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글쓰기는 바늘 끝으로 모래사장의 모래를 한 알씩 파내서 우물을 만드는 일”
이라고 어느 외국 작가가 이야기 했답니다.
또 어느 노벨상 수상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을 쓰려 방안에 들어가, 전화선도 뽑고, 조용히 앉아 한나절을 꼬박 글쓰기에만 몰입해도,
어떤 날은 노트 반 장을 쓰지 못한다.”
우리가 잘 아는 조정래 작가는,
“글을 쓴다는 것은 피를 말리고 온몸을 쥐어짜는 듯 한 고통의 연속이다.”
박완서 작가도,
“소설 쓴 지 삼십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힘들다.” 라고 호소했다더군요.
글쓰기는 이렇게 극한으로 몰고 가는 작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과연 글쓰기는 단지 괴롭고 힘들기만 한 작업일까요?
책을 읽다가 공감이 가는 문구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글쓰기의 괴로움이 단지 괴로움으로만 끝이 날까? 창조의 즐거움이란 없는 것일까?
한 편의 시가 명예와 부로 곧바로 치환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을 공부한 자에게는 새로운
세상에서 사는 즐거움이 보상으로 따라온다.
한 편의 시에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생각해보지도 못하고, 꿈꾸지도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분명히 있다. 한 편의 감동적인 시를 읽었을 때 그 설렘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있다. 마음에 드는 한 편의 시를 썼을 때 땅을 박차고 솟구치는 자아의
충만감을 느낄 수도 있다.
- 안도현,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중에서 -
아, 저도 만족할 만한 글을 쓸 날이 오길 손꼽아, 아니 노트북 자판을 열심히 두드리며 기다려야겠습니다.
삶은 순간의 연속입니다.
평범한 삶의 조각들이 작가의 손을 빌려 감동적인 글로 변화됩니다.
여기서 작가란 우리 모두를 말합니다. 글을 쓰고 있는 모두가 작가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떻게,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각 조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삶의 흔적은 다 남게 되어있습니다. 그 흔적을 글로 남기면 어떨까요.
왜냐하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를 명심하는 겁니다. 그 인식이야말로 당신의
인생을 창의적이고, 열정적으로 만들어줄 겁니다.”
알랭 드 보통의 말로 그 이유를 대신합니다.
조화로운 삶님!
글쓰기 훈련을 하시면서 달라진 모습이라하면 생활 속에서 글감을 찾아내려는 모습일 것 같습니다.
어떤 글을 쓸까. 자주 되내이면 쉽게 지나치는 주위를 남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 노력합니다.
독특한 착상이라 느껴지면 책을 찾아보며 이미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이 있나 찾아보고 만나 공감하고.
그런 만남이 여럿이 되면 내 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구별되는 멋진 생각이 떠오릅니다. 기쁜 순간.
이런 생각을 글로 옮겨 사람들과 나누는 일은 기쁘겠어요.
그 글을 읽고 나에게 찾아온 독자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생각하면 설레죠.
이미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도 좋지만 내 글 덕분에 생각을 키운 사람을 만나도 좋지요.
글쓰기에 고통이 따른다고 하지만 글쓰기로만 가능한 새로운 만남을 생각하면 할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