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을을 보내줘야 할까 봅니다. 비바람에 하염없이 휘날리는 노오란 낙엽은 대지에 붙어서라도 흘러가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떠나지 않고 싶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무심한 바람은 점점 가슴을 시리게 합니다. 아니 시간의 계절은 이미 겨울의 문턱을 넘었음에도 짧은 가을의 시간을 붙잡고 싶은 인간의 마음만이 애절히 남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겨울의 시작이라는 입동(立冬)이 벌써 소리 소문 없이 지나갔습니다. 지나간 줄도 모르고 사는 게 인생이라고, 찬 계절은 이미 우리 곁을 지나 한참 뒤에 있었습니다. 계절은 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우리의 마음이 보내지 않았고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었을 뿐입니다.

바람에 구르는 나뭇잎 소리가 빗소리인 줄 알고 창문을 닫다가 내려다본 추상(秋狀)의 끝자락은 그저 화려한 수채화의 끝판왕입니다. "참 곱다" 꽃보다 아름답다는 단풍의 절경이 바람에 흩날립니다. 이보다 더한 선경이 없습니다.

선경이 선경임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다는 것은 마음씀입니다. 그렇게 느끼도록 발원을 해야 합니다. 온몸의 감각이 동원되고 느낌을 깨우고 지각을 하여 생각을 만들어냅니다. 보이지 않던 바깥세상의 다채로운 색상이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흑백의 단순한 수묵화에서 색깔이 하나씩 도드라지기 시작하여 점점 총천연색 유화로 바뀌게 됩니다.

똑같은 세상일 것 같았는데 이렇게 보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그림들을 만들어냅니다. 결국 바깥세상은 내가 보는 데로 보입니다. 보이는 데로 보는 게 아니고 보고 싶은데로 보입니다.

그래서 떠나보내야 하는 가을의 시간을 붙잡고자 하는 마음의 발로는 아쉬움입니다. 절정의 순간을 좀 더 지켜내고, 간직하고 싶은 욕심입니다. 이 시간을 지나고 나면 또다시 펼쳐질 흰 눈에 쌓인 절경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감히 이 풍경을 대신할 수 없을 것 같은 미련입니다. 하지만 다시 눈 덮인 수묵화를 만나면 흑백의 미를 알게 되는 묘미가 숨어 있습니다. 화려한 것이 좋고 단순한 것은 무미건조할 듯 하지만 그 단순함에 고즈넉한 여유가 숨어있음을 눈치챈다면 그 또한 화사함 못지않음에 미소 지을 겁니다.

끝자락에 놓인 가을을 읊은 시 한 수 소개드립니다. 당나라 장적(張籍)이라는 시인이 쓴 추사(秋思)입니다.

낙양성리견추풍(落陽城裏見秋風)  낙양성 안에 가을 바람 불어오는데

욕작가서의만중(欲作家書意萬重)  고향집에 편지를 쓰려하니 만 가지 생각이 드네

부공총총설부진(復恐悤悤說不盡)  바삐 쓰다 보니 못다 한 말 있을까 염려되어

행인임발우개봉(行人臨發又開封)  행인이 떠나려는데 다시 열어 읽어보네

제가 일요일마다 자연과학 공부하는 단체의 박문호 박사께서 강의 전에 가을을 노래한 시 중에 마지막 문구가 백미라며 소개해주셨습니다. 제목이 '가을 생각'이 아니면 그저 고향집에 문안 편지를 보내려고 하는 사람이 편지를 허겁지겁 쓰다 보니 할 말을 다 못 쓰고, 편지 받아갈 사람이 길을 떠나려 하는데 다시 불러 편지를 뜯어 읽는 간절함에 대한 시로 읽을 수 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의 아름다움은 바로 '은유'입니다. 시에 가을을 불러오면 편지 봉함을 다시 열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색깔이 쏟아져 나옵니다. 한 순간 한 순간 변하는 색깔의 오묘함은 허겁지겁 표현해 쓰고 나서 다시 쳐다보면 또 변해 있습니다. 편지를 개봉하고 다시 써야 할 정도로 말입니다.

시인의 감성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팍팍한 세상으로 아웅다웅할 수는 없습니다. 아름답게 보아도 다 못 볼 세상인데 빗물에 쓸려가는 낙엽의 쓸쓸함만을 볼 수는 없습니다. 눈을 들어 노란 색 절정인 은행나무 꼭대기로 시선을 옮기시죠.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큰 숨 들이쉬며 맞이해 보시지요. 세상은 정말 아름다움 천지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