
기억이 납니다
10살이 넘은 초등학교시절 이었습니다
한 반에 예닐곱은 625전쟁 후라 고아였습니다
그 아이들이 간간히 입양을 가게되면
교단 앞으로 나와 인사를 합니다
고아가 아닌 아이들은
그 아이들을 매우 부러워 했습니다
우리나라 와는 다르게
미국은 엄청 잘 먹고 잘 사는 나라였거든요
'왜 나는 고아가 안 되었을까'
슬픈 이야기지요
글을 보는 순간 우리 친정 어머니 이야기 같습니다.
어쩜 이렇게 똑 같을수가, 그 시절 그 눈물들이 모여 지금 여기까지 왔군요.
또 옛 이야기하며 지나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