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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거꾸로 보아야 할 일들이 많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자기 이익에 충실하다. 한 겹 피부와 두개골 속에 갇혀 자신의 이해에 맞춰 세상과 인간을 해석하고 적용한다.

고대사는 더욱 그렇다. 책에서 말하듯이 우리에게 국적은 혈액형이나 체형 같은 태생적이다. 우리는 온 세상의 사람들을 국적별로 분류한다.

 

그러나 19세기 초반 유럽에서 근대적 국적법이 성립하기 전에 오늘날과 같은 배타적 ‘국적’이 없었다. 각종 왕국의 신민들은 얼마든지 다른 왕국에 가서 생계를 꾸리거나 벼슬생활을 할 수 있었음에도, 우리는 ‘국적’이라는 색안경을 통해 그들을 응시한다. 국민국가가 내면화된 우리들의 어쩌지 못하는 한계다.

 

무시된 ‘백강 전투’

 

왜 우리 국사 교과서는 ‘백강 전투’를 무시할까. 그 전투는 ‘신라-당’ 연합군과 ‘백제-왜’ 연합군의 대대적인 싸움이었다. 4만 명의 왜인이 참전하고 1만여 명이 전사한 고대사를 통틀어 왜국이 외부에서 당한 큰 규모의 패배였다. 그런데 국사 교과서는 침묵한다. 숙적 왜국이 동맹국 백제를 대규모로 원조했다는 사실이 우리의 통상적 일본관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우리 국사 교과서는 성공적으로 외침을 막은 사실에는 적극적 의미를 부여한다. 반대로 우리가 막지 못한 외침은 비통한 어조로 서술하며 자세한 부분은 파헤치려 하지 않는다. 한 예로 우리 국사 교과서는 일제의 통치로 토착 지배 엘리트들도 커다란 이익을 챙겼다는 사실은 주목하지 않는다.

 

이스라엘과 한반도의 관변 내지 민족 사학자들은 ‘위대했던 고대사’와 ‘수난의 근대현사’만을 유독 강조한다. 왜 그럴까? 박노자 교수는 두 국가의 매우 높은 군사화에 주목한다. 초강경 징병제 사회에서 자랑할 만한 과거의 군사적 ‘위대함’은 꼭 필요하다.

 

그는 고대사에서 ‘국방사관’을 극복하도록 주문한다. 735년 신라가 당나라로부터 대동강 이남의 땅에 대한 영유권을 따낼 수 있은 것은 군사보다 외교 수완이 좋아서라고 평한다. 고대사가 주는 진정한 교훈은 한반도 국가의 생존에 군사력보다 외교력 등을 포함한 종합적 의미에서의 문화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고대에 ‘우리 민족’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박교수는 ‘동질성’에의 집착을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고대사에 등장하는 모든 한반도 정치체들을 뭉뚱그려 ‘우리 민족’으로 설정하지만, 이들은 내부 구성이 매우 복잡했던 데다 서로의 문화적 차이도 만만치 않았다. 고구려가 옥저와 예 등은 물론 말갈과 낙랑 출신 한인(漢人)들까지 신민으로 받아들였다. 백제만 해도 중국 지식인과 일본 호족 출신을 관료로 이용할 줄 아는 나라였다.

 

저자는 이런 시각에서 노골화되는 ‘만주 향수병’을 비판하고 통일신라시대에 ‘우리 민족’또는 ‘우리 종족’이란 어떤 의미인지 밝힌다. 고대에도 당나라를 중심으로 근대를 방불케 하는 ‘국제화’가 있었음을 되살린다.

 

박노자 교수는 러시아인이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우리 역사에 해박하고 한국어를 잘 쓴다. 그의 관점은 신선하다. 새로운 외부자 시각으로 우리 고대사를 살펴보면 재미뿐만 아니라 얻는 바도 적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