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중국의 ' 장가계'를 간 전이 있었다.

 

'장사를 거쳐 장가계로 가는 루트였다. 여행 내내 내 눈을 이끈 것은 기와였다.

사이드 미러가 더듬이처럼 달린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가야 장가계에 도착을 한다.

 

그 동안 내 눈을 잡아 끈 것은 몇 대 다니지 않은 고속도로가 아니라 어쩌다 보이는

집들이었다. 콘크리트로 지은 슬라브 집들도 보였지만 간간히 보이는 기와집들의

기와가 내 눈을 잡아 끈 것이다.

 

한국의 기와와 다르게 조그많고 거무스름한 빛을 띈 기와집이 계속해서 눈에 들어왔다.

 

왜 작은 기와를 썼을까. 그리고 색은 왜 거무스름하지라는 궁금증을 갖은 것이다.

 

3시간쯤 가던 버스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창 밖이 보이지 않을만큼 비가 쏟아졌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던 궁금증은 빗소리에 흘러내려 풀리기 시작했다.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 지붕을 덮고 있는 기와는 열을 빨리 흡수하고 말리기 위해

거무스름하고 작은 기와를 덧 쌓아 물기를 빨리 마르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거무스름한 콘크리트 집의 벽은 소금을 처리하지 못하고 남겨져 검은색으로 바랬다고 한다.

 

한국의 기와에 비해 작은 기와와 거무스름한 빛깔은 모두 기능을 담고 있었다.

 

세상에 많은 것들이 이렇듯 지혜를 품고 있을 것이다.

 

그 동안 쌓아 두었던 생화학 책을 조심스레 들쳐 보았다. 오바이트가 쏠릴 것 같았던

화학식 중에 ATP를 만드는 화학식을 보는데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알 수 없는 공식처럼 구조를 그리고 있던 화학식이 조심스럽게

자신을 들어내고 있었다.

 

중국의 기와가 작은 크기와 거무스름한 빛을 띄고 있었던 것이 이유가 있듯

화학식에 구조가 그렇게 이유 있음으로 가득차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과학에 미치기 시작한다는 건 아마도 새로운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인가 보다 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ATP가 염기에 있는 아데노신 삼인산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을 때

그리고 OH 기가 잘라내고 붙이는 과정이 생명의 연속임을 느꼈을 때

미토콘드리아가 세포의 생명을 결정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손바닥을 조용히 바라 보았다. 손 바닥에 보이는 주름이 있는 것은 손바닥 주름에 있던

세포가 미토콘드리아의 정보를 통해 죽어 주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내 손이 만드는 대부분의 활동이 이 주름위에 일어나는 것은 필요에 의해 조용히

사라진 세포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중국의 작은 기와가 비를 생각하며 만들어진 것처럼 내 손바닥에 주름도

손의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조금씩 늘어나는 눈가의 주름살과 이마의 주름, 흰 머리카락, 발 뒷꿈치의 굳은 살도

모두 자기 공간을 내어 주며 살아가는 다세포의 생명 이야기이다.

 

내가 태어난 이유보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 사라져가는 생명에 관심을 갖게 되는 요즘이다.

 

의미가 없는 세상에 의미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이렇게 발버둥 칠 때

더한 속도와 복잡함으로 그 생을 유지하는 내 모든 세포들에게

감사함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