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쓰 벨리(DEATH VALLEY)는 왜 데쓰 벨리인가?

 

데쓰 벨리는 말 그대로 죽음의 계곡이다. 이름만 듣고 처음 가는 곳이기 때문에 어떤 곳인지 상상만 했을 따름이다. 박자세에서 미국서부로 학습탐사를 떠나기 전, 사전에 지식을 조금 쌓기는 했지만 직접 보아야 더욱더 실감이 날 것 같다. 왜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어 졌는지 궁금증은 더해만 간다.

 

 박자세는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의 준말로  이번 학습탐사는 3월 16일부터 열흘간의 일정이지만 우리가 쓸수 있는 날자는 7일간 뿐이다. 대장 박문호 박사를 선두로 22명의 대원들이 함께하는 여정이다. 데쓰 벨리 국립공원의 탐사는 그 일정중의 하나이다.  학습탐사대는 4대의 렌터카로 이동하면서 탐사를 했다. 우리들 일행이 전날에 야영을 했던 나바호 파크(NABAJO PARK)에서 데쓰 벨리로 출발한 것은 아침 8시경이었다.

 

 전날 영하7도로 내려간 추위로 잠을 설친 탓도 있고, 꽁꽁 얼어붙어 있는 마른 풀과 딱딱한 땅은 몸과 마음을 더욱더 추위에 떨게 하였다. 새벽에 추워서 침낭 속에 오그리고 누워있는데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세요! 모닥불 피워났습니다.”라는 남자대원의 소리가 들렸다, 모닥불의 불빛이 텐트 속으로 들어와 훤하다. 일어나 보니 나 혼자 누워있다. 두 사람은 추위 때문에 화장실로 옮겨갔나보다. 자기 전에 화장실에 갔더니 의외로 훈훈하기에 “자다가 추우면 여기와도 되겠네.” 했더니 김현미 대원이 눈을 반짝이며 “스님도 오실래요.” 했다. 추위에 떨며 자고 있는데 “화장실에 자러 안 가실래요.” 묻는 소리에 일어나기 귀찮아서 안 간다고 한 것이 자는 내내 후회스러웠다. 부스럭거리며 일어나 침낭과 매트를 개려고 하니 손이 곱아서 제대로 되지 않는다. 텐트도 얼어서 지퍼가 잘 열리지 않는다.

 

나와 보니 모닥불이 훨훨 타고 있었다. 새벽 2시경부터 몇몇 대원들이 일어나 나뭇가지나 삭정이를 주워 와서 불을 피워 논 것이다. 일어날 때 새벽5시쯤이었다. 불이 이글이글 타고 있는데 계속해서 나무들을 주워 와서 집어 놓으니까  타닥거리며 잘도 탄다. 이화종 대원이 한쪽으로 불을 밀치고 숯불위에 큰 들통을 올려놓았다. 22명이 먹을 누룽지탕을 끓이려는 것이다. 버너의 가스불로는 역부족인데, 이글거리는 숯불에 올려놓으니 금방 끓을 것 같다. 얼마동안을 기다리자 고소한 냄새가 코로 들어온다. 갑자기 시장기가 느껴진다. 드디어 끓기 시작하자 모닥불 주위에 서있던 대원들이 “끓었다” 하고 함성을 질렀다. 뜨끈뜨끈한 누룽지탕 먹을 생각을 하니 뱃속부터 따뜻해져온다. 공송심 대원의 따스한 정성으로 만들어진 따끈한 누룽지탕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듯싶다. 김을 뿌려서 훌훌 불어가며 먹었다.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남자대원 들은 자고 일어난 텐트와 매트를 걷어 짐을 꾸렸다. 추위 때문에 손이 오그라들어 펴지지 않아 시간이 꽤 걸렸다. 아침을 들기 전에 후딱 해치워야 하지만, 장갑 낀 손조차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래저래 빨리 서둘러 떠난 것이 오전 8시경 이었다. 새벽 5시부터 부지런히 설쳤는데도 말이다.

