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서부 학습탐사의 마지막 탐사지였던 데스벨리에는 바람이 참 많았다. 도착한 날 밤 날려가지 않게 붙잡아가며 열심히 텐트를 쳤지만 약간 방심하자 약 오르지 하며 텐트를 뒤집어 놓고 달아난다. 얼마나 멀리 달아나는지 원망할 마음도 안 생긴다. 밥 먹을 때는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고 짐 정리할 때는 쓰레기로 술래잡기를 하자고 달려드는 고약한 녀석이다. 한데 일단 짐을 다 정리하고 길 위로 나서면 이 녀석의 태도가 달라진다. 더울까 부채 부쳐주고 사진발이 잘 받도록 박자세 깃발도 멋지게 휘날려 준다. 물론 가끔은 또 모자를 휘날리며 장난을 걸긴 하지만 말이다.

 

 데스벨리의 바람이 정말로 진가를 보여주는 곳은 우베헤베 분화구이다. 바람들이 힘껏 내달려 분화구 속으로 슬라이딩을 했다가 다시 솟구쳐 오르는 듯 분화구 안쪽에서 끊임없이 바람이 불어올라 왔다. 얼마나 통쾌하게 불어주는지 폭이 좀 넉넉한 옷을 펼치고 뛰어오르면 꼭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참 오랜만에 새처럼 날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때였다. 박문호 박사님이 밑으로 내려가 보자며 갑자기 분화구 밑 쪽으로 뛰어내려 가신다. 박종환 선생님이 그 뒤를 따랐다.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박사님 덕에 정말 날아볼 기회가 생겼다. 얼른 따라 뛰어내려갔다. 밑으로 내려간 사람은 우리가 처음이 아닌 듯 했다. 이미 내려간 사람들의 흔적이 선명한 길을 내고 있었다.

 

 어릴 적 산속에서 열심히 뛰어 놀았던 경험을 살려 신나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높은 곳에서 밑으로 빠르게 내려 갈 때는, 평지에서 달릴 때와는 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평지에서처럼 달리면 정지하는 것이 어려워 곧 잘 넘어져 다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중력을 제대로 이용할 수도 없다. 내 노하우는 미끄러져 내려가다가 살짝 뛰어올라 속도를 붙이고 다시 미끄러져 내려가는 걸 반복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스노보드를 타는 것과도 비슷한 방법이다. 다만 내려가는 화산재 길은 눈길만큼 미끄럽지가 않기에 살짝 뛰어오르며 중력의 힘을 받아 다시 속도를 붙이는 것이다.

 

 곧 박종환 선생님 뒤를 어렵지 않게 따라 잡는다. 하지만 먼지가 너무 심해서 속도를 줄인다. 뒤를 돌아보니 김향수 선생님이 열심히 따라내려 오신다. 역시 이런 일에는 절대 안 빠지신다. 분화구 안쪽까지 뻗어 있는 길은 장난끼를 되살리는 개구쟁이의 길이었고 중력의 법칙에서 벋어나게 해주는 자유의 길이었다. 시원하게 불어주는 바람까지 더해져서, 나는 날았다.

 

 언젠가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길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길이다. 하지만 자유시 주의사항이 있으니 잘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1. 내려가는 길에 마시는 먼지 량이 적지 않으니 천식 및 기타 폐질환 환자는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옷과 신발에 묻은 먼지를 다 털어내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립니다.

3. 내려가는 길은 빠르고 신나지만 올라오는 길은 정말 느리고 힘이 듭니다.

 

 

 우베헤베 분화구를 보고 데스벨리를 나서는 길에 우리는 마지막으로SEND DUNES라는 모래 사막에 들렀다. 모래가 정말로 고왔다. 가능한 다른 사람이 가지 않은 곳에 맨발로 발자국을 열심히 찍으며 돌아다녔다. 그때 김향수 선생님이 구르기 시합을 제안 하신다. 지난 번 몽골 학습탐사 때도 모두 같이 했었다며 재미있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렇다면 안 할 수가 없다. 모자를 눌러쓰고 최대한의 채비를 갖추고 모래 언덕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내려 갔다. 세상이 빙빙 돈다. 내가 더 열심히 굴렀기에 승자는 내가 되었다. 이렇게 내 첫 모래사막은 빙글빙글이라는 키워드로 기억되었다.

 

 이번 몽골 학습탐사 지역에도 사막이 포함되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사막에 가셨다면 꼭 다 같이 구르기 시합을 하고 오셨으면 좋겠다. 아마 자연환경을 모두 분별할 수 있을 만큼의 지식이 없었기 때문인 탓이 크겠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이렇게 온 몸으로 느낀 자연이었다. 이번에는 김향수 선생님이 같이 안 가셔서 구르기 시합을 하자는 사람이 없을까 좀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아마 기우일 것이다. 어떤 장면들,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있을까? 몽골 학습탐사대가 가득 채워올 선물 보따리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