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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언어를 통해 생각과 의식이라는 사고를 시작한 이래 끊임없이 던진 질문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것일 겁니다. 궁금할 겁니다. 아니 궁금했습니다. 지금 숨 쉬고 있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고 옷을 입고 있는 어떤 실체로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 도대체 정의를 내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물질인지, 공기와 바람 같은 존재인지 알아야 거기에 맞는 행동을 할 텐데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자기 존재의 의미를 깨달은 호모 사피엔스는 몇 명이나 될까요? 살아생전에 자기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글쎄요 인류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예수나 부처, 마호메트 정도 될까요? 그만큼 어렵기에 인류는 이런 성인들을 추앙하고 그들을 닮아보려 노력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은 바로 정체성(Identity)에 대한 물음입니다. "어떤 존재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말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그 각자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 그만큼 어렵습니다. 닮은 형태가 하나도 없습니다. 비교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모두 달라 비교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철저히 차별화되어 각자의 개성만이 남아 있게 됩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을 때 제일 쉬운 방법이 앞선 자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롤 모델을 정하는 것입니다. 멘토를 정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은 바로 분위기를 잡는 것이며 내 주변의 공간에 물드는 과정입니다.

천체물리학자인 닐 타이슨(Neil Tyson)이 오늘날 유명해지는데 결정적인 멘토를 했던 칼 세이건(Carl Sagan)과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닐 타이슨이 17살이던 1975년 12월 20일, 뉴욕 코넬대학에 있던 칼 세이건이 닐 타이슨을 초대합니다. 닐 타이슨이 천문학과 과학자에 대한 꿈과 관심을 담은 편지와 Resume을 칼 세이건에게 보냈는데 이것을 본 칼 세이건이 초대를 한 것입니다. 칼 세이건도 17살이던 타이슨의 범상치 않음을 단박에 알아본 것입니다. 닐 타이슨에게 "미래의 천문학자 닐에게"이라는 글귀와 함께 사인한 책도 선물합니다. 그리고 닐 타이슨이 귀가할 때 정류장까지 바래다주는데 눈이 엄청 내립니다. 그때 세이건이 타이슨에게 집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 하나를 내밉니다.  "눈이 계속 내려 혹시 버스가 가다가 멈추면 전화해. 집에서 재워줄게". 닐 타이슨에게 17살이던 그해 겨울, 세이건과의 만남과 집 전화번호가 적인 쪽지 한 장은 타이슨의 평생 정체성으로 자리매김이 되었습니다.


17살 때 형성된 타이슨의 정체성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COSMOS'라는 전설적인 우주 히스토리 다큐멘터리를 칼 세이건이 1980년대 진행을 맡았는데 닐 타이슨이 2014년 21세기 버전으로 다큐멘터리를 업그레이드할 때 진행을 맡음으로써 재확인합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 근주자적(近朱者赤) 거필택린(居必擇隣) 취필유덕(就必有德) "먹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검게 되고 붉은 것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붉게 되니 살 곳을 정할때는 반드시 이웃을 가리고 나아갈때는 꼭 덕이 있는 사람을 따르라"는 소학 글귀와 일맥상통합니다.


내 주변과 내 공간을 내 정체성을 확고히 할 수 있도록 재배치를 하라는 겁니다. 공부를 하겠다라고 나의 정체성을 정하면 나와 가장 근접한 거실을 서재로 바꾸랍니다. 그리고 온통 책으로 채우랍니다. 적어도 1,000 ~ 3,000권 정도의 책이 거실에 있으면 읽지 않아도 공부를 한 것과 마찬가지랍니다. 공간이 사람을 결정하게 됩니다. 설사 거실이 서재화 되어 책만 있다고 하면 내가 안 바뀌더라도 자녀가 바뀐 답니다. 정체성은 그렇게 바뀌고 그렇게 스며드는 겁니다. 바로 공간을 바꾼다는 것은 습관을 바꾼다는 겁니다. 습관이 정체성을 바꾸게 됩니다. 정체성이 확립되면 어떠한 외부적 유혹에도 제 갈길을 갈 수 있습니다. 정체성이 바로 '자아'이기 때문입니다.


주변을 둘러봅니다. 과연 제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영향을 주는 공간 배치인지 말입니다. 제가 주로 만나는 사람들은 제 정체성에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인지 말입니다. 그런데 참 어려운 일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니 무얼 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될 테지만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방향을 찾아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