 

이번 탐사는 기후가 변화무쌍했다. 첫날은 흐렸으며 이튿날은 장대비가 밤새 내렸고 게다가 천둥번개까지 동반한 것 까지도 좋았는데 기차소리, 트레일러소리, 자동차소리 등에 텐트 안에서 잠을 설쳤다. 셋째 날과 넷째 날은 눈이 왔다. 눈이 그냥 온 것이 아니라 펑펑 쏟아지는 장대비처럼 내려서 앞이 전연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눈이 오는 날 2호차를 탔는데 이홍윤 대원이 “이번 탐사는 기후변화 탐사도 곁들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한마디 했다. 기후 탓을 하기보다 모든 걸 학습으로 돌리는 재치가 있는 말이었다.

 

눈 때문에 처음에 가기로 했던 파로마(PALOMAR)천문대는 입구 까지 갔지만 문이 닫혔고, 키트 피크(KITT PEAK)천문대도 눈 속을 헤치고 산꼭대기까지 갔지만, 입구가 폐쇄되어 있어 되돌아와야만 했다, 그러나 그곳까지 가서 발 도장을 찍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았다. 거기에다 탐사일정도 있고 해서 결국 NRAO 천문대도 포기하는 쪽으로 돌렸다. 정말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이번 학습탐사는 천문대 하고는 인연이 없는 모양이다. 천문대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있었는데, 너무나 아쉬웠다. 그 대신 눈 때문에 못 간다고 포기했었던 그랜드 캐년(GREND CANYON)을 향해 달렸다. 나는 두 번째여서 처음에 느꼈던 감흥을 이기지는 못했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그랜드 캐년을 다녀와서”를 읽은 이래로 얼마나 오고 싶었던 곳인가! 처음 보았을 때의 가슴 설렘이 지금은 없다. 그 당시엔 미국이란 나라는 별천지였고 상상의 나라였고 아무나 갈 수 없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라도 갈수 있게 되어서 지금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박자세의 학습탐사도 지금이니까 가능하게 되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보았던 그랜드 캐년의 감동은 가슴에 남아 있지만 언제까지나 그대로의 감정일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하긴 사랑도 변한다고 하니까 말이다. 이틀전이였으면 가지 못했을 텐데, 군데군데 눈이 녹지 않아 쌓인 곳도 있었으나, 봄눈 녹듯 녹은 눈 덕분에 그랜드 캐년을 보고 갈 수 있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랜드 캐년은 물과 바람과 중력에 의해 만들어진 자연유산이다. 자연이 만들어낸 웅대한 스케일을 바라보면서 그 위대함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무구한 역사의 발자취가 있는 그랜드 캐년을 뒤로하고 오후에는 데쓰 벨리를 향해 달렸다. 몇 시간을 달리자 이내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날이 밝은 시간이라면 입구로 들어가는 경치가 볼만하다고 4호차의 김병수 대원이 말했다. 김병수 대원은 몇 년 전 미국에서 살 때 이곳을 한번 다녀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데쓰 벨리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다. 또 천문학과 지질학에도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어 별들에 관한 천체이야기도 들려주어서 매우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병원을 하시면서 언제 틈을 내어 이런 공부를 했을까? 속으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학습공부 이외에 다른 이야기를 하면 핀잔을 주다가도, 별이나 천체, 암석이나 지질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눈을 반짝이며 설명을 잘해 주었다. 4호차에 배정이 되어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었고 부수로 얻어지는 것도 많았다.

