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강의시간에 말씀주셨던 스페인 이사벨 여왕과 이휘소 박사의 공통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사벨 여왕은 1492년 콜럼부스의 아메리카대륙 발견 대항해를 지원한 것으로 우리에게 친숙합니다.

이 이사벨여왕과 관련된 유명한 에피소드가 2개 있습니다.

결혼에 대한 이야기와 이사벨 칼라(Isabella)라고 명명된 색상의 유래에 대한 겁니다.

이사벨은 1469년 스페인 카스티야의 왕위에 오르기 전에 결혼했는데 상대자가 지금의 바르셀로나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왕 입니다.

이사벨이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페르난도에게 장문의 결혼 요청 편지를 써서 보내고 이를 본 페르난도도

즉시 말을 달려 이사벨에게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포르투갈 지역을 제외하고 카스티야-아라곤 왕국이라는 스페인 왕국이 생깁니다.

이사벨 페르난도 부부는 당시 스페인을 800년 가까이 점령하고 있던 이슬람 왕조를 몰아내는 레콩키스타 전쟁을

펼쳐 1492년 지금의 그라나다 지역만 남기고 영토를 회복합니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궁전만을 남겨두고 공성전이 펼쳐지는데 이때 8개월 동안 이사벨이 갑옷을 벗지않고

전투에 임했다고 합니다.

당시 나스르 왕국의 마지막 술탄이었던 보압딜왕이 시에라 네바다산맥을 넘어 북아프리카로 가면서

"영토를 빼앗기는 것보다 궁전을 떠나는게 슬프다"고 한없이 울고 갔다고 합니다.

8개월동안 갑옷을 벗지않고 전투에 임했을 만큼 목표를 세우면 끊임없이 집중하고 몰입해 해내고야마는

정신력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사벨칼라를 찾아보면 예상외로 그렇게 칙칙하지만은 않습니다.

'창백한 회색빛 노란색' '창백한 엷은 황갈색'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휘소 박사는 별명이 "썪은 빤스"였습니다.

과제를 한번 붙잡으면 속옷이 썪을 정도로 앉아서 꼼짝하지 않고 연구를 한다고해서 붙여진 별칭입니다.

이휘소 박사는 소립자 물리학자입니다. 핵물리학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김진명 작가가 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소설로 인해 우리나라 핵무기 개발에 관여했던 것으로 오해를 사고 있기도 합니다.

유족들이 명예훼손으로 소송까지 제기했는데 소설의 창작성이 인정되어 아직도 책이 팔리고 있기도 합니다.

소설속 창작이 fact를 왜곡시키는 희안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휘소 박사는 42살의 화려한 나이에 일리노이주 고속도로에서 건너편에서 달려오던 대형 트레일러가

타이어 펑크로 중앙분리대를 넘어오며 승용차를 덮쳐 타계하는 비운을 당했습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노벨물리학상 후보로 까지 거론되던 대단한 인물이셨는데 안타까운 일이었죠.

이휘소 박사의 '힉스입자에 미치는 강력의 영향'이라는 논문에서 힉스입자라는 용어를 처음 거론하기도 했습니다.

이사벨 여왕이나 이휘소 박사는 한번 몰입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될때까지 한다"는 겁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을 우리는 현실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바로 박자세를 이끄시는 분입니다.

지독하도록 자연과학을 파고 또 팝니다.

빅뱅을 파고 은하를 파고 지구를 파고 브레인을 파고 스파인을 파고 산소와 나트륨과 칼슘을 팝니다.

세일즈맨을 하셨어도 성공한 글로벌 기업가가 되셨을게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파니 말입니다.

더 이상 팔게 없을 것 같은데 끊임없이 팝니다.

자연과학에는 끝이 있다고 끝까지 팔 태세입니다.

그래서 이사벨, 이휘소, 박문호는 같은 급이 아닐까하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