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천+뇌 모임에서 박자세의 공식 수첩, 양지사 Weekly 48 2013년 판을 사기지고 왔다.

양겸씨의 수고로움으로 싸게 구입한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수첩의 첫 권은 2012년 판이다.

지난번 박자세 바자회 무렵 김현미 선생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이다.

수첩의 첫 페이지를 연다.

표지 바로 안쪽 맨 위 구석에 아주 작게 김현미라고 적는다.

첫 권을 이렇게 시작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박사님의 영업비밀이라는 수첩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한 것은 작년 박사님댁에서였다.

사이트를 오픈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박자세 베스트북을 만들기 위해

엑셈의 조사장님과 직원분이 박사님댁에서 모인다는 얘기를 듣고 구경차 올라간 길이었다.

책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거들면서 모두에게 강렬하게 다가온 것은

책상 위에 가지런히 쌓여져 있는 수첩이었다.

그날도 박사님은 수첩의 효율성에 대해 강하게 얘기를 해 주셨다.

그러고도 1. 수첩을 활용하지 못했다.

줄무늬가 없는 노트를 선호하는 기호의 경향성도 있을 터이지만,

무엇보다도 절박함의 부재가 원인이었다. 소위 나름의 갈등을 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Fight Flight사이에서 Flight쪽으로 슬슬 내려앉고 있던 중이었다.

그동안의 삶의 패턴에서 Flight의 유혹이 너무 컸다. 해오던 대로 편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자신을 점점 가라앉혀가고 있었고 자신에게 끝도 없이 실망하면서도 일어서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럴 즈음, 현미샘이 이것을 주는 마음을 알아달라며 슬그머니 손에 쥐어준 것이 수첩이었다.

마음은 눈물나게 감사하지만 솔직히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집에 와서 수첩을 책상 위에 놓아 두고, 매번 가는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가끔 책상 위에서 말을 거는 수첩의 무게가 너무 커서 책으로 덮어서 가려 둔 적도 있다.

 

이제서야 그 수첩의 첫 페이지를 연다. 내내 만지고 덮어두고 해서 빈 여백만 가득한 수첩이 벌써 한참을 사용한 것만 같다. 박사님 말씀처럼 손에 달라붙는 질감이 최고다.

박자세에서는 수첩을 강력한 공부 Tool로서만이 아니라 신분증으로 하자고 한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대신에 수첩을 들여다보자고.

수첩으로 공부량을 카운터 한다니, 자연과학을 지향하는 박자세답다.

이렇게 박자세는 사회 속에서 어느 누구도 시도 한 적 없는 또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고 만들어간다.

문화의 힘이 하지 않을 수 없는 강제성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이즈음이다.

 

두달 안에 수첩 한 권을 다 채우는 것을 1차 목표로 잡고,

자, 이제 공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