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의 기원


1억7천만 년 전 땅밑 1만m서 탄생



한반도는 그 자체가 자연사박물관이다. 좁은 국토이지만 원시생물만 살던 선캄브리아대부터 고생대와 중생대를 거쳐 가장 최근의 지질시대인 신생대 제4기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다양한 지질현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대륙이 충돌하고 세계를 흔든 화산이 폭발하며, 공룡이 노닐던 한반도 자연사에 대한 이해는 이제 걸음마 단계이다. 대한지질학회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한반도가 어디서 왔고,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관한 가장 깊고 오랜 궁금증을 풀어본다.

 

 

마그마 뚫고 나오면 용암, 땅밑에서 굳으면 화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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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이 언제 만들어졌죠?”
“아마 1983년인가….”
해마다 1천만 명 가까운 탐방객이 찾는 북한산이지만, 국립공원 지정 연도를 먼저 떠올린 공원 관계자처럼 북한산의 탄생에 대해 아는 이는 드물다. 지난달 28일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의 안내를 받아 조문섭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와 함께 북한산을 찾았다. 암석을 채취해 처음으로 정확한 생성 연대를 측정하기 위해서였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곤 했던 암벽과 바위가 새롭게 다가왔다. 얼룩덜룩한 무늬에 옅은 회색이나 분홍색을 띠는 화강암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입자가 평평해 거울처럼 반짝이는 것이 장석이고 검은 것은 운모, 그리고 가장 단단해 마지막까지 바위 표면에 꺼칠하게 남는 투명한 결정이 석영이다.

 

화강암은 대표적인 화성암이다. 지구 깊숙한 곳에 있던 바위 녹은 물인 마그마가 지각의 약한 틈을 뚫고 지표로 분출하면 용암이, 지하에서 굳으면 화강암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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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인수봉 서사면 수직절리
<이미지 제공: 한겨레 조홍섭 기자>

 

그런데 같은 마그마가 굳어도 제주도의 용암은 검고, 화강암은 대체로 희다. 마치 막걸리를 걸러 투명한 소주를 만들 듯, 마그마에서 철 등 무거운 성분이 먼저 빠져나가고 알루미늄, 실리콘 등 가볍고 색깔 없는 성분이 남아 생긴 현상이다. 조 교수는 “이들 입자가 고르게 분포하는 특징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그마가 지하의 고요한 상태에서 굳어 화강암을 형성했음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마그마가 형성된 과정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이번에 조문섭 교수가 측정한 결과 북한산 화강암은 약 1억7천만년 전, 중생대 쥐라기 때 생성됐다. 당시 한반도의 땅속은 거대한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좌용주 경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유라시아 대륙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한반도는 옛 태평양 해양지각판이 대륙판 밑으로 파고드는 간접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땅속의 온도가 상승해 암석이 광범하게 녹자 부력을 받아 지표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찬 지각물질에 열을 잃고 무게가 가벼워지자 지하 1만m쯤 되는 곳에서 마그마는 굳어 화강암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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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생성과정
<자료: 한국과학창의재단 고등학교 과학>

 

 

화강암 위 약 10km 쌓여있던 암석 깎여나가면서 솟아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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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을 이룬 화강암은 ‘서울 화강암체’로 불리며 북동~남서 방향으로 서울에서 의정부ㆍ포천까지 이어진다. 도봉산, 관악산, 수락산, 불암산도 비슷한 시기에 같은 뿌리에서 생겨났다. 이들 산에 둘러싸인 서울의 4대문 안과 성북ㆍ도봉ㆍ노원 구는 모두 화강암 암반 위에 세워졌다. 강남구를 비롯해 은평ㆍ마포ㆍ서대문 구는 12억~13억 년 전에 만들어진 변성암인 편마암 위에 서 있다. 서울의 오랜 터가 오히려 새 암반 위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땅속 깊숙한 곳에서 생성된 화강암이 어떻게 지표에 나오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화강암 위 약 10㎞ 깊이로 쌓여있던 암석이 깎여나가면서 화강암이 솟아올랐다고 설명한다. 조 교수는 “믿기 힘들겠지만 작은 변화가 오랜 기간 쌓여 큰 변화를 내는 것이 지질학의 한 원리”라고 말했다. 1년에 0.1㎜씩 암석이 깎이더라도 1억 년이 지나면 10㎞가 된다. 북한산의 화강암 위에는 약 12억 년 전에 만들어진 편마암이란 변성암이 깔려 있었다. 이 암석이 오랜 세월 동안 풍화와 침식을 겪으며 깎여나갔다. 위에서 짓누르던 무게가 줄어들자 그 반작용으로 땅속의 화강암이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권성택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누르던 압력이 줄어 아주 천천히 융기가 일어났다는 것이지 히말라야나 알프스산맥처럼 단기간에 솟구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청계천 중랑천 등 서울 물길도 생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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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에 노출된 화강암은 깊은 지하에서는 겪지 못한 환경에 부닥쳤다. 낮아진 압력은 말할 것도 없고, 결빙과 열사, 집요하게 파고드는 식물뿌리의 침입 등은 단단한 암석인 화강암을 서서히 부서뜨렸다.

