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훈은 '의도된 훈련'의 약자입니다. 김양겸 회원의 닉네임이지요. 그러니까 그걸로 아들이름을 지은거구요. 2008년 말쯤인가 수학아카데미한다고 설왕설래할 즈음에 양겸씨를 보았던 것 같네요. 제대하자마자 머리가 자라기도 전에 왠 수학을 공부하겠다고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친구는 저 나이에 연애도 안하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지요. 근데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었네요. 역시.. 영맨은 연애가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ㅋ 그때 잠깐 소개했던 '선배'가 지금 도훈이 엄마니까요.


그 이후로도 양겸씨는 박자세맨으로 맹활약을 했습니다. 거의 모든프로그램에서 항상 볼수 있는 사람이었죠. 몽골책과 유니버설 랭귀지를 만든다고 같이 샌 밤이 내 사지말단의 숫자를 넘을 것이며, 흘린땀냄새땜에 묘한 '미안한 고통'을 느낀적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더부룩한 머리, 약간 구부정하면서 큰키에 어울리지 않는 종종걸음을 치던 모습들이 아직 선명합니다. 그의 자상한 친절들을 기억하고 계신 분들도 많을 거구요.


그런 그가 청운의 꿈을 안고 박자세에 정식으로 입사를 했고 그것은 누가봐도 아주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과정이었죠. 적어도 제가 보기엔 그랬습니다. 양겸씨도 박자세도 힘찬 미래를 신나게 그릴 수 있었죠. 그런데 어디 맘먹은대로 되는 인생과 과업이 있던가요? 우리 도훈이의 등장으로 모든 판이 다시 짜이게 된거죠^^


우주는 말할 것도 없고 생물(무생물 포함)의 진화와 인간의 역사도 의도와 목적이 원래 없는건데요 뭐~ 어쨋든 서호주탐사 내내 먼산을 응시하던 그는 결국 대한민국의 남자와 아버지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한 반년 정도 같이 일했고 같이 일할 거라 굳게 믿었던 저는 거의 일주일을 앓아누워있다 털고 일어났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정말 잘 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양겸씨는 박자세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해주었고 또 그렇게 착하고 성실한 품성을 가진 사람이었으니까요. 박사님은 유일하게 주례를 서 주셨죠.


오늘 우연히 그의 소식을 페이스북에서 봤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삼성전자에 취직했다는. 


당장 전화해봤지요. 그 동안 궁금해도 차마 전화 못하고 기다린 시간이 얼만데요 ㅋ. 도훈이 엄마 하는 말, 올 3월에 연구직으로 입사를 했다고. 그런데 자기들 입장에서는 또 너무 미안해서 연락을 못했다는 거에요. 아이구~~ 그 두사람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어찌됐건 이 스토리는 해피엔딩입니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좋은 곳에 떡하니 들어갔는데 그냥 맨입으로 넘길 수 없지요. 복덩이 우리 도훈이는 벌써 22개월이나 됐네요. 아빠를 닮았다니 머리가 크겠군요. 조만간 도훈이도 보고 떡도 먹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축하해요 도훈이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