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며칠간 겨울비 추적이더니 오랜만에 날이 개였다.
구름 한점 없이 파아란 하늘 위 건너편 아파트 위로 희미한 반점 같은 낮달이 오롯이 걸려 있다.
보름이 다 되었는가, 둥근 낮달이 태양의 그림자 같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는 동안 잡다한 생각들이 흘러넘친다.
어느 시인의 싯구도 살짝 떠오르다가 유행가 가사도 한 소절 흘러가고,
SF영화의 한 장면도 스쳐지난다.
그러다 문득, 몽골 초원 별빛만이 찬란하던 밤이 떠오른다.
별들 아래서 우리가 바로 ‘우주인’임을 실감하던 그 순간.
그것이 특별한 현상이 아니라 일반적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던 그 밤의 기억.
빛이 가린 착시현상으로 눈에 보이는 것만이 실재하는 것인양 무심코 살아가지만
저 푸른 대기를 걷어내면 검푸른 천공과 하나의 별일 뿐인 태양과, 머나먼 곳에서 달려온
빛의 무리들이 -270도의 차가운 진공 안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그 우주 안의 작고 작은 행성 속에서 오늘도 일상의 번잡함 속을 건너가고 있지만,
이렇게 문득 절대고독의 광활한 우주를 생각해 보는 내가 우주적인 존재일 수는 없는 것일까.
‘우주 안의 나’를, 시리듯 푸른 겨울 하늘 한 귀퉁이 희미한 낮달을 통해 다시 만난다.
잠이 들기 전에 다큐멘터리를 한 편씩 보고 잠이 듭니다.
요즘은 EBS에서 방영한 '문자'를 보았습니다.
3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수메르 문자에서 알파벳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문자를 쓰기 시작한 것이6,000년 정도라고 다큐멘터리는 말하고 있습니다.
채 1만 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문자는 신의 문자에서 인간의 문자로
바뀌었습니다.
왕과 귀족, 몇몇의 특권층만이 쓰던 글을 이제는 누구나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천문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늘을 보고 흐름을 읽고 별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문자를 통해 지식이 전달되고 하늘을 맘껏 접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하늘의 현상을 넘어서 내 안에 있는 의미를 끄집어 내 쓸 수 있는 지금 시대에
글로써 서로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맘껏 공간을 넘고 시간을 넘는 문자를 써보아야겠습니다.
홍총무님의 둥근 낮달이 태양의 그림자 같다는 표현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