 

박경 성신여대 지리학과 교수는 “백운대 정상 부근 등 화강암 바위가 양파 껍질처럼 벗겨지는 것은 깊은 땅속에서 생성된 화강암이 압력감소 등으로 침식되는 특징적 현상”이라고 말했다.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노적봉 등 바위봉우리는 2억 년 가까이 이런 풍화와 침식을 견뎌낸 북한산의 고갱이이다. 사람 얼굴이나 오리 모양의 바위도 언뜻 위에서 굴러떨어진 듯이 보이지만, 실은 주변이 깎여나간 자연의 조각품인 셈이다.

 

서울의 물길을 정한 것도 화강암이다. 지층이 어긋나는 단층을 따라 바위가 쉽게 부서지는데, 그곳에 물길이 난 것이 청계천과 중랑천이다. 북한산 생성에는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도 있다. 무엇보다 지하의 북한산을 두텁게 덮었던 막대한 양의 지층이 어디로 갔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깎여나간 모래와 흙은 수십 번은 바뀌었을 강을 따라 어딘가로 흘러갔을 것이다. 조산운동으로 생긴 히말라야 산맥에서 침식된 암석과 흙은 벵골 만에서 확인된 바 있다. 설악산 대청봉 꼭대기에는 화강암 위를 덮었던 오래된 편마암의 일부가 미처 깎여나가지 않고 남아있어, 북한산의 과거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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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백운대 얼굴모습바위
<이미지 제공: 한겨레 조홍섭 기자>

 

 

2천만 년이면 다 깎여나가 사라질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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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의 미래도 미지수이다. 단순히 계산하면 1억 7천만 년 동안 1만m가 깎여나갔으니, 높이가 1천m도 안 되는 북한산은 2천만 년이면 사라질 것이다. 권성택 교수는 “지질작용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며 “지각은 융기하다가도 가라앉을 수 있기 때문에 침식만으로 짐작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1억 7천만 년 동안의 침식 높이도 평균일 뿐 지각이 오르내린 것까지 반영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분명한 것도 있다. 우리는 북한산이 해마다 몇 ㎜씩 깎여나가는지, 또 북한산의 뿌리인 화강암체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문제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 부족 때문”이라고 아쉬워했다. 북한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산이지만, 동시에 가장 잘 모르는 산이기도 하다.

 

 

 