 

인디언 스프링스(INDIAN SPRINGS)로 가는 길에 석양이 져서 노을이 아름다웠다. 붉은 빛과 황금빛, 은빛과 분홍빛이 지는 해를 따라 서서히 변한다. 야트막한 산에 회색의 구름 띠가 생기고 그 위로 마을의 불빛이 등불을 줄지어 켜 논 것처럼 반짝거리고 있다. 황금빛과 진한 자줏빛이 서로 어울린 노을을 계속 보면서 가기는 처음인 것 같다. 전봇대가 줄지어 있는 황혼의 석양 길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캄캄해서 주위가 보이지는 않지만 차는 데쓰 벨리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차안에 해발이 -19,41피트라고 적혀있다. 해발이 마이너스인 지역은 바다였을 가능성이 많은데, 실제로 데쓰 벨리는 2억 년 전에는 바다였다 .또 3천만 년에서 5백만 년 사이에 대략 지금의 모양이 되었다고 하며, 인디언들은 9천 년 전부터 이곳에서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선 오늘의 야영지인 캠핑장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자동차 4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무전기를 가지고 서로 연락을 하지만 때론 연락두절일 경우가 있다. 그래서 길을 헤맬 때도 있어 늦어지는 수가 있는데, 내가 탄 4호차가 제일 늦게 도착했다. 박문호 학습탐사대장은 먼저 온 대원들을 데리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강의를 끝낸 직후여서 매우 아쉬웠지만,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으로 마음을 달랬다. 밤 10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지만, 텐트도 펼쳐야하고 저녁도 먹어야한다. 각자 맡은 소임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저녁식사는 서서히 준비단계를 거쳐 본격적인 요리에 들어갔다.

 

학습탐사에서는 가능한 한 짧은 시간에 간단히 해서 먹는 게 철칙이다. 오늘은 조금 다르다. 야영하는 것은 마지막 날이라 남은 먹 거리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용해서 맛있는 요리를 만드느냐가 과제였기 때문이다. 김철원 대원과 공송심 부부대원이 준비해온 반찬들이 다 나왔다. 야영생활 특히 학습탐사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밑반찬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깻잎조림, 된장에 절인 콩잎 장아찌, 검은 콩과 땅콩을 넣어 조린 콩자반, 멸치볶음, 알맞게 익은 배추김치, 오징어채무침, 김 등등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다. 거기에다 오늘의 메인메뉴는 부대찌게이다. 공송심 대원이 찌개꺼리로 양파도 몇 개 준비했다고 한다. 스팸 햄과 양파를 썰고 김치도 적당량을 집어넣고 신라면의 얼큰함을 살려 스프와 함께 넣어 보글보글 끓여내면 부대찌개가 완성되는 것이다. 모두들 목을 길게 빼고 끓기를 기다린다. 빨간 색깔을 띤 국물로 입맛을 돋우는 공송심표 부대찌개가 완성되었다. 부 주방장으로 자원한 이화종대원의 굵직하고 느린 목소리가 퍼진다. “부대찌게 다 됐습니다. 각자 그릇과 숟가락을 챙겨서 오세요.” 라고 더 길고 느리게 끝을 빼서 말한다. 비록 간편하게 덥혀서 먹는 햇반이기는 하지만, 따끈하게 덥힌 밥에 얼큰한 국물을 얹어주니 정말로  맛이 죽여준다고 하며 맛있게 먹는다.  즐거움이 얼굴에 가득 퍼진다. 정말로 훌륭한 만찬이었다.

 

하늘을 쳐다보니 저녁별이 사방에 가득하다. 나바호 파크(NABAJO PARK) 야영장에서는 양쪽이 산이라 하늘공간이 좁았는데, 이곳은 벌판이라 하늘에 온통 별이다. 별! 별! 별! 텐트 안에서 자지 않고 밖에서 별을 보며자겠다는 대원들이 더러 나섰다. 홍종연 대원은 잔뜩 들떠있는 눈치였다. 몽골에서의 비박은 이슬이 내려 축축했지만 너무나 좋았노라고 하며 비박한다고 하더니 차안에서 지낸 것 같았다.

