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소풍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이유는 소풍가기 전날부터

집어 넣은 가방 속 풍성한 과자 부스러기도, 먹음직스롭게 채워진

도시락 속 김밥도, 소풍때마다 손뼉치며 하던 수건돌리기도, 보물찾기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필요없는 종이 두 장 찾아서

'난 재수 좋은 놈이야' 했던 것도 아니다.

 

비가 오지 말기를 제발 맑고 화창한 날이기를 밤마다 두 손 부여잡고

기도하던 한 밤, 두 밤, 작은 손가락에 쥐어지던 그 길고도 간절했던

셈을 할 때에 기다림에 있다.

 

아직도 그 만큼 작고 소중한 그럼함에 아름답기까지 한 아이의

기다림을 하고 싶다. 순수라는 단어에 걸맞는 소중한 기다림을 말이다.

이것이 내가 어렸을 적 소풍을 그리는 이유이다.

어쩌면 천상병 시인이 '귀천도'에서 말한 소풍도 이런게 아니었을까 한다.

기다리고 기다려 맞이한 세상에 더 큰 기쁨을 느낀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몽고를 가는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미국 남서부 학습탐사를 준비하기 위해

몇 만 장의 ppt와 수 십권의 책과 수 십편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몽고를 가기위해 저녘마다 다큐멘터리와 여러 책자들을 보다가 잠이 든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것도 없는 것을 느끼려 가는 학습탐사는

어렸을 적 소풍을 기다리던 맘으로 돌아가게 한다.  하루의 시간이 지나고 하루에

시간이 채워지면 몽고에 푸른 초원과 드넓은 사막이

나를 맞이할 것이다.

 

수십 억개씩의 세포가 죽고 수십 억개의 세포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내가 몽고에서 얼마나 많은 세포를 죽이고 새로운 세포를 채워올 것인가.

흐르는 강물은 오래전 부터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본 강물은

바다로 흘러가고 없다.

 

내가 기다린 시간은 다시 시간 속에 흩날리고 나를 어딘가로 보낼 것이다.

기다려 기다림으로 맞이하는 몽고 학습탐사에서 망막을 파고드는 사막과

침묵하는 자연 앞에서 나를 발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