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下山)이 멀었다?

앞의 글에서 자꾸 '하산이 멀었다'고 했다. 무엇 때문인가?

하산할 수 없는 근거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는 거다.

 

결론부터 말하면, '관자재보살' 또는 '(관자재보살)'이 못 되어서다.

관자재보살이 못 되어서?

''이라는 건 어떤 특별한 능력인가?

 

내가 부러워하는 관자재보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1. 걸림이 없다는 것,

2. 걸림이 없어서 두려움도 없다는 것.

 

이렇게 걸림이 없어야 생멸의 세계인 저잣거리로 나아가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올린 다른 글에서 보셨겠지만,

각종 보는 것에 걸리고, 냄새에 걸리고, 남들 주장에도 걸리고.... 가지가지 걸리는 것이 많다. 이러면 이 모든 것들이 장애가 되어 곳곳에서 막히게 된다. 시비에도 빠지게 된다. , 제대로 활동하기 어렵다는 거다.

이것은, 생멸의 세계인 저잣거리로 나갈 준비가 덜 됐음이 아니고 달리 뭐겠는가. '저잣거리'는 요즘 말로 '사회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려(혹은 사귀며) 활동하는 것'으로 보면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러면, 관자재보살은 어떻게 '걸림이 없는' 능력을 갖추었을까?

이것은 '반야심경'을 보면 자세히 나와 있다.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말은 참 간단하다. 그런데 어렵다. 오온이 뭔데?

오온(五蘊)이란, 물질(),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 이 다섯 가지 쌓임이다.

이 다섯 가지가 공하다는 걸 뚫어보셨다는 것.

그래서 걸림이 없어지고, 두려움도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걸 단박에 뚫어서 문제가 해결 된 사람을 '상근기'라 하는 걸로 안다.

그렇더라도 다생에 익혀온 습기(習氣)를 제거하는 데에는 보림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육조 혜능선사도 그 드라마틱한 깨달음 이벤트가 있은 후 15년이나 은둔의 기간이 있었다. 이 우여곡절 15년을 '보림기간'이라 해야 할지 그 용어는 정확히 정의할 수 없으나, 그런 기간을 거친 후 정식으로 공개설법을 하신 걸로 법보단경은 전한다.(법보단경은 '육조단경'이라고도 함)

 

다시 관자재보살로 돌아가서, 반야심경을 살펴보자. 조견照見(비추어 보는 것)이 잘 안 될 뿐이지 어려운 말은 없다. 찬찬히 곱씹어보면 어떨까 한다. 우리말 반야심경을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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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다섯 가지 쌓임이 모두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을 건지느니라.

 

사리불이여,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며,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니,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도 또한 그러하니라.

 

사리불이여,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닿임과 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아주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이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그러므로 알아라.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한 주문이며, 가장 밝은 주문이며, 가장 높은 주문이며, 아무 것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말하노니 주문은 곧 이러하니라.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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