 

별을 보고 있을 떄였다. 박문호 대장이 무엇을 보았는지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보이지요. 한 개도 아니고 여러 개가  반짝이는데 왜 그런지 알아요?" 라고 물었다. 모두들 눈만 멀뚱거리며 있으니까 "사막에서는 강한 열풍이 부니까 그 영향으로 저렇게 별이 깜빡이는 겁니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들고 떼스 벨리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지요"라고 말했다. 정말로 희귀한 것을 보게 되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연현상으로 인헤 또 다른 볼거리를 재공해 주어서 최고의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밤새 바람은 세차게 불었지만 다행히 춥지 않았고, 오히려 덥기까지 했다. 자다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깨어보니, 김현미 대원이 밤새 비박하며 별을 보다가 새벽녘에 침낭과 매트를 가지고 텐트 속으로 기어 들어왔다. 또 잠을 청하는데 이번에는 밖에서 아무렇게나 잠이 들어있는 김향수 대원을 깨워 김현미 대원이 텐트 속으로 데려 왔다. 감기 기운이 있어 코맹맹이 소리를 하며 옷으로 둥둥 싸고 다니면서도 비박을 할 정도로 별밤이 그렇게 좋았나보다. 어린 소녀 같은 감성을 가지고 있어 철없는 행동도 가끔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귀여움이 있다. 박문호 대장은 우리들이 별밤을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밤하늘의 별은 원래 우리가 살던 그대로의 모습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낯에도 별은 하늘에서 반짝거리지만 태양빛에 의해 보이지 않다가, 밤이면 별은 본연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기 때문에 마음의 고향을 찾은 듯해서 별밤을 그리도 좋아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니 왠지 가슴 깊숙이 저려오는 슬픔을 느끼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별 하나하나에 이름이 있고, 사연이 있고 전설이 있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고는 베기지 못하는 마음속의 향수에 대한 표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오늘 따라 윤동주님의 “별 헤는 밤”이란 시가 더더욱 생각이 난다.  특히 이 구절이 가슴에 파고든다.

 

별 하나에 추억(追憶)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詩)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오각형의 다섯 개의 별 속에서 유난히 빛나는 카필라(Capella), W자모양의 카시오페아(CASSIOPEA), 내가 어릴 적부터 알던 북두칠성과 세쌍둥이 별인 삼태성, 새벽하늘과 초저녁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금성과 목성, 큰곰과 작은곰, 사자자리 같은 동물 이름의 별자리, 독수리자리, 백조자리 같은 새 이름의 별자리 등등. 다 외울 수도 없는 별자리를 손가락으로 일일이 가리키면서 밤하늘의 별처럼 눈을 반짝이며 강의하는 박문호 대장의 모습은 소년기의 어린애 같은 표정이다. 보통 땐 별로 표정이 없지만, 이때만큼은 마냥 웃으면서 설명한다. 들어도 또 들어도 콩 까먹듯이 우리들은 까먹는데, 숨도 쉬지 않고 손으로 가리키며 정확하게 별이름을 댄다. 나는 언제쯤 자신 있게 저 별자리들을 가리키며 하나하나 이름을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열심히 듣는다. 이번 참에 별자리를 본격적으로 외워보려고 별자리 판을 하나 샀다. 실현 가능성은 온전히 나의 노력여하에 달렸으니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일어났을 때, 별은 전부 숨어버렸고 희붐하게 날이 밝아있었다 비박을 한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다음에는 꼭 비박을 해봐야지 하고 마음속에 새겼다. 밤에는 캄캄해서 잘 몰랐는데 맞은편에 모래로 된 민둥산이 야트막하게 자라잡고 있었다. 산위에 몇 사람이 올라가서 기지개를 크게 켜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가 잤던 옆 텐트는 미국초등하교학생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원중에 누가 물어봤더니 별자리 관측을 하러 왔다고 했단다. 어릴 적부터 자연을 벗하는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는 미국학생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라는 지옥에 빠진 한국의 어린이들이 가엾다는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학습탐사 자료를 살펴보니 우리가 달리는 도로의 길이는 4,517km이고, 달리는 시간은 이틀하고도 네 시간을 달려야 한단다. 이번 탐사는 여유가 없는 빡빡한 일정인데도 불구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감사를 드려야 할 일이다. 이 모든 것들은 대원들의 학습에 대한 열정과 학습하는 분위기가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 것 같다. 일기다운 일기를 써 본적도 없고, 글을 긁적거린 일도 없는 내가 글을 써보겠다는 마음을 내게 된 것은 학습탐사의 공부분위기를 어느 정도 표현하고픈 욕심이 나도 모르게 생겨났기 때문이다. 뭔가 써서 남겨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지 직접 실천에 옮긴 것은 이번 학습탐사가 처음이다. 그동안 많은 곳을 혼자서도 다니고 서 너 명이 배낭여행을 다니기도 하며, 때론 그룹으로 단체여행 등을 다녔지만 글로 쓴 적이 없다. 시를 읊은 적도 수필이나 산문 같은 글도 써낸 경력이 없는 나 이다. 하지만, 서툴게나마 자기표현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 것은 탐사대장 박문호 박사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이 생각해도 장족의 발전을 한 것 같다. 자연과학 공부를 하기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모인 단체여서 그 힘이 나를 변하게 했다고 생각하며 모르는 사이에 공부의 힘이 위대한 작용을 한 것 같다.

