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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을 이야기할 때 꼭 따라붙는 용어가 있다. 필수 비타민, 필수 아미노산이라는 단어다. 필수(必須), 꼭 필요하다는 뜻이다. 신체에 꼭 필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꼭 필요한데 몸 안에서 만들어낼 수 없어 음식을 통해 섭취해야 하기 때문에 필수라는 단어가 붙었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렇게 꼭 필요한데 왜 만들어내지 못했을까? 어떻게 이렇게 허술하게 진화를 해왔지? 눈과 같이 망막 뒤에 시신경을 배치하는 비효율적인 시각 시스템을 진화시키는 무모함도 있기에 그런가 보다 하기엔 너무 황당하고 허무하지 않은가 말이다. 


인체에서 만들어내지 않아도 되는 어떤 계기가 분명히 작동했을 것이다. 비타민C만 해도 그렇다. 대부분의 동물은 비타민C를 체내에서 합성할 수 있지만 인간과 같은 영장류만이 스스로 합성을 못한다. 합성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발현시키는 기재가 작동하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바로 외부에서 비타민C를 보충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바로 과일이다. 야생에 널린 과일을 따먹으면서 비타민C를 섭취해왔기에 굳이 체내에서 합성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과일을 따먹을 수 있는 영장류들의 비타민C 발현 유전자가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들여다보면, 정말 필요해서 필수가 아니라 외부에 널려 언제든 보충이 가능한 요소였기에 에너지 효율 차원에서 합성하는 능력을 스스로 닫아버렸는데 꼭 섭취해줘야 하는 필수로 총구를 거꾸로 돌린 것이다. 참 기구한 진화의 현장이다.

우리 몸에서 항시 필요한 글루탐산(Glutamate), 아스파르트산(Asparatic acid)과 같은 20여 가지의 아미노산은 신체에서 언제든지 사용을 해야 하기에 인체 입장에서는 진짜 필수 요소다. 항시 필요하기에 언제든 다양한 회로를 통해 공급이 가능하도록 공급망을 만들어 놓았다. 정말 꼭 필요한 요소인지라 스스로 언제든지 만들어낼 수 있으니 비필수가 되어 버렸다. 


용어가 갖는 힘이다. 단어와 용어가 개념을 만들고 생각을 만들기에 정확한 용어의 선택과 사용이 그만큼 중요하다.


필수가 자연과학 범위를 벗어나 사회과학으로 들어오면 "반드시 필요한, 꼭"과 같은 용어로 자리를 잡는다. 외부에서 보충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상관없이 갖춰야 할 항목으로 중요도를 높인다. 인문학적 용어로 전환을 한 개념으로 자연과학을 바라보면 오류가 생기는 이유다. 공부는 전문 학술용어를 익히는 과정이다. 전문용어는 명확한 정의를 가진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래서 과학에는 인용(引用)은 있지만 주석(註釋)은 없다. 감상과 감정이 개입하면 과학은 산으로 간다. 실험을 통한 검증으로 사실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과학이다. 인문 용어의 덧칠로, 드러난 결과를 포장하는 것도 기술이긴 하지만 현상을 보는 시각을 필수와 비필수처럼 왜곡되어 바라볼 수 있다. 색안경이 아닌 맑은 진실의 눈으로 현상을 바라볼 일이다. 그것이 자연을 제대로 바라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