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떨어졌다. 비가 온 뒤라 물 먹은 은행잎이 더욱 샛노랗다. 은행나무가 장병처럼 양쪽으로 줄지어 있는 가로수 아래는 노란 물감을 풀어 놓은 듯했다. 그 길을 차로 지나면서 보니, 그 아래서 사진을 찍거나 거니는 모습들이 보였다.

뒹구는 낙엽을 보니 “가랑잎”이란 동요가 떠올랐다. ‘가랑잎 떼굴떼굴 엄마무덤 찾아서 엄마! 엄마! 불러 봐도 대답이 없어 따뜻한 부엌 속을 찾아갑니다.’ 어릴 적 아무 생각 없이 고무줄뛰기 하면서 부르던 노래이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던 그 시절이 더 순수했는지도 모르겠다. 슬픈 내용이 담긴 노랫말을 뛰어놀면서 불러댔으니까!

가을이 되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들 때문에 매일 도량을 쓰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쓸어놓은 가랑잎들은 한 쪽에 모아놓고 태워버린다. 옛날처럼 아궁이가 있으면 좋으련만 불 때는 부엌이 없어져버려 편히 쉴 곳이 없는 현실이다. 구십이 넘은 은사스님은 ‘가을을 느낄 수 있게 너무 싹 쓸어버리지 말라!’ 고 당부하건만, 젊은 스님들은 그 말은 귓등으로 넘기고 귀찮은 쓰레기 취급을 하며 불살라서 없애버린다. 바람이 약간 일렁이는 날에 가랑잎을 불사르면 뭐라 말 할 수 없는 구수한 냄새가 온 도량에 넘친다. 그러나 안개가 낀 날에는 매캐한 연기가 온 도량에 자욱하게 깔려 불내음이 옷에도 배고 몸에도 밴다. 자연은 거짓이 없기 때문에 숨으려고 해도 숨을 수가 없다. 훈습(薰習)이라더니 알게 모르게 스며드는 것이다. 사람도 이와 같아 각자가 익히는데 따라 그 향기를 풍기는 것이 아닐까?

가을을 느끼는 낙엽에 대해서는 원효스님과 설총의 유명한 일화가 전해져 온다.

어느 가을날, 설총이 마당에 흩어져 날리는 단풍잎들을 깨끗이 쓸어놓고 원효스님께 말했다.

“스님! 도량을 말끔히 치웠습니다.”

“그래!”

원효스님은 한쪽에 모아놓은 낙엽을 한주먹 쥐어서 마당에 흩뿌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가을은 이런 거란다.”

이 얼마나 멋진 가르침인가!

길가의 가로수가 은행나무라 노란 잎들이 담을 넘어 날아왔다. 담 안에 빨갛게 물든 산수유 단풍과 함께 꽃들이 없어진 꽃밭에 떨어져 늦가을의 정취를 더욱 느끼게 만들었다. 작년에는 일하는 아저씨가 기계를 사용해 낙엽을 다 날려 보내서 엄청 화를 냈었다. 일부러 보기 좋아서 둔 것인데 지저분하다고 없애버린 것이었다. 올해는 명심했는지 그대로 두었다. 누구한테 들으니 채소밭이나 꽃밭에 은행잎을 뿌려두면 살충제 역할도 한다고 하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낙엽은 가을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태산목이란 나무는 봄에 낙엽이 졌다. 주로 갈색으로 변해서 떨어지는데, 갈색의 농도가 어우러져 여러 가지 색을 칠한 것처럼 멋있게 보였다. 새잎이 나기 전에 작년에 달려있던 묵은 잎들을 먼저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여고시절, 교정에 흩어진 이 잎을 주워 모아 좋아하는 시를 써서 친구들에게 보내는 것이 유행이 되었었다. 같은 또래의 펜팔 친구에게 이 마른 이파리에 편지를 써서 보냈더니 자기네 학교에서 난리가 났었다고 했다. 너무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말이다. 떨어진 잎은 다음에 나올 새싹을 약속하는 것이다. 낙엽들은 뿔뿔이 흩어져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일생을 마감하고 기꺼이 자신의 몸을 던진다.

“잎사귀의 일생”이란 동화에서는 한 나무에 태어나지만 죽음으로 가는 시간이 각각 다르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새로 돋아난 잎은 살아 있는 동안 옆에 있는 상수리나무와 친구가 되기도 하고 높이 자라는 나도밤나무를 치어다보며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어느 날 같은 가지에 있던 나뭇잎이 세찬 바람에 날려 가버렸다. 죽음이라는 걸 맞이하게 된 것을 알게 되어 슬퍼한다. 지나가던 다람쥐가 잎사귀에게 말한다. “먼저 가고 늦게 가는 차이일 뿐이야! 언젠가는 우리도 다 가게 되니까!” 그 뒤 앞서 가는 수많은 죽음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떨어져 잎사귀로서의 일생을 마친다는 이야기였다.

이 동화를 들은 것은 일본의 어느 야간학교 졸업식에서였다. 칠순에 글자를 익힌 재일교포 할머니가 꼭 와보라고 해서 간 곳이었다. 도착했을 때는 1부 졸업식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고, 여든일곱 살 나신 할아버지가 졸업생대표로 답사를 읽고 있는 중이었다. “전쟁으로 배움을 잃었지만, 늦게나마 우리글과 일본글을 배워 답사를 읽을 수 있게 된 감사의 뜻을 선생님들께 바치겠습니다.”라며 한복 두루마기 고름으로 눈물을 닦으셨다. 2부 학예발표회 마지막에 졸업생들이 나와서 “잎사귀의 일생”이란 동화를 일본 말로 돌아가면서 읽었다. 더듬거리면서도 떨리는 목소리로 또렷또렷하게 읽어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성스러워 보였다. 생의 막바지를 달려가면서 익힌 글자! 듣는 사람들은 감동해서 눈물을 흘렸다. 지는 해가 더 아름답다더니 이 분들은 노후를 배움으로 장식하며 건강한 삶을 누리는 것 같았다.

낙엽은 지기 전에 아름답게 치장을 한다. 노랑, 빨강, 주홍, 자주 등으로! 떨어지면서도 아름다움을 남겨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한 뒤, 땅속의 거름이 되기도 하고, 자기 몸을 태워 한 줌 재로 남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들에 의해 짓밟히기도 한다. 새잎의 파릇한 빛깔은 없어졌지만 다시 온 힘을 기울여 아름다움을 창조하지 않는가! 생의 마지막까지 잎사귀처럼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까? 어쩌면 잎사귀보다 못한 일생을 보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떨어져 사라지는 낙엽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지금까지 아무렇게나 살아 온 것만 같아 부끄러움이 앞선다.

가랑잎이 아궁이에서 자기 몸을 태워 방을 따뜻하게 하듯이 누구의 가슴을 따스하게 해 주 고 싶다. 낙엽이 땅속의 거름이 되어 씨앗을 터트려 키우는 것처럼 누군가의 희망을 싹 틔어주고 싶다. 떠도는 가랑잎이 짓밟혀도 군소리하지 않듯이 뭐든 참고 견디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