 

아침이다. 오늘은 하루 종일 데쓰 벨리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언제나 그렇듯 맨 먼저 비지트 센터(Visit Center)에 들러 책과 자료를 들러보고 필요한 책들을 구입했다. 센터 앞에 빠르게 달리듯이 가는 새가 보였다. 새 이름이 로드 런너(Road Runner)라고 김병수 대원이 말해주었다. 미국만화에 자주 등장한다고 하는데 이름그대로 재빠르게 달렸다. 영상물을 보러 갔는데 그 영상 속에서도 잠시 등장해서 반가웠다. 죽음의 계곡이라더니 영상에는 많은 식물과 동물이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사막이라고 해도 여기저기 푸른빛을 띤 풀도 있고 키가 작은 관목들도 자라고 있다. 그러나 마른 풀과 마른 관목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사막의 평원을 가득 채운 노란색 야생들국화 ,이름 모를 보라색 들꽃, 나팔꽃 비슷한 하얀 꽃 등이 아름답게 핀 영상을 보니 너무나도 신비로웠다. 오십년 전에 보았던 기록영화 “아름다운 것들”이 생각났다. 사막에 비가 오면 일주일 안에 온갖 꽃들이 피어서 씨를 맺거나 열매를 맺는다고 하는데, 그 영화 속에서 사막에 가득 핀 온갖 꽃을 보고 천당이나 극락이 있다고 하면 저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장면뿐 만 아니라 다른 것을 다 찍는데 13년이 소요됐다는 기록영화였다. 지금이야 정보가 흘러 넘쳐서 별게 아니지만 그 당시로서는 매우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러면 왜 데쓰 벨리인가? 이곳은 사막이다. 평소에는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고 물이라고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비가 한번 내리면 마른 사막에 홍수가 나고 평지는 호수로 변한다고 하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이런 사막이지만 갑자기 비가 내리면 홍수가 나서 물에 떠밀려서 아이러니 하게도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아니! 사막에서 물에 빠져 죽는다니! 누가 믿겠는가? 별안간 비가 내리면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다 데스 벨리 즉 죽음의 계곡에 빠져 죽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데쓰 벨리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한참을 달리자 소금이 하얗게 깔려 있는 소금호수처럼 넓은 강이 있는 곳에 내렸다. Bed Wetter Base라는 곳이다. 물이 아니라 소금이 깔려 있다. 위에서 보기는 소금이 살짝 깔린 것 같지만 강바닥에 쌓여있는 소금과 모래가 3백 미터가 된다고 하니 놀랄 일이다. 사막에서 세차게 부는 모래바람은 모래와 함께 소금을 날라다주기 때문에 물이 많을 땐 물속에 있다가 마르면 소금이 된다는 것이다. 또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위에서 내려온 토사가 쌓여서 산 아래쪽이 부채꼴 모양의 선상지(扇狀地)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산 가까운 쪽은 가는 모래가, 산에서 멀어질수록 모래알이 굵어지고, 그다음에는 작은 돌이, 나중에는 큰 돌들이 가장자리에 자리 잡기 때문에 길가의 돌들이 굵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자연과학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박문호 탐사대장은 다리 위에 엎드려 소금물 맛도 보고, 소금덩어리를 가지고와서 맛보라고 권해서 조금씩 맛을 보았다. 소금 본래의 짠맛이 느껴지는데 집에서 맛보는 소금하고는 조금 다른듯했다. 소금이 깔린 소금강위로도 걸어 보았는데 기분이 묘했다.

