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샘 박자세 해외학습탐사 8월2일 ~ 8월 11일 몽골진행됩니다. 가실 수 있는지요?'  5월 말 문자로 연락이 왔다. 일단 남편하고도 이야기해야 하니, 하루 고민해보고 연락을 드리기로 했다. 하지만 30분 후, 아들과 함께 참여하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뭐에 하나 꽂히면, 앞 뒤 안가리고 저지르고 보는 성격! 이게 바로 나다.


몽골학습탐사를 회사에 있는 창의연수(한 달간 연수하는 제도)로 신청하려다가 사업책임자와의 마찰로 포기하고, 휴가를 7일 내서 가기로 했다. 덕분에 탐사까지 남은 2달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고 더운줄도 모르고 일을 열.심.히. 해야했다. 하지만, 몽골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일이 더 재미 있었으니 밑질 것도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왜 하필 몽골이냐며, 씻지도 못하고 버스만 타고 다니고, 화장실도 없다는데, 거기에서 뭐할꺼냐고 했다. 난 학.습.탐.사 니 열흘 동안 공부만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며, 다녀와서 배운걸 알려주겠다고 큰소리쳤다. 


처음 3일간은 또하나의 나의 캐릭터! 총무 근성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고, 학습 탐사 진행을 도와 주고 동영상 찍느라 제대로 학습에 집중도 못했다. 게다가 내 짐도 잘 못챙길 만큼 짬을 내지 못하고 바빴다.  그래서 애꿎은 조원들이 내 짐을 이리저리 나르고 챙겨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3일이 지나니 안해보던 야영에 밤잠도 설치고, 몸도 피곤하여 입술이 마르기 시작했다. '읔 이건 내가 피로하면 보이는 첫 증세... 여기서 더 나가면 코피 터지고, 얼굴에 뽀루지 올라오는데...'  결국 내 마음에는 3일 째가 마무리 될 때 쯤에는 이제 충분하다. 그만 돌아가도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4일 째, 나에게 새로운 전환기가 나타났다. 


지의류가 노랗게 핀 산들을 병풍삼아  한참을 초원에 눈길을 두다가 학습탐사 책 읽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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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탐사 책 328페이지


이란 북부 비스탐 출신의 수피 아부 야지드 (Abu Yazid)의 일화


그의 언행은 이해할 수 없는 비유와 기행으로 가득한데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서 '신과의 합일'을 설명하고 있다. "부정(否定)은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이다. 나는 사흘간 부정을 했고 나흘 만에 그것을 끝내버렸다. 첫날 나는 이 세상을 버렸고, 둘째 날 나는 저 세상을 버렸으며, 세째 날 나는 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넷째 날 내 안에는 신을 제외한 어떠한 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나는 너무나 심한 열망 속에 쉽싸이게 되었는데 그 때 나를 향한 목소리를 들었다. '오, 아부 야지드여! 너는 나하고만 홀로 있는 것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 그래서 나는 말했다. '그것이야말로 제가 바라는 것입니다.' 그 랬더니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네가 나를 찾았구나! 네가 나를 찾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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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구를 읽고, 버스 창문 밖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 여느 풍경과 같은 몽골의 노년기 산이 새롭게 다가 왔다.  가슴이 뭉클하니, 눈물이 찔끔.  이건 뭐지??  느릿하게 지나가는 풍경처럼, 느릿하게 내 마음을 헤집어 보았다.  말로는 형상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대신,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나의 열망과 몽골에 오기전에 격은 사람들과의 갈등, 나를 찾기 위한 일련의 노력들, 그리고 이런 모든 것과 떨어져 있는 몽골의 초원,  한꺼번에 떠올랐다.  내가 하고 싶은것을 즐겁게 하고 있을 때, 그러한 '고독'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구나. 그게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미쳤다. 


몽골학습탐사 전에 중세 미술사 책을 볼 일이 있었는데, 중세 시대는 우리가 생각하는만큼의 암울한 시기가 아니었단다. 1000년을 기점으로 최후의 심판을 기대했다가 아무 일 없이 지나가자 중세 유럽 사람들은 심판을 유예 받았다고 생각하고, 죄를 씻기위해 순례길에 오르기 시작했다. 예루살렘이 너무 멀었기 때문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인들은 야고보 성인의 성물이 있는 산티아고로 순례길을 개척하는데, 이 길을 따라 수도원과 성당이 만들어지고, 마을이 형성되어 지금까지도 산티아고 가는 길은 종교를 떠나 사람들이 꼭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 되었다.  설명이 길었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배경으로 만든  '나의 산티아고' 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신을 믿지 않지만, 문득 산티아고 순례길을 오른다.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은 '내 안의 신을 만나게' 되고 편안한 얼굴과 편안한 마음으로 순례를 마무리 한다. 


영화를 보고도 왜 영화의 주인공이 이런 마음의 변화를 느꼈는지 몰라서 2번이나 더 영화를 봤지만, 어떤 특별한 모티브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여러가지 사연을 격으면서, 고독한 환경에 놓이고, 마음을 내려 놓고 있다가, 뭉클한 감정과 함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기억난다. 


내가 몽골에서 느낀 감정이 이와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그리고, 그날 저녁 학습에서 박사님은 학습을 제대로 하려면 '고독'해야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맞아, 그거야' 했다. 


그 후 이틀은 워프를 한 것 같았다. 힘들지도 않고, 광물 도표와 분출암 도표를 외우고 나니, 학습탐사가 3일 밖에 남지 않았다. 이건 또 뭐지, 분명 몸은 화산지역, 아릭부케가 머물렀던 성, 흉노 장군 무덤, 몽골 게르 식구들의 방문 등 많은 것을 격었지만, 에피소드 일 뿐 내 마음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현실을 다시 느끼게 된 것은 천둥번개 소나기가 저녁에 덮쳤을 때다. 텐트에 물이 들어가면 안되니, 비옷을 입고 남자 대원들의 지도 하에 비설겆이를  하고, 흔들리는 텐트에서 하룻 밤을 자고 나니 야영과 학습탐사 대원, 그리고 사랑하는 내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후 3일은 마침 한 버스를 타게된 아들과 돌 주으러 다니고, 사진찍고 놀았다. 물론 학습을 계속 했지만, 역사는 역시 잘 외어지지가 않았다. -_-;;


이번 학습 탐사를 끝내면서 가장 좋은 것은 몽골의 산을 보면서 가슴 뭉클한 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은 오랫도록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