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아들 녀석 어릴 때는 노란색을 매우 좋아했지요.
그런데 유치원 다닐 때 갑자기 '파란색이 좋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뭔가가 개입한 겁니다.
“남자아이의 경우 일반적으로 분홍색(Pink) 옷을 입히는 것이 좋다. 여자아이의 경우 푸른색
(Blue) 의복이 바람직하다. 분홍색은 결의에 차고 강한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남자에게 어울린
다. 푸른색은 보다 구체적이고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예쁜 여자 어린이에게 잘 어울린다.”
1918년 미국 동부에서 판매된 잡지 레이디스 홈(Ladis Home)에 소개된 어린이용 의복 색상
에 관한 전문가의 자문 내용이다. 남자에게 분홍색, 여자에게 푸른색이란 전문가의 자문이 혹
시 거꾸로 인쇄된 것이 아닌가, 의문이 간다. 남자가 푸른색, 여자가 분홍색이라는 게 현대인의
‘상식’이다.
상식은 절대 상식적이지 못하다. 상식은 편의에 의해 만들어진 ‘사고의 게으름’을 합리화시
켜주는 명분이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인류의 상식은 ‘남자=분홍색, 여자=푸른색’이었다. 상
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 ‘남자=푸른색, 여자=분홍색’으로 정착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부터다. 페미니즘, 즉 여성운동이다
핑크와 블루에 관한 어떤 사람의 글입니다..
치마와 바지, 남색과 동성애 등등 역시 밈이니 뭐니 하기 전에 이분법적 사고는 모순에 빠지기 쉽습니다.
'나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나는 나의 모든 타자다' 등등이 별로 새롭지도 않은 통찰이지만,
여전히 우리의 선입견은 강력합니다.
매일 매순간 그걸 느낍니다.
약간 다른 의미에서 '나는 있는가?'라는 생각도 합니다.
스스로의 한계를 노정하지 않는 모든 시도는 자기 그물에 빠지기 십상인 것 같습니다.
어떤 스님 말씀대로 '오직 모를 뿐'만이 공부하게 하는 힘이 되는지도..
모두들 건승하세요.
지식과 정보에 물든 기억이 감각과 지각의 범주화를 바꿔 놓습니다.
요근래 저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간에 느끼던 사물과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사물이 지각되고 인지됩니다.
예를 들어보면,
요즘같이 추운 날 밤에는 우주공간이 열적평형을 위해 지구와 내몸의 열을 순식간에 빼앗아가는 걸 느낍니다.
그 순간 우주 공간의 온도가 얼마나 강력하게 작용하는지, 내몸의 구성분자의 운동성이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 느낍니다.
절대고독의 공간인 우주공간의 온도 -270도를 매일 밤 피부로 느낍니다.
사물만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도 예전과 달리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반응하는 뇌와 대면하는 것 같아서 자주 당황스럽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예전에 이상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고, 달라진 감각과 지각이
비로소 정상을 되찾은 거라고 스스로 위안을 합니다.
자연과학을 공부하다보니 점차로 인간의 뇌와 관계된 현상과 자연의 실재와 구분하는 버릇이 시시때때로 생겼습니다.
이제는 핑크와 블루라는 구분의 선입견은 아예 사라지고 없습니다.