 

산모퉁이를 돌고 돌아 좁은 외길을 한참 달렸다. 홍수로 인해 길이 쑥 파여진 곳이 많아 차가 올라갔다 내려갈 때는 스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길이라 버스나 트레일러, 큰 트럭 같은 대형차는 지나갈 수 없다고 입구의 표지판에 붙어있다. 아티스트 팔레트(Artist Palette)라는 별명이 붙은 산으로 가는 길이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오면서 산에 푸른 녹청색을 띤 것들이 가끔 보이기에 산에 곰팡이가 슬었나! 라고 혼잣말을 했다. 도착해보니 산에다 유화물감을 칠한 것처럼 형형색색이다. 어느 예술가가 저리도 절묘하게 칠할 수 있을까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한 폭의 유화를 보는듯한 착각에 빠졌다. 푸른빛은 구리광맥이 있는 곳이고 붉은빛이나 갈색은 철 광맥의 농도에 따라 색깔의 변화가 있으며 그 외에 다른 색깔들도 광물질에 의한 영향이라고 박문호 학습탐사대장이 말했다. 아까 곰팡이가 슬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화학작용에 의해 이러한 형상이 생긴다니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아티스트 팔레트를 지나 이번에는 비탈길로 계속 올라간다.  달리다가도  한 번씩 움푹 페인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달렸다, 양옆이 바위로 되어있는 위험한 곳을 지나가기도 하면서 차는 계속 오르기만 한다. 한참을 계속 달려서 내린 곳은 산 정상에 가까운 주차장이었다. 올라서서 내려다보니 산 아래쪽이 탁 트여 있다. 하얀 소금이 넓게 펼쳐져있어 하얀 물이 고여 있는 큰 호수처럼 보인다. 소금 길이 저 멀리 아래까지 굽이굽이 가늘게 뻗어 있어 하얀 물길이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건너편에는 크고 높은 산들이 줄지어서 산맥을 이루고 있는데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산들이 즐비하게 서있고, 제일 높은 산은 TELESCOPE PEAK라고 하는데 우람한 기운을 품고 있는 듯했다. 주차장은 전망대 역할도 겸해서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건너편에 있는 산과 아래쪽의 소금으로 된 강을 조망하러 왔다. 이곳 전망대는 DANTES VIEW라는 곳으로 해발 천오백 미터라고 하며, 소금강은 AMARGOSA RIVER라고 부른다고 한다.

 

한 시간 반을 달려 다음에 들러 본 곳은 색다른 이야기꺼리를 가지고 있는 SCOTTYS CASTLE이라는 성 모양을 본 딴 집이었다. 황금을 찾아 일확천금을 꿈꾸던 그 시절에 사기꾼에게 속아 아무 것도 없는 이 사막에 이런 성을 지었다는 것은 누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하지만 이 건물은 그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때 그 시절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산역사의 증인으로 오늘도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으니, 황금을 캐서 일확천금을 벌어드리지는 못했지만 관광객을 대상으로 황금을 벌어들이고 있으니 정말 모순된 일이다. 이곳에서 물을 끓여 컵라면을 먹을 예정으로 달려왔는데, 절대로 불가하다고 해서 하는 수없이 매점에 가서 산 빵과 음료수로 끼니를 때웠다. 황금을 추구하던 땅에 와서 배불리 먹지도 못한다는 사실이 웃기는 일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우베헤베라는 화산 분화구가 있다고 해서 가기로 했다. 가는 도중에 보이는 흙은 거의가 검은 색이다. 화산재가 날아와 땅이 모두 검은 색이다. 분화구에 가까워지자 땅은 점점 더 검은 빛을 띠고 있었다. 이것은 천년이상  된 것으로 분화구로서는 젊은 축에 속한다고 한다. 천년이나 지났는데도 원형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사막이라 비가 잘 안 오기 때문이란다. 분화구 위쪽은 검은 흙이고, 중간쯤에는 지층의 단면들이 보이며, 제일 아래쪽은 엷은 황토색의 흙이 깔려있다.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불던지 사람이 제대로 몸을 가누고 서있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런 세찬 바람인데도 탐사대장을 선두로 모두 분화구 밑까지 내려갔다왔다. 나는 날아갈 것만 같아 몸을 사리고 내려가지 않았다. 나 이외에도 몇 사람은 안 내려간 것 같다. 모두들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직경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 유감이지만 눈으로 봐서는 굉장히 넓었다.

