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려서니, 쨍한 바람이 왈칵 달려든다.

새벽 2시의 선산휴게소. 선잠 깨어나 따스한 차 안을 벗어나니 정신이 번쩍 든다.

파랗게 얼어 있는 호수 위로 가로등 불빛이 여리고 노란 빛의 길을 만들었다.

잠깐 눈을 드니,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벤치 옆, 푸른 잎 벗어 던진 앙상한 나무 가지에

밝고 창백한 빛 하나가 걸려 있다.

사냥꾼을 따라가는 충직한 개, 시리우스다. 그 위 프로키온도 밝은 빛을 뿌린다.

그리고 눈부시게 빛나는 오리온의 모습.

몽둥이를 치켜들고 두 마리의 개를 이끌고 황소와 대치하고 있는 오리온의 웅장한 모습이

온통 시선을 사로잡는다. 벨트의 삼태성 선명하고 소삼태성이라 불리는 단검의 위치에

오리온 성운도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오리온 대성운은, 메시에 넘버 42의 발광성운이다.

오리온 자리는 일등성 별도 두 개(베텔기우스, 리겔)나 가지고 있고

갓 태어난 젊고 푸른 별들이 많은 오리온 대성운을 비롯하여, 밝은 별들과 성단, 성운 등이 풍부하다.

유명한 말머리 성운도 이 별자리에 있다. 그 당당한 모습이 별자리의 제왕 답다.

오리온 자리와 관련해서는 동 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형태와 신화가 전해진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한 것일 게다.

하지만 내게 오리온 자리는 다른 전설을 들려준다.

 

아직 어둠에 잠겨 있던 8월 몽골 초원의 새벽.

몸에 칭칭 감은 침낭으로 추위를 막고 새벽잠 덜 깨인 눈을 부비며 서서

열기 가득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던 새벽 강의 시간.

시리우스와 프로키온, 오리온의 베텔기우스를 이은 겨울철 대삼각형을 찾고,

젊고 푸른 별들이 태어나고 있는 오리온 대성운의 희미한 빛도 확인한다.

별들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와 137억년 우주의 역사와

그것을 관측하고 밝혀낸 과학자들의 열정과 천문학의 역사를 듣는다.

새벽 여명에 서서히 사라지는 별빛 하나를 끝까지 놓치지 않고 지켜보던 그 시간들은

또 다른 신화와 전설이 되어 새겨졌다.

오리온 성운 안에 있는 사다리꼴 모양의 트라페지움 산개성단을 외우며,

무슨 아파트 이름 같애라던 밝은 목소리도 하나,

전설의 기억 안으로 슬며시 끼어들어 그리움으로 웃음 짓게 한다.

선명한 겨울철 삼각형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추위로 덜덜 떨고 있었던 것은 의식되지도 않은 듯이

새삼스런 깨달음처럼 , 겨울이구나되뇌인다.

그저 단어였던 겨울철 대삼각형이 선명한 실체가 되어 피부로 스며든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올라탄 버스 유리창은 얼어붙어 닦이지도 않는다.

그 너머 안개에 휩싸인 도시인양 가로등 몇 개 점처럼 떠간다.

벡터를 맞추는 공부가 중요한데, 지금은 뇌과학 공부시기.

아직도 밤하늘에 잡혀 있으면 안되는데 하는 걱정과는 별개로

살풋이 내려 덮히는 잠결따라 꿈은 몽골의 밤하늘 아래로 흔들흔들 흘러간다.

 

horsehead_bertol.jpg

        말머리 성운 (2008년 2월 21일자 나사가 공개한 오늘의 천체사진)

        왼쪽에 가장 밝게 빛나고 있는 별은 오리온 벨트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