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의 압박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일까? 몽골의 대자연 속에서 탐사대원들이 만끽하고 있을 자유가 많이 부럽다. 물론 탐사이니 만큼 힘든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낯선 환경 속에서 발견하는 ‘나’는 신선하다. 곧 대원들이 다녀오면 몽골 이야기만 할지도 모르니 그 전에 못 다한 미국 학습탐사 이야기를 조금 풀어볼까 한다.

 뉴멕시코 주의 차코 국립 역사공원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지금껏 잘 포장된 도로 위만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비포장 도로가 우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요동이 그리 심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또 다른 풍경을 느긋이 감상하고 있었다. 한데 자동차는 좀 힘들었나 보다.

 잘 달리던 1호차가 멈추어 섰다. 좋은 풍경이 나타나면 곧 잘 멈추어 서서 사진을 찍곤 했기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다. 한데 따라 멈추어보니 1호차 오른쪽 뒤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 있다. 펑크가 난 것이다. 사실 사방에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벌판에서 일어난 사고라서 위급 상황이라면 위급 상황인데 갑자기 신이 났다. 한 번쯤은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 과거의 여행 경험을 돌아보았을 때 언제나 돌발적인 일들이 한 두 번은 일어났었고 또 그 일들은 가장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았었던 탓이다.

 다른 차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차를 한 쪽에 대고 바퀴를 교체하기 위해서 도구들을 찾았다. 그런데 우리를 안내해야 할 매뉴얼도 스페어타이어도 교체 도구도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스페어타이어는 잘 안 보이게 자동차 밑 쪽에 숨겨져 있는 것을 어떻게 발견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매뉴얼이나 교체 도구는 보이지 않는다. 의자에 달린 주머니도 뒤져보고 짐 싣는 공간도 뒤져보고 본네트 속도 뒤져보고 의자를 뒤집어서 그 밑도 살펴보고 자동차 밑 쪽도 살펴봤는데 없었다. 분명 어디 있기는 할 텐데 보이지가 않았다.
 
 3호차에서는 교체도구를 찾을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타이어 크기가 달랐다. 이거 도구를 찾을 수가 없으니 특수 엔지니어이신(?) 김철원 선생님이 계셔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 때 멀리서 차 한 대가 다가왔다. Daryc, 우리 구세주가 나타난 것이다.

 우리가 도움을 청하자 Daryc은 흔쾌히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보자며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차를 좀 살펴보더니 차 뒤쪽 범퍼 위쪽에 있는 열쇠구멍을 찾아내었다. 우리 중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었다. 자동차 열쇠를 가지고 와서 그 구멍을 열어보았지만 그냥 구멍처럼 보였다. Daryc 은 이 안으로 밀어 넣는 도구가 있을 것이라며 도구가 없느냐고 물었다. 역시 우리 중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차 뒤 쪽에 짐 싣는 곳을 살펴보더니 갑자기 왼쪽 벽에 붙어있는 물건 담는 통을 뜯어내었다. 그 밑에는 우리가 애타게 찾던 도구들이 들어 있었다. 우리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을 Daryc 은 금방 찾아내었다. 우리에게는 처음 보는 방식이었지만 Daryc 에게는 익숙한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 장면을 보고 나는 사실 많이 아쉬웠다. 분명 어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저기를 뒤지면서 그 근처까지 갔던 것이다. 심지어 나는 그 통을 살짝 잡아당겨보기도 했다. 차 뒤쪽 짐을 싣는 칸의 왼쪽 벽은 조금 두툼했고 위쪽에는 물건을 간단히 담을 수 있는 통이 달려 있었다. 왜 국내 차량의 문에 달린 것처럼 창문을 오르내리는 버튼 뒤쪽에 있는 얕은 통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그 밑에는 사각형의 문이 달려있었다. 그걸 처음에 발견했을 땐 ‘이거다’하고 열었지만 그 공간은 비어있었다. 그리고 굉장히 얕았다. 분명 그 빈 공간 안쪽에는 공간이 더 있었다. 그래서 그 통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살짝 잡아당겨보기 까지 했었다. 하지만 ‘발견’을 하기에는 간이 너무 작았던 것 같다. 혹시 힘껏 잡아당겨서 부러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체감했던 미국 물가는 너무 비쌌다. 내 한계였다. 
 
 하지만 Daryc 은 과감하게 그 통을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필요하던 교체도구를 멋지게 찾아내었다. 그 속에는 차체를 들어올릴 수 있는 리프트 잭과 바퀴의 너트를 풀고 조이는 렌치 그리고 연결해서 쓸 수 있는 철 막대가 들어있었다. 그 막대는 아까 Daryc 이 발견한 구멍 속에 집어 넣고 돌려서 바퀴가 달려 있는 도르래를 밑으로 내리는 데 쓰는 것이었다. 사실 알고 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은 방식인데 낯설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아는 것이 힘이다’는 속담은 역시 괜히 나온 것이 아닌 것 같다. 정보는 문제해결의 핵심이다.

 비록 Daryc 이 가장 큰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그 때 우리는 꽤 멋진 팀이었던 것 같다. 모두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힘을 모았다. 김철원 선생님은 Daryc 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옆에서 필요한 것들을 보조해주셨고 박종환 선생님은 빼낸 타이어를 갈아 끼우셨다. 펑크난 타이어를 차 밑에 다시 매단 것은 솔다렐라 님이었다. 다른 분들은 짐을 정리하거나 사진을 찍거나 점심을 준비하셨다. 모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 멋진 팀이었다.

 도움을 준 Daryc 이 너무 고마워서 우리는 점심인 라면을 같이 먹고 가라고 권했지만 갈 길이 바쁜 것 같았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 준 것이 고마워 약간의 사례를 하려고 했지만 그는 누구든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다며 어쩌면 자신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었다며 사례를 정중히 거절하고 다시 가던 길을 떠났다.

 그렇게 타이어를 교체하고 먹은 라면은 좀 불어있었지만 정말 맛있었다. 이번 몽골 학습탐사에 가있는 대원들도 예기치 않은 상황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꽤 힘들거나 인내력이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넘고 나면 분명 대원들은 각자 더 많은 것들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학습한 지식을 확인하고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체험하는 것이 학습탐사의 가장 큰 매력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조명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다는 점은 음료수가 원 플러스 원으로 하나 더 딸려오는 것과 같은 기분 좋은 보너스인 것 같다. 몽골에 가있는 탐사대원들이 어떤 상황들과 마주하고 또 무엇을 배워올지 궁금하다. 33명의 이야기를 다 들으려면 밤을 새우겠다는 각오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