 

분화구를 벗어나 조금 달리니 오른쪽으로 하얀 모래가 깔려있는 모래등성이가 쭉 연결되어 있는 드넓은 모래사막이 보였다. SEND DUNES라고 불리는 흰모래 사구(砂丘)이다. 내리자마자 걷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멀리서는 전부 희게 보였는데 가까이 가보니 검은색이 약간 섞인 모래도 있었다. 보드라운 모래의 감촉이 맨발에 느껴진다. 모래 속에 발이 푹푹 빠졌지만 기분 좋은 느낌이 온몸으로 퍼진다. 그런 느낌이 오니까 학습탐사대의 막내인 김형민이가 모래언덕에서 온몸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굴러가는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릴 있으면서도 재미있다. 옆에서 지켜보던 김향수 대원도 덩달아서 굴렀는데 중심을 잘못 잡아 굴러가다가 멈춰서버려 거기 섰던 우리들을 웃게 만들었다.

 

데쓰 벨리를 뒤로하고 해가 지는 석양을 향해 달리고 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석양의 아름다운 색을 어떻게 표현하랴! 해가 지면서 마지막으로 선물하는 황혼의 그 여운을 무엇에다 비유하랴! 해는 벌써 넘어가서 보이지 않지만 여명이 남아있어 저편 하늘은 아직도 훤하다. 하얀 모래 평원 위에 석양빛이 빛을 던지고 있다. 석양을 뒤로 두고 데쓰 벨리를 벗어났다. 데쓰 벨리의 하루는 나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하였다.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것은 모두 생(生)•노(老)•병(病)•사(死)하고, 생명이 없는 것은 모두 성(成)•주(住)•괴(壞)•공(空)하는 것을 반복한다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데쓰 벨리는 죽음의 계곡이 아니다. 그 곳에는 해마다 풀과 나무가 새로운 움을 트고 살아가고 있어 죽어있는 것만 보이지 않는다. 죽고 살고를 계속 반복하는 모습들이 우리 눈에도 보인다. 한쪽에는 마른 풀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새로운 싹들이 자라고 있다. 어찌 경이롭지 않다고 감히 말하겠는가! 사막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끈질기게 종족을 보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나로 하여금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새삼 느끼게 했다. 직접 살아있는 동물을 본 것은 로드 런너(ROAD RUNNER)라는 달리는 새 뿐이지만, 비지트 센터에서 보여주는 영상물 속에는 여러 동물들이 살고 있었다. 또 일 년에 한두 번 내리는 비로 이름 모를 꽃들이 평원 가득히 핀 것을 보고, 비록 영상이지만 가슴이 떨렸다. 가슴이 떨린다는 말은 박문호 탐사대장의 18번이지만 정말로 가슴 떨리는 경험을 데쓰 벨리에서 하였다. 내가 본 데쓰 벨리는 죽음의 계곡이 아니고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활동하면서 많은 변화를 우리들에게 보여주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데쓰 벨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지만, 데쓰 벨리는 분명 살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