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풍상에 절어 해골만 남은 선사시대 유골처럼 

무방비 상태로 놓여진 내가 사랑하게 된 잿빛바위

휘어지고 뒤틀리고 하늘을 향해 충동적인 몸짓을 드러낸 잿빛 협곡



잿빛 바위를 부숴 버릴 듯 강렬하게 쏟아지는 햇빛을

가끔씩 소슬한 바람이 불어 희끗희끗한 구름이 막아서면

계곡은 살아있는 듯 기쁘고 슬퍼보였다.



이런 공간에 오면 위험을 감지한 호랑이의 포효가 내 존재의 심연의 맥박을 두들기고, 

나의 상상력은 불이 붙기 시작하고, 오랜 기억의 무덤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아득한 계곡에서 내 귀에 들리지 않는 수많은 소리로 이루어진 침묵의 소리를 듣는다.



나는 태초에 쏟아지는 장엄한 비소리를 듣고, 

생명의 씨앗이 움트는 대지의 소리를 들으며,

야수처럼 으르렁 거리며, 이 계곡을 넘나들며 잿빛바위를 핥아대던 바다의 소리를 듣는다.



멀리서 계곡바람에 몸을 실어 율동을 즐기던 새가

잿빛 바위사이로 날개를 접으며 소리치면,

계곡 전체가 오랜 침묵의 시간에서 깨어나 화답한다.



이렇게 만사가 기적으로 다가오고, 모든 사물이 신비로 다가오는 때에는

나는 아직 충분히 살아보지도 못한 어린아이가 되고,

영원같은 시간의 낙원 속에 우두커니 있고 싶다.



출발합시다! 라는 소리에 

나는 그만 구름에서 떨어졌고,

대낮의 이 매혹적인 계곡은 죽음같이 무섭고 신성한 침묵속으로 다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