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학교 2학년 때인 1983년 어느 휴일, 친구 M과 옆 동네 바닷가로 마실을 갔다.

 

커다란 참외나 무등산 수박같은 모양의 까끌하고 하얀 자갈들이 많았던 그 해변.

여름이면 바닷가 커다란 팽나무 가지 위에 올라가 참매미 소리 들으며 선잠에 빠지기도 했고

절벽쪽을 돌아가면 서울 사람들이 백금을 찾기 위해 팠다는 작은 굴이 있는 곳에서 비를 피하며 바다를 보기도 했다.

 

그날도 짙푸른 바다와 쩡쩡 소리가 날 것같은 맑은 가을 하늘이었다.

물수제비 몇번 하다 그마저 심심해져서 그냥 돌아갈까 하는 찰나 저만치에서 커다란 물체가 자갈밭 위에 누워있는 게 보였다. 섬뜩한 예감.  내심 도망치고 싶었지만 지금은 인천에서 경찰 생활을 하는 용감한 M이 이미 성큼성큼 그 물체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시체는 아니었다.

그러나 죽어가고 있었다.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보다 더 슬픔을 자아내는 동물이었다.

 

커다란 거북.

늙고 커다란 거북은 아직도 맥박이 뛰고 있었지만 바다로 돌아갈 기력이 없다.

이미 그 몸 한쪽이 썩어가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난생 처음 가축이 아닌 '자유로운' 동물의 죽음,

그 죽음의 과정은 지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선 코를 막아도 '맡아지는' 것이었다. 

 

M은 위악을 부리며 막대기로 등껍데기를 툭툭 때리면서 "왐마..허벌나게 커브러야" 몇마디 하고

거북이 등짝은 약에 쓴다는 둥 어쩐다는 둥 하면서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통게통게 하였다.  거북이 죽은 걸 봤다고 어머니에게 말하니

어머니가  '큰 인물이 죽을랑갑다' 했고 저녁엔가 다음날엔가 '아웅산 폭발 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봤다.

 

1983년 기억 속에서 거북이 그리고 죽음과 버마(아직도 미얀마의 많은 사람들은 군부가 개명한 미얀마를 쓰지 않고 버마라고 한다)는 그렇게 상쾌한 바다냄새와 썩는 냄새와 함께 의식의 수면아래에서 음습하게 도사리고 있다.

 

2.

 

베트남.

 

친구 J는 스물다섯 무렵 B상선의 무역선을 타고 전세계를 다녔다. 선장 대신 배를 운전하기도 했었고

조용필을 들었으며 재즈를 들었다. 당시 그에겐 망망대해 끝 기다란 수평선만이 유일한 아름다움이자 평화였다.

그리고 J는 베트남에서 2주간 정박해 있을 때 한 소녀와 꿈결같은 사랑을 한다.

그녀의 수직으로 내리꽂는 긴 머리의 아름다움을 간파한 뒤로는 더 이상 수평선은 아름답지 않았고 고독이었다.

그녀의 얘길할 때 J의 눈은 먼먼 바다빛이었다.

 

베트남 참전군인이었던 친구의 아버지 H씨.

술만 취하면 권총을 꺼내와 총알을 장전하여 동네사람들을 벌벌 떨게했던

우리 동네 이발사 H씨의 베트남과 J의 베트남은 너무나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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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추운 2013년 1월 25일 전남 나주시 노안면.

여기 내륙 한복판에 또 하나의 거친 바다가 있었다.

베트남에서 온 20대 청년들이 

추운 한국의 겨울 바다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오리탕에 복어국에 많이 넣어서 즐겨 먹는다는 미나리를 수확하고 있다.

 

호들갑스럽게 귀를 비비고 옷을 다시 여미고

차를 기다리는 10분에 갖은 짜증을 다 부리는 우리들을

멀리서 흘끔 쳐다보다 다시 돌아서서

겨울바다 그 깊은 심연에서

차디찬 희망을 건져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