한국 명산들의 출생비밀

백두산이 한라산 형이지만, 천지는 백록담 아우


설악산은 두 번에 걸쳐 만들어졌다. 비선대, 천불동, 공룡능선에 이르는 계곡과 봉우리는 중생대 백악기인 약 9천만 년 전 지하에서 형성된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아우뻘인 이 화강암은 분홍색을 띤다. 월악산, 속리산 등과 비슷한 시기에 형성됐다. 이 시기 화강암을 불국사 화강암이라 부르며 불국사와 다보탑의 석재가 됐다. 한계령을 중심으로 남설악 주변에 널리 분포하는 우윳빛 화강암은 형뻘로, 중생대 쥐라기인 약 1억 7400만년 전에 탄생했다. 북한산을 이루기도 한 이 암석을 대보화강암이라고 부른다. 이 화강암은 모두 기반암이었던 18억 년 전 편마암이 침식돼 깎여나가면서 지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리산은 북한산이나 설악산보다 훨씬 더 깊은 지각 속에서 만들어진 오래된 산이다. 18억~21억 년 전에 걸쳐 여러 차례 일어난 광범위한 화강암질 마그마가 오랜 편마암을 변성시켜 형성됐다. 약 1억4천만 년 전 지표 부근으로 융기해, 오랜 풍화와 침식을 받아 오늘의 모습이 됐다. 마그마가 땅속에서 굳지 않고 지표로 분출해 만든 산이 백두산과 한라산이다. 백두산은 2840만 년 전부터 분출하기 시작해, 가장 최근엔 1903년까지 분출 기록을 남겼다. 현재의 거대한 산체는 61만 년~8만 7천 년 전 사이에 만들어졌다. 한라산은 백두산보다 어려, 170만 년 전에 분출을 시작했다. 해수면이 낮았던 당시 제주도는 육지였다. 한라산이 완성된 것은 약 4000~5000년 전이다. 백두산이 한라산보다 형이지만, 천지는 백록담의 아우이다. 천지는 삼국시대였던 573년과 고려시대였던 1215년 사이 화산이 분출하면서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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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 의한 화강암 침식
<이미지 제공: 한겨레 조홍섭 기자>

 

 

암석 나이 어떻게 측정할까
최첨단 장치인 ‘슈림프’로 암석의 ‘기억’ 재생

 

지질학 연대측정에 쓰일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 분석장치가 국내에 들어와 오는 7월 가동된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오창캠퍼스에는 지난해 11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도입한 ‘초고분해능 이차이온질량분석기’(약칭 슈림프)가 시험가동을 시작했다. 조문섭 서울대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이 장치를 이용해 북한산의 화강암이 1억 6900만년 전에 형성됐다는 결과를 얻었다.


1980년대 초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가 개발한 이 장치는 44억년 전의 세계에서 가장 오랜 암석의 나이를 규명하는 등 지질학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내는 데 기여했다. 지난해 서해 대이작도에서 국내에서 가장 오랜 25억 1천만년 전의 암석을 조문섭 교수가 발견해 학계에 보고한 것도 이 장비를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국내에는 슈림프가 없어 일본의 것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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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최첨단 분석장치, 슈림프
<이미지 제공: 한겨레 조홍섭 기자>

 

암석의 나이 측정에는 지르콘(지르코늄 규산염)이란 광물이 널리 활용된다. 인조보석으로 쓰일 만큼 단단하고 투명한 이 광물은 암석이 생성될 당시의 ‘기억’을 잘 간직한다. 지르콘 내부의 우라늄과 납의 함량이 그 단서이다. 우라늄은 방사선을 방출하며 자연붕괴해 납이 된다. 우라늄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는 44억 7000만년이 걸린다. 따라서 시료 속 우라늄의 어느 정도가 납으로 바뀌었는지를 알면, 얼마나 세월이 흘렀는지 계산할 수 있다.


김정민 기초과학지원연구원 연대측정팀장은 “기존 측정법은 암석시료를 갈아 질산 등 강산에 녹여 동위원소를 추출하는 번잡한 과정이 필요했지만 슈림프는 시료를 훼손하지 않고 극소량으로도 연대를 측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지르콘 결정 하나하나의 기원을 추적할 수 있어, 수십개 결정의 평균값을 구하는 기존 방법으로는 알 수 없던 사실을 찾아낼 수 있다. 이번 북한산 화강암도 1억 7천만 년 된 지르콘 안에 18억 7천만 년, 23억 년, 25억 년 등 훨씬 오래된 지르콘이 섞여 있는 것으로 나타나, 북한산의 화강암이 훨씬 오래된 기반암을 뚫고 들어와 생겼음을 보여줬다. 슈림프는 미국, 캐나다, 일본, 중국 등 8개 국에 12기가 보급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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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홍섭 / 환경전문기자 ecotink@hani.co.kr
현 <한겨레> 환경전문기자로, EBS <하나뿐인 지구> 진행 (2005년) <환경과 생명의 수수께끼>, <프랑켄슈타인인가 멋진 신세계인가> 등 저술
발행일  2009.05.1






<북한산 사전답사 ...9월 19일 대남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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