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31
처서지나 백로를 일주 앞둔 날
오후 3시쯤
서울북부혈액원 담길
나무그늘 아래에서 끄적거리다.


거기에 사람이 있다!

삶은 다면이고 다체이다.

눈이 하나가 아니고 둘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제대로 보라고 두 개다. 거기에 마음의 눈까지 보태면 관세음의 차원은 형용할 수 없다.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드는게 아니고 전에 보지 못한 것의 새삼스러운 발견.
존재 형식의 다면 다체한 관계를 화살표와 함께 쉽게 일목하도록 포커싱하는 행위를 그들은
왈 '창조'라 한다.

존재는 형식으로 존재한다.
그 형식의 외피와 내피에 대한 알뜰한 살핌이 빚어낸 새로운 패턴의 발견.
이를 존재의 배치라 부른다.

여기서부터 중요하다.

모든 것은 배치의 관계속에서 끊임 없이 순환하며 변화한다.

순환하지만 되풀이되는 모양새는
각기 다른 존재의 이름만큼 다양하다.

이를 누구는 이름하여
'차이 속의 반복'이라 한다.

여기에서야 비로소
'그럼 어떻게 변해야 하는데?' 라는
제대로 된 질문이 나온다.

즉, 존재의 변이에는 방향이 있다는 거다.

인생의 길은 무턱대고 걷는 게 아니다.

존재의 형식과 배치에 대한
관세음의 안타까운 살핌 후에 
비로소 제대로 된 길을 걷게되면,

인생은
그 의미와 모습이
길 위의 사람답게 드러난다.

그래서

내가 걷는 인생의 길 모퉁이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모두

같이

행복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거기에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